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밥별'이라는 별
저녁때 밥을 먹습니다
저녁때 된장에 마른 멸치를 찍어 먹습니다
자꾸 목이 막혀 찬물도 몇 모금씩 마십니다
좀 더 어둡자 남쪽 하늘에 별이 떴습니다
그 별 오랫동안 쳐다보며 씹는 저녁밥
속으로 나는 그 별을 '밥별'이라 이름 붙입니다
어느 틈엔가 그 별이 무척 신 얼굴로 진저리치며 빛납니다
눈에 어려 떨어질 듯
어느덧 그 별 내 들숨을 타고 들어와
마음에 떴습니다
누군가가 떠서 초저녁 저무는 마음을 내려다봅니다
삶은 드렁칡, 삶은 드렁칡, 마음 엉키고
눈에 드렁칡처럼 얽히는 별의 빛이여 (P. 15 )
봄 저녁
모과나무에 깃들이는 봄 저녁
봄 저녁에 나는 이마를 떨어뜨리며 섰는
목련나무에 깃들여보기도 하고
시냇물의 말(言)을 삭히고 있는
여울목을
가슴에 만들어보기도 하다가
이도저도 다 힘에 부치는
봄 저녁에는
사다리를 만들어
모과나무에 올라가
마지막 햇빛에 깃들여
이렇게, 이렇게
다 저물어서
사다리만 빈 사다리만 남겼으면
봄 저녁 (P.30 )
꽃밭을 바라보는 일
저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 가는
사랑을 했으면, 그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꿀 수 있었으면,
꽃 속에 머무는 햋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으면서 그래 아직은
몸보다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내 숨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 도망 온 별 몇을
꼭 나처럼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일 같네 (P.32 )
- 장석남, <꽃밭을 바라보는 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