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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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할매 #창비 #황석영 

작가님은 제목을 왜 할매라고 했을까? 

그저 어린 소녀가 성장하여 가족을 이루고 할머니 소리를 듣는 개인의 서사, 일대기? 

그 와중에 벌어지는 어떤 이야기, 난 그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 


역시 내 생각은 단순했다. 


이 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이 엄청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은 이 엄청난 이야기가 담긴 책의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처음 부분부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등장한다. 

생각보다 그 새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이름도 있고 그 새의 짝 이름도 알게 된다. 

갑자기... 그 새가 죽는다. 

길다 싶었는데 갑자기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새가 품고 죽은 자리에서 새로운 주인공들이 나타난다. 

하루살이, 어린 팽나무 그리고 한참을 지나 드디어 사람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어렵고 궁핍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왜 그럴까? 

남편이 바로 옆에서 죽지만 죽을 다 먹고 나서야 곡을 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 계속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장소는 한정된다. 

어린 팽나무 

그 나무가 몇 백 년을 넘겨 몸집이 커다랗게 되어 뿌리를 깊이 박고 있는 금강과 만경 사이 그즈음을 주변으로 펼쳐지는 여전한 가난과 궁핍 속에서 나름 팽나무가 살고 있는 그 바다가 갯벌이 주는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말이다. 


그 옛날 그곳에서 홀로 살며 많은 것들을 주변에서 받을 수 있었던 한 사람이 직접 풍요로움을 주던 그곳에 자신의 몸을 보시하던 그곳. 그렇게 자신의 몸을 보시했기에 후대에 이르러까지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그 사람의 유기물을 분해했던 칠게와 그 칠게로 오랜 여행에서 소모한 에너지를 채우던 도요새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이어진 그곳에서의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고 펼쳐진다.


한 사람의 보시로 풍요로움이 오랜 기간 이어졌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연과 인간, 서학과 동학, 무속과 신학, 개발과 보존, 쇄국과 개방, 부모와 자식, 전통과 새것, 옛사람과 후대의 갈등 속에서 그리 훌륭하지 못한 역사의 상처가 이곳을 중심으로 할퀴어지고 상처가 더 벌어지는 속에서 팽나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사실 작은 팽나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라고 적고 싶어졌다. 


처음 작은 새로 시작된 이 오랜 이야기를 여전히 바라보는 그 팽나무가 할매였다. 

오랜 기간 풍요로왔던 바다와 갯벌이 이제는 막히고 마르고 굳어 죽어가는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할매는... 

나고 죽는 모든 것들의 이유를 묵묵히 쳐다보며 적어 내려간 할매의 이야기를 내가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저 나무 앞 장소에서 벌어진 시간의 변화로 읽혔는가 되묻는다. 

작가님도 밝히듯이 그저 나무를 둘러싼 역사가 아닌 인연과 관계의 순환, 카르마의 계속되는 전이에 관한 이야기에 동의한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것들이 별개가 아닌 인연에 묶여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게 해서 작은 새와 칠게, 생합, 사람, 나무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이다. 


작가의 말 후반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생사는 물론 세상만사는 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벽은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큰 바람일 것이다.' 

본문의 인연에 대한 문장도 하나 옮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예전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뿌리였습니다. 다 함께 굶어 죽기보다는 차라리 서로 헤어져 상대방을 그리워함만 못할 것입니다. 좋다고 취하고 나쁘다고 버림은 사람 마음에 차마 할 짓이 못되지만,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헤어지고 만남에도 명운이 따르는 것이겠지요. 바라옵건대~' 문득 꿈에서 깨어났다. 


의미 있는 장소에서의 긴 시간을 읽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도서협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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