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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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6 우리는 맹신자가 아니라 비판적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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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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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달팽이의 삶에 끼어들었단 말인가?’    

유럽여행 중에 얻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병으로 병상에 누워 지내던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는 친구가 제비꽃 화분과 함께 가져온 달팽이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평생 건강하게 살았지만 원인불명의 병으로 전신 마비가 왔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누워서 숨 쉬는 것밖에 없었던 그녀였다. 원인 모를 병이 베일리의 신체를 구속한 것처럼, 달팽이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전혀 다른 환경에 던져졌다. 그녀는 달팽이집에 꽁꽁 숨어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던 달팽이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져 영 마뜩잖았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뒤,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던 달팽이가 더듬이를 부드럽게 흔들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분에서 화분 밑 접시로, 화분 옆 전기스탠드로, 그리고 마루바닥에 까지. 달팽이는 느리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산책하고 관찰하듯 끊임없이 돌아다녔고, 광고지며 편지지를 파먹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대신 꽃잎 하나를 건넸다. 달팽이는 먹는 건지 안 먹는 건지 모르는 속도로 꽃잎을 먹었다. “귀를 바싹 기울였다. 달팽이가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나는 달팽이가 보라색 꽃잎 하나를 저녁밥으로 꼼꼼히 다 먹어 치우는 한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숨 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던 베일리는 달팽이 덕분에 새로운 할 일이 생겼다. 달팽이를 관찰하고 먹이를 챙겨주고, 이 친구에 대해서 더 잘 알아보는 것. 

『달팽이 안단테』는 투병 생활 중에 달팽이를 키우게 된 저자가 달팽이를 관찰하면서 쓴 일종의 관찰일지이자, 에세이다. 그렇다고 ‘관찰’이라는 행위에 집중하여 쓴 것도 아니고, 달팽이에 관해 생물학적으로 깊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병으로 일그러진 자신의 일상을 절망적으로, 또 덤덤하게 써내려간 부분은 투병 에세이 같기도 하다. 달팽이와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책 속에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절망 속에 우연히 찾아온 달팽이, 달팽이 특유의 느리지만 부지런한 움직임은 베일리에게 큰 위로이자 감동을 주었다. 베일리는 그 감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 

원인 불명의 병, 전신 마비, 달팽이라는 작은 친구. 베일리가 처한 상황은 상투적인 감동으로 이어질 법도 한데, 오히려 베일리는 달팽이를 통해서 깨달은 생명의 감동을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그 관조의 태도에선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투병과 달팽이 관찰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에 도달하는 이 책에 대해 사회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O. 윌슨은 딱 한 문장으로 평가했다. “아름답다”고.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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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러셀을 말하다 -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세계를 변혁하는 것에 대하여
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김한조 삽화 / 시대의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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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판계에 노엄 촘스키버트런드 러셀의 인기는 좀 각별한 데가 있다. 일찍이 2000년대 초부터 촘스키는 다수의 저작을 통해 미국과 거대 언론에 반항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알려졌었고, 러셀의 경우 그간 철학자와 에세이스트로만 알려졌었지만, 최근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등이 소개되면서 촘스키와 마찬가지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대중에 알려지게 됐다. 그들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비록 그들의 전공 분야와는 무관한 특정한 정치적 입장과 실천적 태도 때문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이를 통해 시대와 대중이 요구하는 지식인의 참모습을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작인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의 제목은 강렬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과연 후대의 지식인 촘스키는 전대의 지식인 러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 책은 1970년 사망한 버트런드 러셀의 추모 1주기를 맞아 1971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촘스키가 강연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러셀을 추모한 강연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강연의 주제가 러셀은 아니다. 촘스키는 1강에서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에 대한 러셀의 인식론과 자신의 언어학적 입장 설명하고, 2강에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에 대해여’란 제목으로 1강을 통해 인식한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다뤘다. 정리하자면 1강은 세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인 작업이라면, 2강은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노력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일련의 작업이 촘스키 개인의 성과는 아니다. 그는 강연에 들어가기 앞서 러셀이 설파했던 교육관을 언급한다. 러셀은 진보적 교육의 과제가 “통제가 아니라 사물의 가치를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 자유로운 공동체의 현명한 시민들을 양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고, 또 개인의 자유로운 창조성과가 시민정신을 결합함으로써, 오직 소수만이 성취할 수 있었던 가치를 사람마다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교육이란 세계를 ‘해석하는 일’과 ‘변혁하는 일’을 하나로 잇는 일이다.

우리가 러셀과 촘스키를 언급할 때는 주로 후자, ‘변혁하는 일’에만 골몰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세계를 ‘해석’하는 이론적인 작업 없이는 ‘변혁’도 미완성에 머무른다. 러셀의 교육관에 충실하게 따른 촘스키는 이 책의 1강에서 ‘해석하는 일’을 심도 있게 다뤘다.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한 언어학적인 접근은 분명 우리에게 생소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이론 작업을 거친 뒤 우리의 ‘변혁’에는 확고한 신념이 더 해 진다. 그 신념이 촘스키와 러셀이 오랜 세월 세계를 변혁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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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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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대한 대가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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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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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의 전작인 『디케의 눈』이 실화를 바탕으로 법과 사회의 이면을 살펴봤다면, 신작인 『확신의 함정』은 사회를 문제 삼되, 그 수단으로 현실이 아닌 문학작품을 내세웠다.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의 글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날것 그대로의 실화가 아닐까. 하지만 저자는 현실의 문제를 구태여 소설에서 빌려 오기로 작정한 듯 하다. 문학이 현실을 보는 창이라는 생각이 타당하긴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부류에 속할 법조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좀 이채롭긴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법조인은 현실적이고 냉정하기만 할 거라고 믿는 것이, 우리가 가진 '확신의 함정'이 아닐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틀릴 수 있다. (...)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전제에서, 다양한 문제를 여러 가지 방향에서 바라보고' 이 글을 썼다고. 

따라서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다양한 선입견에 시비를 건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마땅한 범죄, 이를테면 어린이 성폭행범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차라리 그들을 거세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그런 과격한 처벌이 과연 옳은가 되묻는다. 그리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억압과 고통을 살인이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구원받는 살인자들, 그들에 대한 통념과 법의 잣대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보여준다. 

확신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특히 법과 도덕에서 출발한 확신은 그걸 가진 사람이 일종의 우월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런 확신조차 상황에 따라서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는 것으 저자의 생각이다. 그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소설은 그런 논쟁적인 상황을 문제 삼고 있다. 개중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월리엄 골당의 『파리대왕』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도 있지만, 존 그리샴의 『고백』, 조디 피콜트의 『마이 시스터즈 키퍼』처럼 우리가 한 번도 진지하게 다뤄보지 않은 작품들도 많다. 

어떤 작품을 다루고 있던, 저자가 딜레마를 보여주는 이유가 우리의 확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데 있지는 않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방점 찍는 것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가능성과 양면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논리와 통찰로써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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