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책장에 체 게바라 평전이 보이고
청년 전태일이 보이고
봉두난발 전봉준이 보인다
죽은 그들이 그렇게 모여 있다
혁명은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다
남이 만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다
(P.15)
그저, 안녕
죽고 사는 일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구나
네가 벗어놓은 신발 속에
따뜻한 어둠이 가득 찼다
너의 맨발은 너무나 선명해
신들이 벗겨놓은
비명 같았다
함께 멱감던 시냇물도 말라버리고
너를 데려간 깊은 소도
울음을 멈춘 지 오래
오래전 내 기억을 다녀간 것은
너의 맨발
짫은 여행을 마친
햇살 한줌
(P.58)
지렁이
사는 것은 방향이지
노력이 아닐지 몰라
온몸을 유언으로 남겼다
잠든다는 것은 평화
당신이 가져간 평화만큼
지상에 그늘이 졌다
검은 개미들이
당신이 향했던 곳으로
당신을 나르고 있다
(P.112)
/ 윤관 시집, < 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