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







그녀는 허술한 이부자리가 깔린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다.

얇은 이불을 걷자 거의 부피가 없는

쇠약하고 야윈 육체가 드러난다.

밤새 움직이지 못해

토사물과 소변 섞인 시큼한 냄새가

젖은 자리에서 올라온다.



맑았던 얼굴은 흙빛이 되었고

구겨진 피부는 잔주름이 파인 채

스스로 내쉬는 호흡에도 온몸이 흔들리곤 했다.

가냘프게 세월 탄 손은 헐렁하고 품이 엷어

꼭 쥐어보아도 나를 되잡아주지 않는다.



그녀에게도

안이 잘 비치지 않지만 왠지

속내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은

반짝이고 하늘거리는 옷과

날아갈 듯 포근하고 말쑥한 맵시로

진심을 양껏 담아

호수처럼 거리를 활보하던

지난 시절들이 있었다.



납작하게 달라붙은

상반신을 천천히 일으켜

욕창으로 끈적거리는 등을 닦고

머리를 씻기어 몸을 말려주면

조금 부풀어 올라 생기가 피어나지만

그녀에게 여전히 상처 많은

깁거나 덧댈 수 없는 자국으로

오래된 시간들이 맺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익명일 뿐이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여러번

그녀를 사용했을 뿐

호흡을 불어 넣어보아도

다시 가눌 수 없이

바람이 새어 나가버린

나날은 갔다.



그녀를 들어 안으면

빛깔이 아름답지만

너무 얕은 기름때처럼

속삭이며 구겨지는 공기처럼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불투명으로 헐겁고



귓가에서 찢어진 숨소리가 바스락거릴 때

나는 커다랗고 가득차

떠오를 것만 같았던 오랜 날들을 예감할 수 있지만

기억 또한 지나가는 물질이라는 것을

쓸모의 용도에 따라

한때의 전성기를 보내는 가벼운 도구라는 것을

체념하면서도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녀를 달래지 못한다.



그녀는 사라질 만큼

눈을 꼭 감고 있다.



우리는 언젠간 다시 태어날 수 없는

찌그러지거나 평평한 존재가 될

그녀의 다음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이곳에 얼마나 더 남겨질지 두려운

살갗을 벗겨낸 흐릿한 품목으로서

함께 방을 나가야 한다.    (P.27)




-채길우 시집. <측광>-에서







질문들

을지로 3가






내가 울 때 넌 어디 있었니



벽이 최후의 저항자처럼 느닷없이 사라지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울음은

벽이 있던 골목 언저리에서 서성일 것이다



쭈그려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한낮의 태양은 그림자처럼 어두웠으므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간밤의 이야기들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사라질 것 같은 길에서 하염없이 달리는 사람들이

밤마다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 대었다



이 길은 매듭으로 연결되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눈이 내리는 골목 몇 군데를 지켜보았다



입을 가린 사람들과

말을 멈춘 사람들과

냄새를 흘리는 사람들과

보도블록 틈에 끼인 낱말들을 주워 모았다



꿈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판타지에 대해서는 서로가 끄덕거렸다



네가 울 때 나는 여기에 있었다는 걸   (P.41)






안녕의 노래




아기가 죽으면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장례를 치르는 마을이 있다지

죽은 아이는 죽은 아이가 아니고 사랑스러운 아이

칠레 어느 마을의 작별인사는 그렇게 노래가 된다지



노래가 사라질까 안개 속을 걸어가듯

조심스럽게 기억을 채집하는 사람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채집된 노래에 슬픔이 묻어 있다지



멸종의 시간들은 노래가 되고

육체가 사라지면 영혼은 제자리를 찾고*



기억은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된다는 기도를 믿는 사

람들이 있다지

우리들의 안녕이 영원한 작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을 했어

지구 반대편 어디에선가 노래가 들려온다면 말이지    (P101)




-유현아 시집,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에서ㅡ
































김혁분의 시 '당신의 그림자가 밟히던 그날부터'에서,

/어떤 기억은 딸꾹질이 된다/ 그림자처럼/ 딸꾹 / 일기장에 접힌 시간을 공유하며/ 당신의 그림자가 밟히던 그날부터 딸꾹질이 시작되었다 (36쪽)가 떠오르는 시간이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를 읽고, 책상 한구석에 쌓였던 시집들 속 귓속말로 ' 세상의 모든 '당신'에 대한 애도'와 '사라지는 세상을 위한 시'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잠자리 날개같이 가볍고 얇은 날개로, 부질없이 한 세상 팔랑팔랑 오늘도 날아다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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