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순간이다 -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김성근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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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의 나이에도 야구장에 꼿꼿하게 서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대한민국 최장수 야구 감독. 2022년~2023년 김성근 감독과 나눈 인터뷰와 여러 매체의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책이 완성됐다. 

오랜 기간, 지금까지도 자신의 자리에서 베스트로 활동하는 노감독의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강력한 응원의 메세지를 전해준다. 


나는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고 싶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절망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야구에는 ‘다음 경기’가 있지 않은가p12


야구나 인생이나, 한시도 멈춰 있는 순간이 없다. 순간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은 똑같다. p2


인생이란 결국 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 내일 마주치는 순간들, 매 순간에 한 결정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 된다.p22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의식’이었다.

마음가짐.

상황에 인정하는 것과 굴복하는 것의 차이.

상황은 인정하되, 굴복하지 않고 언제나 가장 나쁜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되, 비관을 바탕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나아가는 지점에서는 낙천적으로 행동하기를 말한다. 그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1942년에 교토에서 출생한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하기 위해 한국 영주 귀국을 선택한다. 1964년. 아직 한일 간에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 그렇게 집을 떠나면 다시는 못 올 수도 있는 상황. 막내아들의 생활에 대해 가타부타 관여를 하지 않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완강히 반대하셨던 게 그의 영주 귀국이었다. 결국 야구를 선택한 아들을 받아들이며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아들과 사진을 찍고는 형제들을 불러

 “이 아이는 여기 있을 아이가 아니다. 보내주자.”

라는 장면에서 김성근 감독이 한시도 쉬지 않고 어떤 예외도 두지 않으며(3번의 암수술도 아무도 모르게 받고 바로 경기장에 섰을 정도로) 자신의 ‘의식’을 단련시키는 모습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게 떠난 오사카공항에서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다음날로 출국이 연기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의 방이 이미 말끔히 정리되어 자신이 이 집에 살았다는 흔적이 싹 사라져 있었다는 일화에서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함 속에 담긴 애정이었다.


각진 돌멩이들은 산골짜기 속 물을 따라 바다까지 흘러 내려온다.

거센 물살을 타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내려온다. 

부딪히는 속에서 연마되고, 어떤 데서는 스톱 되고, 고생하고, 고통을 겪고,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아 흘러가고 또 흘러간다. 

결국 세월이 흘러 바다에 가까워 갈 때는 요만한 돌멩이가 되고 마침내 모래가 된다.


그게 인생이다. 


그런데 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다 보면 돌은 반드시 어딘가에 막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꽉 막히고 답답한 순간이 온다.

평범한 사람은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혹은 문제가 알아서 해결되기를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반면, 뛰어난 사람들은 문제 속에 푹 빠져서 깊이 탐구하고 골몰한다.


물이 어디서 고였을 까? 지형이 원래 나빠서일까? 원래는 흘러야 할 구멍인데 어디가 막혀 있을까?

하루종일 매달리고 온통 그 생각에 빠져 밥도, 잠도 다 내던질 만큼 죽자 살자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끝내 자기 안에서 답을 찾는다. 상식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그렇게 찾은 비상식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누군가는 이를 보며 치사하다느니, 비겁하다느니 비난한다.


나는 야구 인생 내내 그랬다. 비상식을 찾아 결국 이겼지만 현역 감독 시절 내내 잘했다는 소리는 얼마 듣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 제일 중요한 건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결과뿐이었다.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는데 점잖고 상식적이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상식 속에만 있으면 앞으로 가지 못한다.

고이고 막히는 순간을 수없이 넘어오며 나의 비상식은 어느새 상식이 되었고,

나라는 돌도 요만한 돌멩이가 되었다가 이제는 모래가 되었다.

마침내 물도 잔잔해졌다.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80여 년을 흘러온 것 같다.


그의 인생과 인생을 관통하는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다. 언제나 깨어있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자신의 자리에서 베스트가 되기 위한 고심을 멈추지 않았기에 결국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 

긴 글이 아니었음에도 읽고 난 후의 여운이 만만치 않다. 감동이 크게 밀려온다. 계속 곱씹고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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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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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 너머를 들여다 보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함을 피력하며 도시 빈민가의 주거 문제를 다룬 <쫓겨난 사람들>의 저자인 프리스턴 대학교 사회학교수인 매슈 데즈먼드가 사례와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먼저, 가난의 성격에 대한 정리. 명료하다. 


-가난은 통증, 육체적 통증이다.

-가난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런데 사회는 그걸 치료하는데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고통에 대처할 때가 많다.

-가난은 통증일 뿐만 아니라 불안정이기도 하다.

