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되면 조기가 떼를 지어 올라왔다. 오죽하면 살구꽃이 피면 조기 떼가 몰려온다들 했을까. 그러니 어부들은 살구꽃이 필 즈음이면 조기 떼를 꿈꾸며 마음껏 설렐 수 있었다. 홍양 바깥 섬에서는 춘분이 지난 후에 그물로 잡을 수 있었다. 영광의 칠산 바다에서는 한식 후에 그물로 잡았고 해주 앞바다에서는 소만 후에 그물로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 흑산 바다에서는 음력 6, 7월에야 비로서 낚시에 물리어 올라 왔다. 굳이 밤에 낚시를 하는 이유는 이곳 물이 워낙에 맑기 때문에 낮에는 조기들이 낚시밥을 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조기가 밀물을 타고 올라올 때면 만개한 꽃들에 화답하는 듯 음악소리가 났다. 조기가 부레를 수축시켰다 펴는 소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기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물속에 구멍 뚫린 대나무 통을 집어 넣고는 귀를 기울이곤 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그물을 내려놓기 위함이었다.

 "가까이 가보지 않으려나?"

 약전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찾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나무숲을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저러할까. 연꽃잎에 내리긋는 작달비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딱히 무슨 소리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리하여 더더욱 가슴을 설레게 하는.....오래전 주어사 강학회에서 들었던 정체불명의 소리가 기억에 생생했다. 산짐승 기지개켜는 소리 같기도 한, 물고기 숨소리 같기도 한, 기어이 새벽잠을 깨우던 그 소리가 혹 조기 울음소리는 아니었을까. 이곳에 닿기 위하여 그리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뿌리라도 돋으려는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 발바닥을 간질였다. 통증인지도 몰랐다.

 "혹시 조기라도 낚으시게요?"

 "아, 아닐세. 괜한 소리였네."

 피시시 웃음이 새나왔다. (p.297~298)

 

                                               -김영주, <자산 정약전>에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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