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상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슬픔은 KTX를 타고

횡성 상가에 간다

코로나에 걸릴까 사람들은

마스크 쓰고 숙연하게 문상을 하는데

고인의 영정은 코로나 별거냐는 듯

마스크 없이 내내 웃는다

상주와 인사를 하고 식탁에 앉는다

죽음을 모를 것 같은 기쁨은

먼저 와 자리에 앉아 있다

고인이 베푸는 육개장과 머릿고기를

먹기 위해 슬픔은 마스크를 벗는다

기쁨은 말을 걸며 소주를 권한다

건배는 눈치가 보이므로

슬픔은 요령껏 자작을 한다

슬픈 표정을 짓지 못하는

기쁨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슬픔은 아직 이승에 있을 이유를 생각하며

어찌 보면 영정의 표정 같은

기쁨에게 술 한 잔을 따른다

밥과 술이 차니

슬픔은 죽음을 비우고

기쁨 몰래 마스크를 쓰고 일어나

상주에게 인사를 한다

어느새 기쁨도 같이 가자고

슬픔을 따라나선다  (83)


-  강준모 시집, <슬픔의 단어들은 죽는다>-










지난 5월 사랑하는 제자가, 지난밤 술자리에서 내년의 빛나는 계획을 발표하고 환히 웃었는데

다음날 아침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었다. 한동안 인터넷질도 못하다 가까스로 어떡하든 살기 위해 다시 이 허방이라도 문을 열었다.

그는 83년 생이었고,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때에도, 키가 작은 여자 알바생이 인기 상품의 바닥을 긁기 위해 반신을 구부리는 모습을 보고 가장 편하게 아이스크림을 뜰 수 있는 인기 없는 종목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많은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나, 그 재능을 재화로 바꾸기 보다 곤란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싼 페이를 마다해서 업계의 염려와 원성을 받았다.

날마다 단톡방에 글 몇 편을 올렸는데, 글도 없고 카톡 응답도 없어 지인들이 연락을 했더니,

그의 아이폰이 비번이 걸려 누구에게라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파트너를 통한 사무실 그의 컴에 존재한 사람들에게 부음이 전해져 발인 전 날, 새벽까지 그가 사랑했고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서로 다정한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000은 40년 동안 자기가 할 일을 다하고 떠났으리라 생각합니다."라는 거룩한 장례미사의 강론이 모두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카톨릭에서는 사람이 세상을 하직했을 때 '선종'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이는 '선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무리 하다'라는 말의 준말이라 한다.

라틴어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세례명의 너를, 이밤도 우리 모두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안녕, 꼭 다시 만나자.

Adio Querid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