-가난은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질 거라는 끊임없는 두려움이다.

-가난은 자유의 상실이다.

-가난은 정부가 당신의 편이 아니라 당신의 적이라는 느낌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범죄 기소와 소환의 형태로 국가에 시달린다.

-가난은 당혹감과 수치심을 일으킨다.

-가난은 쪼그라든 삶과 인성이다. 

-하지만 가난은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가난은 물질적 결핍과, 만성통증과, 투옥과, 우울증과, 중독 등등이 겹겹이 누적된 형태일 때가 많다.


「1장 가난이라는 문제의 성격」을 읽고 든 생각은 부끄럽지만, ‘다행이다’였다.(‘다행’이라는 감정이 책을 읽는 동안 여지없이 파헤쳐지고 부끄러움이 오롯이 남는 경험이었다.)

부끄러움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가난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전방위적인 구조에 대한 설명이 조목조목 이루어진다.


먼저, 노동. 

우리가 더 많은 부와 값싼 물건을 즐기려고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허락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무엇을 거부당하는가? 행복, 건강, 생명 그 자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본주의인가? 우리에게는 이 정도의 자본주의밖에 허락되지 않는가?

노동자를 싸게 부려 먹는 행태가 반복되고 더이상 일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실직하고, 빈곤은 악순환한다.


둘째, 주택

수백만에 달하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착취적인 주택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더 나은 조건을 감당할 능력이 안 돼서가 아니다. 더 나은 조건이 그들에게 제시조차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p131

가난하기 때문에 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가난한 동네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


셋째, 복지

가난을 없애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계속 생산되고 복지 예산은 늘어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가 닿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빈곤층의 복지 의존성이 아니라 복지 회피였다. 가난한 사람들 상당수가 잘 모르고 서툴고, 신청 절차가 까다로워서 오히려 가난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지 프로그램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졌다,


넷째, 금융

배제는 착취를 낳는다. 제1금융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비싼 수수료와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 대안적 금융거래를 한다. 


책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명료한 문체, 간결한 문장, 설득력 있는 객관적 자료 제시 등으로 읽기에 좋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명백한데, 이걸 읽고도 가만 있을래?” 하는 느낌표의 말투가 마음을 툭툭 계속 쳐댔다. 

본문에 앞서 있는 조문영 연세대 교수의 해제로 일목요연하게 책의 내용을 먼저 접하고 읽어 나갈 수 있어 이해가 쉬웠다. 특히 미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고 있어 삶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시가 있어 함께 적는다.


그 쇳물 쓰지마라/제페토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정성으로 다듬어/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2010년 충남 당진의 철광업체에서 20대 노동자의 용광로 추락사를 시로 적은 내용인데, 그러고도 한참동안,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사고들이 일어났다. 구의역, SPC계열사,쿠팡 노동자 사고 등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싸구려 노동에 쓰러져 갔다.


다시 나의 부끄러움을 살펴보자.

쿠팡의 새벽 배송을 중단했다가 며칠 못 가 다시 주문을 누르고, 최저가 제품을 찾아 헤맸으며, 알량한 자산을 지키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공정과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입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다. 


나는 다른 사람의 등에 올라탄 채 그 사람의 목을 조르고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다니게 만들지만, 나 스스로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마치 그 사람에게 대단히 미안하다는 듯,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이 더 편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듯 행동한다. 그 사람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고_ 레프 톨스토이


저자는 빈곤을 없애기 위해 대단히 똑똑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저 빈곤을 충분히 싫어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담장 너머로 돈을 던지는 대신 그 담장을 허물어뜨리자고 한다.


그러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라. 

당신의 삶에서 노동계급과 빈민과 관계를 맺을 방법을 찾아라p298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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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 - 무엇을 선택하고 이룰 것인가
미로슬라브 볼프.마태 크러스믄.라이언 매컬널리린츠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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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살면서 안고 가는 가장 큰 질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단초는 삶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낳는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하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자들이 예일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엮은 <가치 있는 삶>은 우리 삶이 제시하는 무거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낸다.

삶의 가장 큰 열망을 이루는 데 성공한 삶이 반드시 인간으로서 성공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간다움의 미학은 ‘의문’을 품고 거기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인생을 꾸려나가는 데 있다. 이렇게 스스로 질문을 품고 답하는 능력은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결정한다.p36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 네 가지 방식과 각 방식이 품은 질문을 단계적으로 구성해 놓았다.

첫 번째 방식은 무의식의 영역이다.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동 조종 모드’으로 부를 수 있다..
다음은 의식의 영역으로 ‘효율’, ‘자기 인식’, ‘자기 초월’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효율 단계는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고민하는 단계로, 여기에서는 궁극적 목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세 번째 자기 인식 단계에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통해 자아 성찰을 한다.
네 번째 자기초월 단계에서는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닌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단계이다.

