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안에 죽지 않는다면

 



       외출했던 옷 그대로 식탁에 앉아 자괴한다
       모든 남의 것이라는 게 이렇게 마땅치 않구나
       나이 오십도 남의 것 같고
       마이스터 에카르트 영성 청강도 남의 학교의 남의 것
       아침 9시 강의에 맞춰 용을 써 채비해 나갔건만
       왜 굳이 계단을 한 층 더 올라 딴 강의실에 가 넋을 놓고 앉아 있었을까
       놀라 뛰쳐나가 아래층으로 내달렸지만
       중세영성신학의 문은 굳게 닫히고
       들어갈 용기 안 나 집으로 허무히 돌아왔다

       우우, 난 치매야
       중세영성신학이 뭣이 어떻다고?
       밝다고? 어둡다고?
       다시 찾아 촛불 돋우고 싶었던
       젊은 날 내 '영혼의 어둔 밤'
       어두웠으나 밝았던 내 중세의 깊고 푸른 옥탑
       결국 지나간 남의 것 아니런가?
       전화벨이 틀어지게도 울어 신경질적으로 받으니
       작고 낮고 조심스러운 동창생 목소리
       나 지금 우울하거든, 끊자고 말하려는데, 얼라리
       오늘 아침 일을 줄줄이 사설을 붙여 대환란이라도 당한 듯 쏟아내는 거였다
       전화통 저쪽이 쥐죽은 듯해 말을 좀 쉬자 동창생년이 읊는다
       너 일주일 안에 안 죽으면 다음주에 그 강의 들으러 다시 갈 수 있어

       죽는다는 말에 풀이 확 죽었는지
       다음주가 있다는 말에 영혼의 어둔 밤 눈꺼풀이 확 들렸는지
       그만 내 목소리 수굿해지며
       그렇구나, 맞다. 그 사실을 깜빡 잊어먹고 있었네
       밝은 알전구 같은 대답을 하는 거였다

       일주일 안에 죽지 않는다면 다음주가 있다고
       뭐든지 이렇게 바르게 생각해낼 줄 알아야 한다고
       끊어버리려던 동창생년의 전화 한 통화가
       오늘 놓친 중세영성신학보다 못하지 않게
       내 귓구멍을 뜻밖에 제대로 움직여줬다

 

                                            -이진명 詩集, <세워진 사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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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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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4 2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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