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김병순 옮김 / 돌베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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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달팽이의 삶에 끼어들었단 말인가?’    

유럽여행 중에 얻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병으로 병상에 누워 지내던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는 친구가 제비꽃 화분과 함께 가져온 달팽이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평생 건강하게 살았지만 원인불명의 병으로 전신 마비가 왔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누워서 숨 쉬는 것밖에 없었던 그녀였다. 원인 모를 병이 베일리의 신체를 구속한 것처럼, 달팽이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전혀 다른 환경에 던져졌다. 그녀는 달팽이집에 꽁꽁 숨어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던 달팽이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져 영 마뜩잖았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뒤,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던 달팽이가 더듬이를 부드럽게 흔들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분에서 화분 밑 접시로, 화분 옆 전기스탠드로, 그리고 마루바닥에 까지. 달팽이는 느리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산책하고 관찰하듯 끊임없이 돌아다녔고, 광고지며 편지지를 파먹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대신 꽃잎 하나를 건넸다. 달팽이는 먹는 건지 안 먹는 건지 모르는 속도로 꽃잎을 먹었다. “귀를 바싹 기울였다. 달팽이가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나는 달팽이가 보라색 꽃잎 하나를 저녁밥으로 꼼꼼히 다 먹어 치우는 한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숨 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던 베일리는 달팽이 덕분에 새로운 할 일이 생겼다. 달팽이를 관찰하고 먹이를 챙겨주고, 이 친구에 대해서 더 잘 알아보는 것. 

『달팽이 안단테』는 투병 생활 중에 달팽이를 키우게 된 저자가 달팽이를 관찰하면서 쓴 일종의 관찰일지이자, 에세이다. 그렇다고 ‘관찰’이라는 행위에 집중하여 쓴 것도 아니고, 달팽이에 관해 생물학적으로 깊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병으로 일그러진 자신의 일상을 절망적으로, 또 덤덤하게 써내려간 부분은 투병 에세이 같기도 하다. 달팽이와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책 속에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 절망 속에 우연히 찾아온 달팽이, 달팽이 특유의 느리지만 부지런한 움직임은 베일리에게 큰 위로이자 감동을 주었다. 베일리는 그 감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 

원인 불명의 병, 전신 마비, 달팽이라는 작은 친구. 베일리가 처한 상황은 상투적인 감동으로 이어질 법도 한데, 오히려 베일리는 달팽이를 통해서 깨달은 생명의 감동을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그 관조의 태도에선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투병과 달팽이 관찰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에 도달하는 이 책에 대해 사회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O. 윌슨은 딱 한 문장으로 평가했다. “아름답다”고.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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