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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8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1월
평점 :
빨강 머리 앤
#문예출판사 #루시모드몽고메리 #문예세계문학선138 #도서협찬 #이순영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가슴에 솟아나는 아름다운 꿈
상냥하고 귀여운 빨강머리 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가슴에 솟아나는 아름다운 꿈
하늘에 뭉게구름 퍼져나가네
빨강머리 앤 귀여운 소녀
빵강머리 앤 우리의 친구
어릴 적 애니메이션 노래이다.
막 초록지붕 집에 도착해서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들은 시점부터 언제까지일까? 퀸즈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라고 할까?
그때까지 앤의 모습에 어울리는 노래 가사라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는 앤 e(이름에 e를 넣어 발음해 달라는 것이 자꾸 떠올라서)의 어린 시절보다, 아저씨가 죽고 마릴라 아주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초록지붕 집에 남기로 한 그 순간이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기억이 날 듯하다.
물론 길버트와의 이야기도 나름 긴장되고 해피엔딩으로 인상적이지만 말이다.
462페이지를 옮겨 놓지 않을 수 없다.
퀸스에서 돌아와 창가에 앉았던 그날 밤 이후로 앤 앞에 펼쳐진 미래는 좁아졌다. 하지만 발 앞에 놓인 그 길이 아무리 좁다고 해도 그 길을 따라 잔잔한 행복의 꽃들이 피리라는 걸 앤은 알고 있었다. 마음을 다해 일하고 고귀한 꿈을 키우고 마음 맞는 친구들 곁에 두는 기쁨은 오롯이 앤의 것이었다. 그 무엇도 앤의 타고난 상상력과 꿈이라는 이상 세계를 빼앗아 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길 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앤이 가만히 속삭였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나니, 온 세상이 평안하여라."
이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앤은 흡족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창가에 앉아 있었고, 벚나무 가지 사이를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고, 박하향 향기를 맡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 보는 것, 내 경우에 대입해 보는 것이 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가만 생각해 보니 요즘 내가 기운이 나지 않는 것이 내 미래의 길 역시 좁아졌다고 생각해서 아닌가 싶다.
앤에게 부모님 같았던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건강이 앤이 맘껏 미래로 나아가는데 부담이 되고 결국 선택을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나도 그런가? 생각해 본다. 앤처럼 뚜렷한 목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지 결정도 못했지만 그저 부모님의 건강이 내 발목을 잡고 그 핑계로 더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것 아닌가~싶다.
앤은 흡족한 마음이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상상력을 빼앗기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스물 언저리의 소녀 만도 못한?(앤이 길버트를 경쟁자 삼았듯이 나도 앤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뿌듯한 마음이 든다.
성장과 함께하는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반복 속에서 늘 함께 했으면 하는 지인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주인공의 성장이 곧 나의 성찰과 맥을 같이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초록지붕집에서 쫓겨나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간 앤의 이야기였다면 이 소설은 어땠을까?
처음부터 길버트와 잘 되었다면 어땠을까?
마릴라 아주머니를 홀로 두고 대학에 진학했다면 어떤 이야기로 작가는 풀어냈을까?
잠시 다른 생각의 가지를 뻗어본다.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저으며 혼잣말을 해본다.
앤이 흡족했다고 했으니 가장 나은 선택이었으리라.
좁아진 미래, 하지만 상상력과 꿈을 잃지 않는... 나도 힘을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