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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평점 :
빛의 호위
#조해진 #소설집 #창비
여러 단편 소설의 묶음이다.
제목 '빛의 호위'는 첫 번째이고 가장 집중해서 읽은 소설이기도 하다.
굳이 주관적인 순위를 매길 필요는 없지만 난 '빛의 호위'와 '산책자의 행복'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책 모서리를 접은 듯하다.
아직도 책을 읽는 내공이 부족해서 현대시만큼은 아니지만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면서 작가님이 이 문장을, 이 소설을 쓰며 어떤 마음이었는지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내 나름대로의 이해도 괜찮다고 주변 지인들은 위로? 하며 말해주지만 작가님이 쓴 의도도 파악하며 내 나름의 이해도 하고 싶은 욕심이 늘 있다.
필사를 하면서 옮겨 적은 문장들을 여기에도 남겨본다.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마술적인 순간을 그녀는 사랑했을 테니까'
이 문장에서 나오는 빛은 그냥 어둠을 밝히는 것 말고도 소설을 읽다 보면 얼마나 따뜻한 온기를 지닌 빛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 그저 카메라를 팔아 생활을 유지하라는 마음뿐이었을지라도 그 마음이 밝음과 온기를 지녀 사람이 살아가려는 의지를 생기도록 만든 마술적인 순간을 탄생시키는 그 찰나의 빛... 멋지다. 이렇게 표현하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냥 부럽기만 하다.
'안젤라는 포갠 두 손을 오른쪽 귀에 대 보이며 푹 자라는 다정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찌 보면 소설 속 등장인물의 행동을 그대로 글로 옮긴 별거 아닌 문장이지만 이 장면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가 다르다고 '정'이 오고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고 죽음 또한 다른 살아 있는 자들의 애도 속에서 봉합될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은 단절이 아니고 존재를 완성하고 성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추상적인 과정...'
'죽음은 아무것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것'
죽음에 대한 사색이 펼쳐진다. 유실물 센터와 삶...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 기억을 하더라도 다르게 적히는...
'기억을 하더라도 한나와는 다른 무게와 질감으로 그 시절을 간직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런 요동치는 삶 말고 '몇 개의 동일한 일상과 감정이 반복되는'... 겨우 그런 삶은 전진하려 했으나 장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허무와는 다른 허무. 즉 애초부터 전진을 시도하지 않은 고정된 허무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른 소설에서는 유사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관성과 습관에 복종하며 사는 건 심연을 모른 채 표면만을 훑는 방식...' 지금의 내 모습과 같은 상황을 이렇게 멋진 문장으로 '쿵' 하고 한 대 내려치는 듯한 표현을 할 수 있는 필력의 힘은 도대체...
'가능성은 실패하고 좌절할 확률과 비례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실패는 또 다른 가능성에 가 닿은 사다리가가 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직선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라는 문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삶에서 전진을 겁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장과 달리 겁 없이 전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는 게 원래 이렇게 무서운 거니?'
'그렇게 하루아침에 존재가 부재가 될 수 있다..'
'나는 아직 살아남았고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가?'
'난 어째서 그의 딸인가?'
이런 삶의 밑바닥을 느꼈을 때 나올만한 상황에서부터 미래의 죽음을 떠맡으며 강인한 현재를 살기 위해 힘쓰는 이야기
읽지 않고 답이 없어 무력해져도 지인들과 고인들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와 메시지
시간을 거스르고, 생활 방식과 생각이 너무 달랐던 세대를 관통하고, 부끄러운 시대적 배경이 소재와 화두가 되어 한 개인의 운명을 기억과 추억으로 포장한 스토리이다.
한 줄만 적는다면 소설에 나오는 문장 그대로 '살아있는 동안엔 살아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려는 애씀을 알 수 있는 이야기의 묶음이다.'
단순하게 주어진 시간을 소비하며 사는 삶도 있고, 환부 없는 통증이 있고, 늘 함께하고 싶지만 주변에 생기는 부재를 감당해야 하는 두려움에 대한 걱정이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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