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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ㅣ 권정생 문학 그림책 8
권정생 지음, 김병하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소
시 같은 첫 줄이 기억난다.
이슬에 멱 감은 풀잎
소는 그 풀을 먹고 배가 동동 부른다.
'이슬에 멱을 감는다.'
'배가 동동 부른다'
어쩜 표현이 이리 예쁠까?
소는 아이의 뜻대로 커다란 몸뚱이를 움직여준다.
코에 묶인 동그란 것을 당기는 아이의 힘 그까짓 거 홱 뿌리치면 그만일 텐데...
소는 아이를 안고 간다.
'소는 아이를 안고 간다'
그림자가 묘하게 겹치는 그 순간을 또 이런 문장으로...
단순히 그림자의 겹침뿐 아니라 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을 어쩜 또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착한 소를 그린 그림책에서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서너 장 반복되어 겹쳐 그려진 그림이 나온다.
목 인지 코 인지 어디인지 모르지만 소에 묶인 줄은 팽팽하게 그려져 있고, 그 줄을 당기는 힘에 반대로 버티는 앞발과 뒷발 그리고 그 버팀을 알 수 있는 몸...
4페이지 정도에 그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글을 쓴 작가와 그림을 그린 작가님은 어떤 마음으로 이 부분을 강조하였을까?
여태 착한 소였는데... 말을 듣지 않는 이 서너 장의 그림은?
착하디 착한 소의 이미지로 시작한 책은...
그저 착하기만 해서 슬프기 그지없는 시간 속에서 이별을 겪는다.
시간이 지나면 주인이 바뀌고... 싫지만 또 주인이 바뀌고...
평생 함께 살고 싶었다.
소는 이제는 여기서 죽는 때까지 살고 싶은 것이다.
한번 헤어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것도 소의 슬픔이다.
소의 운명이다.
그렇게 떠나보내고 또 떠나보내던 주인들은 이제 늙어버린 소를 어떻게 처리할지 소는 또 알고 있다.
자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대로 따르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다친 뒷다리가 아프지만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걸어간다.
장터까지 꽤 긴 거리를...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좀 더 정성껏
좀 더 부지런히 일하고 싶었던 것으로
주인이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려서가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다고...
마지막까지도 그렇게...
부지런히 부지런히 쓰러지지 않고 걷기로...
마지막 소는 버티지 않는다.
대신 소의 눈에 눈물이.
워낭소리를 본 적 있다.
수익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제작자와 감독 등 무수한 안 좋은 이야기와 영화 상형 후 일상이 무너진 노부부의 불편함이 남았으나 영화 그 자체로 누렁이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팽배한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한참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었다.
권정생 님의 소는 워낭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림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은 하나도 없다.
오로지...
오롯이...
소와 소의 생각... 이 있을 뿐...
인간은 그저 소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구정물에 삶은 죽을 끓여주는 정도...
먹지 못할 솔방울과 나무껍질도 빼주는 성의 없이 말이다.
이중섭 님도 이런 소를 좋아해서 그렇게 평생을 그렸을까?
우리 민족이 민중이 사랑하는 '소'가 더욱 잘 이해가 되는 이해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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