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러셀을 말하다 -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세계를 변혁하는 것에 대하여
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김한조 삽화 / 시대의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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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판계에 노엄 촘스키버트런드 러셀의 인기는 좀 각별한 데가 있다. 일찍이 2000년대 초부터 촘스키는 다수의 저작을 통해 미국과 거대 언론에 반항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알려졌었고, 러셀의 경우 그간 철학자와 에세이스트로만 알려졌었지만, 최근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등이 소개되면서 촘스키와 마찬가지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대중에 알려지게 됐다. 그들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비록 그들의 전공 분야와는 무관한 특정한 정치적 입장과 실천적 태도 때문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이를 통해 시대와 대중이 요구하는 지식인의 참모습을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작인 『촘스키, 러셀을 말하다』의 제목은 강렬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과연 후대의 지식인 촘스키는 전대의 지식인 러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 책은 1970년 사망한 버트런드 러셀의 추모 1주기를 맞아 1971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촘스키가 강연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러셀을 추모한 강연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강연의 주제가 러셀은 아니다. 촘스키는 1강에서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에 대한 러셀의 인식론과 자신의 언어학적 입장 설명하고, 2강에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에 대해여’란 제목으로 1강을 통해 인식한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다뤘다. 정리하자면 1강은 세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인 작업이라면, 2강은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인 노력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일련의 작업이 촘스키 개인의 성과는 아니다. 그는 강연에 들어가기 앞서 러셀이 설파했던 교육관을 언급한다. 러셀은 진보적 교육의 과제가 “통제가 아니라 사물의 가치를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 자유로운 공동체의 현명한 시민들을 양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고, 또 개인의 자유로운 창조성과가 시민정신을 결합함으로써, 오직 소수만이 성취할 수 있었던 가치를 사람마다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교육이란 세계를 ‘해석하는 일’과 ‘변혁하는 일’을 하나로 잇는 일이다.

우리가 러셀과 촘스키를 언급할 때는 주로 후자, ‘변혁하는 일’에만 골몰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세계를 ‘해석’하는 이론적인 작업 없이는 ‘변혁’도 미완성에 머무른다. 러셀의 교육관에 충실하게 따른 촘스키는 이 책의 1강에서 ‘해석하는 일’을 심도 있게 다뤘다.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대한 언어학적인 접근은 분명 우리에게 생소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이론 작업을 거친 뒤 우리의 ‘변혁’에는 확고한 신념이 더 해 진다. 그 신념이 촘스키와 러셀이 오랜 세월 세계를 변혁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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