각 단계를 1부 뛰어들기, 2부 심해, 3부 해저면, 4부 한계를 마주하기, 5부 다시 수면으로 로 구분하고 세부적으로 15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각각의 장마다 내용을 삶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질문이 수록되어 있다.

각 장의 몇몇 질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몸 상태는 어떤가?
-지금 내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요즘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가?
-그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사람은 ‘길고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렸는가?
-여러분이 시간을 투자하는 활동 중 돈, 권력, 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를 얻기 위한 활동은 몇이나 되는가?
-타인이 행한 실패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여러분은 실패를 저지른 당사자가 어떻게 반응하길 바랐는가?
-여러분은 스스로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또한, 타인의 고통에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두 대응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자아가 공허함을 깨닫고 집착을 버리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부처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삶이 아무것도 아니기에 죽음 또한 아무것도 아니라는 틱낫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여러분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떤 이상을 좇았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품게 된 이상이 있는가?
-이상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여러분을 이끄는 깊은 욕망이 존재하는가?
-스스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 걸음을 내딛으려면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가?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워크북과도 같은 구성이다.
저자는 책을 순서대로 읽고 각 단계별 질문에 답하면서 글쓰기도 병행하기를 권한다. 정답에 이르기 위한 꼼꼼한 가정교사 같다.

각 장의 내용은 앞선 세대를 살아간 위대한 인물들의 사례를 실어 설득력을 더했다. 예수, 부처, 맹자, 링컨, 오스카 와일드 등.

링컨은 불행을 좇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으로부터 달아나지도 않았으며, 미래에 닥칠 불행을 두려워하며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았다.p77

깨달음이 주는 만족은 평범한 쾌락 또는 고통과 전혀 다른 정신적 차원에 존재한다. 깨달음으로 얻은 만족은 즉각적인 감각을 초월하는 고요함이니 이런 경지에 오른 사람은 당장 눈앞의 감정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p112

특히 부처의 주장은 우리가 당연히 좋을 것이라 생각했던 조건에 의심을 품게 한다. 돈, 권력, 명예를 가진 삶이 좋은 삶이라 생각했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이는 우리를 옭아매는 사슬일뿐인지도 모른다. <파이트 클럽>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타일러 더든은 부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유하려는 것이 결국 나를 소유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p139

맹자는 네 가지 미덕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미덕에 큰 비중을 뒀다.p162

400쪽이 넘는 긴 글을 꼼꼼하게 읽고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삶의 방향성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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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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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나온지 30년. 

우리나라 곳곳을, 우리 역사 구석구석을 아는 만큼 보이게 만들고 사랑하게 만들었던 유홍준교수님의 새로운 답사기가 나왔다. 

『국토박물관 순례』 


총 2권 중 1권에서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고구려의 유적지가 실려있다.

구석기시대는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 

신석기시대는 부산 영도의 동삼동 패총, 

청동기시대는 울산 언양, 

고구려는 중국 만주의 환인과 집안을 답사하였다.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 주먹도끼가 발굴된 과정은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이다.

미국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다 학비를 벌기 위해 공군에 입대하고 동두천 미군부대에 근무한 그레그 보엔. 한국인 애인과 한탄강 유원지로 데이트 중, 커피 끓일 불을 피우기 위해 돌을 주워 모으고 그 과정에서 구석기시대 주먹도끼처럼 생긴 돌을 발견한다. 

이후 전곡리 유적지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되고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가게 된다. 그야말로 ‘알았기에 보였던’ 돌멩이(주먹도끼)였다. 당시 데이트를 하던 연인은 부부가 되었고 29년 후, 어린이날 구석기 축제에 초청되어 전곡리에 다시 오게 된다. 우연과 필연이 겹친 대단한 스토리이다.


유홍준 교수님은 일명 ‘구라’로 유명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냥 쏙 빨려들어간다. 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믿고 읽는 책이다.


신석기를 거쳐 청동기, 고구려를 정신없이 쫓아가다 보면 글을 읽고 있는 건지, 그림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의 옆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지점이 온다.


이야기에 들어서게 만드는 힘.

그림을 보듯이 풍경을 그리고 장소에 호감을 가지게 만드는 힘.

그래서 그곳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마술같은 힘이 느껴진다..

고구려 고주몽의 이야기를 읽을 땐, ‘압록강은 압록강이지 뭐’가 아니라 글을 따라 내 발길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나라 최고 권위자의 빈틈없는 강의에 빨려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옛날 유물과 유적을 현재와 연결하여 나의 삶에서의 의미를 찾게 만들고 그래서 결국 이전과 달리 보이게 만든다. 


