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랜드
토미 더글러스 연설, 한주리 그림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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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랜드’는 쥐들이 모여 사는 사회다. 쥐들은 마우스 랜드에서 태어나서 살고, 놀다가 죽는다. 쥐들도 우리처럼 5년마다 투표로 정부를 뽑는다. 특이한 건 정부가 거대하고 뚱뚱한 검은 고양이라는 점이다. 어째서 쥐들이 마우스 랜드의 통치자로 검은 고양이를 뽑았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간 정치라는 것은 항상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쥐들은 5년마다 부지런히 검은 고양이에게 표를 던질 뿐이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들은 고양이에게 좋은 법만 통과시켰기 때문에 쥐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쥐들은 검은 고양이를 몰아내고, 이번엔 흰 고양이를 대표로 뽑았다. 흰 고양이는 마우스 랜드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고양이에게 좋은 비전일 뿐이었다. 쥐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고, 그때마다 쥐들은 다른 색깔의 고양이를 정부로 선출했지만, 색깔이 달라도 고양이는 여전히 고양이일 뿐이었다. 고양이는 결코 쥐를 위해서 마우스 랜드를 통치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한 생쥐가 다른 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대체 왜 우리는 고양이들을 정부로 뽑는 거야? 생쥐로 이루어진 정부를 왜 뽑지 않는 거지?” 이 말을 들은 다른 생쥐들이 일제히 외쳤다. “빨갱이가 나타났다. 잡아넣어라!”


짧으면서 강렬한 이 우화는 캐나다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1962년 캐나다 의회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토미 더글러스는 1944년 사회주의 성향인 CCF(합동공화연합) 당대표로 북미대륙 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을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서평작인 『마우스 랜드』는 그런 그가 의회에서 연설한 내용을 그림책으로 옮긴 것이다. 다소 짧은 분량이지만,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풍자가 통렬하다.
고양이는 고양이기 때문에 색깔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생쥐의 권리는 생쥐만이 대변할 수 있다는 사실. 기득권의 ‘빨갱이 프레임’에 눈이 먼 생쥐들은 그 명백한 현실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생쥐의 혁명으로 끝났다면, 그래서 고양이를 완전히 마우스 랜드에서 퇴출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면 『마우스 랜드』는 그저 흔한 유토피아의 동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비극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여기서 요청되는 것이 비단 혁명적 구호는 아니다. 우리도 마우스 랜드의 생쥐들처럼 그저 태어나서 살고, 놀다가 죽을 뿐이다. 복잡할 것도 없이, 그저 우리의 권리를 진정으로 대변할 이가 누군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상식적 생각이 우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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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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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쇠고기 파동에 의해 촛불 시위 문화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무렵, 반대 진영의 가장 강력한 논리는 촛불 시위대가 위법 행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집시법’에 따라 집회 장소와 시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의 규모가 커지다 보면 자연스레 사전에 신고한 장소를 이탈하거나, 시간을 넘기기 일수다. 그럴 때마다 경찰은 법의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시위대의 위법성을 비난하곤 했다. 헌법에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명시되있음에도, 그들에겐 공공의 안녕과 법질서의 수호가 더 큰 명분이 된다. 불행히도, 이는 고전적이면서도 강력한 화법이다. 미국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시위대를 처벌한 전례가 많다. 1963년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시에서 시민권을 주장한 한 한 무리의 흑인 시위대가 법의 처벌을 받게 됐다. 당시 대법관이었던 윌리엄 브레넌은 다음과 같은 소수의견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소요사태와 시민 불복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 주의를 돌려서는 안 된다. 그 중요한 문제란 국가가 도로나 인도를 통제할 권한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이나 결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다.” 브레넌의 이 소수의견을 빌어서 박용현 기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떤 법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면, 그 법을 위반하는 행동은 정당할 수 있다.” 그 행동에 이름 붙이자면, ‘정당한 위반’이라 할까.


서평작인 『정당한 위반』은 박용현 기자가 <한겨레 21> 편집장 시설에 쓴 칼럼을 묶은 글이다. 그 시기가 2008년부터 2011년이니,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퇴보’가 적나라하게 담겼음은 부득이한 일이다. 일반적인 칼럼 모음집이 시의성이 떨어지거나, 내용의 통일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지만, 『정당한 위반』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뚜렷한 편이다.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미국 노트러데임대학 로스쿨 과정을 이수한 주간지 기자라는 특이한 이력에서 알 수 있지만, 그는 주로 우리 사회의 ‘법’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P의 항변」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어보면 법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칼럼에서 저자는 “사법고시는 왜 안 봤어?”라는 질문에 에두르다 결국 이렇게 실토한다. “권력에 굴종하고 그러면서 권력을 지향하는 게 법조인의 DNA 같다. (…) 이 땅의 모든 법조인이 법조인임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법조인이 아닌, 그들을 비난하는 칼럼을 쓰는 지금의 직업을 가진 것에 의기양양함을 드러낸다.


법을 배우는 것이 정의를 배우는 일이어야 하고, 법의 집행이 정의의 집행이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쁜 세상은 그 정의를 회색의 망토로 감추고 있다. 저자는 저 회색의 두툼한 망토 속에서 그가 배웠던 상식을 끄집어내는 일을 본분으로 삼은 듯하다. 그것이 나쁜 세상을 살아가는 ‘그’와 소통하려는 흔적이자 연서라고. 맥락상 수취인 ‘그’는 마땅히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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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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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12 정당한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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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평 - 퇴짜 맞은 명저들
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지음, 최재봉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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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11 악명 높은 명작들에 대한 매우 그럴듯한 악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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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랜드
토미 더글러스 연설, 한주리 그림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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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신랄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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