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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ㅣ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이웃집 빙허각
#채은하 #장편동화 #창비 #규합총서
고3 학생들을 오랫동안 지도하다 보면 알 수 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희망 진로/학과를 순위로 매겨본 적은 없지만 매년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물론 맡고 있는 내 학급 아이들의 성적, 성향 그리고 근무하는 학교 분위기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지만... 매년 같을 수 없는 것이 어쩜 너무 당연한 것이다.
눈에 띄는 건 절대 멀리 등하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면접을 많이 두려워한다는 것, 사범대와 교대 지원율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간호학과는 여전히 인기 있지만 예전만큼은 아닌 듯하고... 의대, 약대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증가했고..
교사가 되겠다는 아이들, 간호사가 되겠다는 아이들을 상담하는 장면을 목격하기 쉽지 않다.
왜 그럴까? 혼자 생각도 해보았다.
일단 내가 행복해 보이지 않나? 내가 행복해 보인다면 날 보면서 교사의 꿈을 키우는 학생도 있었을 텐데...
나름 위계가 복잡하지 않아 평등한 편이고 자율성이 꽤 주어지고 방학이라는 자기 계발의 여유도 주어지는... 아! 경제적인 것인가? 그것뿐?
어떤 학생이 이런 내 고민에 이렇게 답변한 적이 있다.
"그냥 선생님은 '전달자'일뿐이잖아요? 교수님들이 만들고 써놓은 교과서 안에 이론, 지식, 정보를 전달하는 '전달자' 뭔가 창의적이지 않고 재미없어 보입니다. 막혀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친구 000도 간호학도 비슷하다고 했어요. 독립적인 듯 하지만 현장에서 의사라는 동료이자 명령자에게 '협력' 보다는 따라야 하는 사람... 선생님도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 전에 교과서에 막혀 있는 답답한 상황이라는..."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고 몇 십 년을 자존감을 지켜가며 살아왔는데 내 직업은 그렇게 평가될 수 있구나. 싶었다.
빙허각... 기댈 빙, 허공 허, 집 각을 쓴다.
허공에 기댄다. 혹은 아무 데도 기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거꾸로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이름을 지은 거야. 물론 아무 데도 매이지 않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
위에 언급한 학생은 그렇게 선생님이나 간호사라는 직업이 누군가와 얽매여 있고 무언가 탐구하고 활동하는 영역에서 제한이 주어지는 벽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나 싶다.
할머니와 덕주가 느끼는 것과 뭔가 비슷하지 않나?라는 억지를 부려본다.
성이 달라 공감하기 힘들어서 나름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낸다는 것이 겨우 이것이다.
훨씬 오랜 세월 여성들이 느꼈을 감정은 현대 몇몇 직업의 사례보다 훨씬 더하고 무거운 억누름일 텐데 말이다.
덕주는 말을 오래 골랐다. 갑갑하고 답답한 기분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할머니가 나직하게 말을 보탰다.
"오라버니가 제 갈 길을 정하는 걸 보고 속상했나 보네."
"아뇨, 속상하지는 않았어요. 오라버니는 사내고, 저는 여자 아이니 까요. 다들 원래 그런 거라고 하잖아요. 다만 저는 궁금할 뿐이에요. 여인들은 정말 비슷비슷하게 사는 건가."...
덕주의 고민을 한 방에 잘 드러난 할머니와의 대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빙허각 할머니의 비범하면서도, 비범했기에 좋기만 하지는 않았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이후 길쌈하는 날도 아닌데 덕주네 마당에 모인 여인들의 한바탕 잔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다행스럽게도 물은 무언가에 막혀 고이지 않고 책 속 경강처럼 잘 흘러가며, 억누르는 힘보다 이겨내는 힘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전해주기에 독자 입장에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새벽녘 언덕을 올라 막힘 없이 흐르는 강물이 보고 싶어진다.
"꿈꾸지 말라는 책을 봐도 마음은 자라니 참으로 곤란한 노릇이지."에 대한 이 세상의.. 나만의.. 답을 찾도록...
#도서협찬 #동화 #여성실학자 #빙허각 #창비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