신석기 부산 영도 패총 이야기에서 영도가 소설<파친코>의 배경이 된 서사로 연결되고 영도를 잇는 연륙교 이야기에서 공포의 부산항대교로 이어지다보면 이전에 부산에서 택시를 타고 부산항대교를 지날 때 아찔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시간을 거슬러 역사와 이어지는 경험이 만들어지고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역사를 증언하는 또하나의 유물, 빗살무늬토기.


구석기인들이 동물적 본능으로 사물에 대한 애정과 인내를 그렸다면 신석기인들은 사물을 의식으로 파악하고 표시하려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부호화, 개념화, 상징화하려는 경향이 생겨 추상 무늬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정복’을 의미하는 생선뼈무늬를 통해 신석기인들의 식생활에 물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토기를 통해 6000년 전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 시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내 존재가 어딘가 누군가와 연결되는 기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사랑이 느껴졌다. 이땅과 이땅에 살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


격조 높은 사랑을 받고 싶은 누구라도 읽기를 권한다.

읽고 나면 세상이 조금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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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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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소리를 떠올려 본다. 미세한 입자들이 마주치는 소리. 이른 아침 알싸한 공기 속에서 안개와 꽃향기가 서로 부딪는 소리. 멀리서 오는 종소리 같은, 가까이서 오는 쉿소리 같은, 소리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준다. 처음 그 집에 발을 들이던 날, 그 순간으로.p7


시작하는 문장을 읽자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낮잠에서 깰 때, 지금 여기는?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시공간이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감각 안에서 어리둥절하지만 안심이 되는 그런 느낌. 무언지 모르게 보호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런 낙천성은 엄마의 생애를 통해 생긴 것이기도 했다. 엄마는 자라면서 매 시기마다 계획한 범위 안에서 일이 이루어지는 걸 경험한 사람이었다. 원하던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했으며 적절한 때에 직장을 구했고 큰 갈등 없이 결혼했다. 결혼한 후에는 계획한 대로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낳고 자산을 늘려 갔다. 엄마는 이루어질 만한 꿈을 꾸고, 그 꿈들이 현실이 되는 걸 보아 왔다. 엄마의 낙천성은 누적되어 온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p36


아버지는 이 세상에 속고, 이 도시에 속고, 직장에서 속았다고 했다. 그리고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두 번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아버지는 혼자 장원으로 내려갔다.p49


계획한 범위 안에서 작은 성공을 쌓아온 엄마는 남편의 실패에 동참하지 않고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정원 있는 낡은 집. 1층은 폐쇄되어 있고 2층을 임대하여 살기로 하였는데, 이사 첫 날 주인공인 첫째가 종소리같은 쇳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동생 준에 의해 1층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할머니와 종려, 자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


숨어 사는 1층의 가족, 가족의 위기 속에 그늘지고 어두운 집에 숨어 있고 싶었던 2층의 가족이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스며들어 배려하고 위로하는 일상을 만들어간다.  


‘사건의 지평선’


살면서 미분이 안 되는 어떤 지점을 만나게 된다. 이전과 이후를 확연히 가르는 어떤 순간. 

아버지에게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를 쓴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속인 건 스스로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엄마에게는 남편의 결정에 따르지 않은 순간이었다. 스스로 내리지 않은 결정으로 인한 행동은 언젠가 후회를 낳고 그 결정의 당사자를 미워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엄마도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숨어 있을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다. 

주인공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기대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맞는 사건의 지평선을 만나고 넘어간다. 



“집은 잘 있지?”

준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이곳이, 이 집이, 뒷산이, 그러니까 동생이 1층 사람들과 어울리던 이 시공간이 자신에게 전하는 안부가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런 준의 마음이 말 속에 담겨 있었다. 준은 혼자 이 집에 있는 동안 집 주변을 살폈을 것이다. 어떤 나무가 어떤 계절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지, 어느 구석에 어떤 풀이 자라고 작은 동물들이 어떤 길로 오가는지, 그리고 서백자 할머니와 장희 씨, 자작과 종려가 어떤 마음으로 이 집에 드나들었을지 헤아렸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혼자 겁먹은 채 집에 남아 있던 동생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 

“집은 잘 있어?”

라고 묻는 건 떠나온 시공간에 전하는 준만의 통신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p150


누군가가 살던 오래된 그곳.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자리.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가 주는 따뜻함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할머니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불안해하는 종려와 자작에게 주인공이 들려준 말을 나에게, 옆의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아무 걱정 하지 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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