-
-
열린 인문학 강의 - 전 세계 교양인이 100년간 읽어온 하버드 고전수업
윌리엄 앨런 닐슨 엮음, 김영범 옮김 / 유유 / 2012년 10월
평점 :
전 하버드 총장이었던 찰스 윌리엄 엘리엇은 재임 시절 엄선된 고전을 꾸준히 읽으면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인문적 소양을 갖출 수 있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5피트 책꽂이’라는 독서 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역사·철학·문학·과학 등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50권의 고전을 엮어 ‘하버드 클래식’을 펴냈다. 그게 1909년의 일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인류의 지적유산을 담은 고전을 정산한 하버드 클래식은 그로부터 100년간 전세계인들에 의해 꾸준히 읽혀 왔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책들의 목록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50권이라고는 하지만 주제에 따라 여러 저작이 한 권에 묶인 경우가 많아 질적인 부피감은 훨씬 더 크다. 말 그대로 5피트(약1.5미터) 길이의 책장에 인류의 정신유산을 압축한 셈이다.
서평작인 『열린 인문학 강의』는 ‘하버드 클래식’을 통한 대중 강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Lectures on the Harvard Classics』을 번역한 것이다. 완역한 것은 아니고 그중에서 인문학 부분만, 그리고 지금 시점에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만을 엮은 것이다. 원전번역·초역·완역이 유행하는 요즘 같은 때 발췌번역이라니 다소 의아한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 책은 ‘고전 읽기를 위한 안내서’라는 목적에는 매우 충실하다. 역사, 철학, 종교, 정치경제학, 항해와 여행, 희곡, 시의 각 분야에 대한 서문과 2~3꼭지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꼭지는 하버드 대학의 여러 교수가 강의한 내용을 직접 정리한 것이다. 사실 분량 한계로 고전 작품에 깊숙이 파고들지 못하는 본문 꼭지보다는 각 영역의 학문적 특징과 세부 분야, 공부 방식을 다루는 서문이 오히려 눈에 띤다. 고전을 통한 인문학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이쪽을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00년 전에 선별된 고전 선집이라고 하면 지금 시점에선 다소 낡은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강의를 엮은 『열린 인문학 강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클래식이, 그리고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역사편의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독자는 단지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역사’를 한껏 만끽하면 그만”이고, “독자에게는 아무런 족쇄도 채워져 있지 않”다고. 여기서 ‘역사’를 ‘고전’이란 말로 바꿔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열린 인문학 강의』를 옆에 끼고 우리 앞에 놓인 고전을 한껏 만끽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