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휴관
무대에서 내려왔어 꽃을 내미네 빨간 장미 한 송이 참 예쁜 애구나
뒤에서 웃고 있는 남자 한때 무지 좋아했던 사람 목사가 되었다 하네
이주 노동자들 모이는 교회라지 하도 괴롭혀서 도망치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하하하 그가 웃네 감격적인 해후야 비록 내가 낭송한 시라
는게 성직자에게 들려주긴 참 뭐한 것이지만
우린 조금 걸었어 슬며시 그의 딸 손을 잡았네 뭐가 이리 작고 부드
러울까 장갑을 빼려다 그만두네 노란 코트에 반짝거리는 머리띠 큰
눈동자는 내 눈을 닮았구나 이 애 엄마는 아마 모를거야 근처 미술
관까지 차가운 저녁 바람 속을 걸어가네 휴관이라 적혀있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다가 헤어지려네 전화번호라도 물어볼까 그가 나를 위
해 기도할 거라 하네
서로를 등지고 뛰어갔던 그 길에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구나 서로 뜻
밖의 사람이 되었어 넌 내 곁을 떠나 붉게 물든 침대보 같은 석양으
로 걸어가네 다른 여자랑 잠자겠지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
은 미술관처럼
-김이듬 詩集, <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