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의 마케팅은, 양날의 칼이었다. 나처럼 [순례 주택]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독자에게는 당연히 읽게 한 동기였지만, ‘나는 유은실 작가가 부러워 죽겠다. 나보다 더 슬픈 사람이니까‘라는 추천사에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선입감과 불쾌감이 들었다. 슬픔은 각자 개별적이다. 슬픔은 더하거나 덜한 상대적 입장이나 상황이 아닌 절대적 감정이니 함부로 띠지나 책 뒤표지에 쓰지 마시길. 너무나 어린이였던 시간이 오래된 독자는, 부끄럽게도 이 분이, ‘ 어린 독자를 웃기고 싶다/ 묵직한 슬픔을 끊고 마음이 떠오르는 순간을 서사 속에서 만나게 하고 싶다.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로 내가 가진 변치 않은 열망이다. 그 열망의 뿌리는 아버지다. 내 능청의 근원‘(6)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 ˝말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라는 순례 씨의 말을 생각했다. 말을 다듬는 시간은 마음을 다듬는 시간이기도 했다.‘(22).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명랑한 생존자 박완서의 모든 작품을.‘ (196). 이렇듯 자신이 살아온 뿌리인 ‘이야기의 힘‘으로 쓴 책들을 읽은 아동청소년문학 독자들은, 그 이야기의 힘으로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제3의 유은실 작가님처럼 세상을 따뜻한 희망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 든든하고 고마웠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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