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야만 한다
최승자
때론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몹쓸 고통은 버려야만 한다.
한때는 한없는 고통의 가속도,
가속도의 취기에 실려
나 폭풍처럼
세상 끝을 헤매였지만
그러나 고통이라는 말을
이제 결코 발음하고 싶지 않다.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위에서
나는 너무 오래 뒤뚱거리고만 있었다
목구멍과 숨구멍을 위해서는
동사(動詞)만으로 충분하고,
내 몸보다 그림자가 먼저 허덕일지라도
오냐 온 몸 온 정신으로
이 세상을 관통해보자
내가 더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
-최승자 詩集, <기억의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