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순간이다 -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김성근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0대의 나이에도 야구장에 꼿꼿하게 서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대한민국 최장수 야구 감독. 2022년~2023년 김성근 감독과 나눈 인터뷰와 여러 매체의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책이 완성됐다. 

오랜 기간, 지금까지도 자신의 자리에서 베스트로 활동하는 노감독의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강력한 응원의 메세지를 전해준다. 


나는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고 싶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절망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야구에는 ‘다음 경기’가 있지 않은가p12


야구나 인생이나, 한시도 멈춰 있는 순간이 없다. 순간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은 똑같다. p2


인생이란 결국 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 내일 마주치는 순간들, 매 순간에 한 결정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 된다.p22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의식’이었다.

마음가짐.

상황에 인정하는 것과 굴복하는 것의 차이.

상황은 인정하되, 굴복하지 않고 언제나 가장 나쁜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되, 비관을 바탕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나아가는 지점에서는 낙천적으로 행동하기를 말한다. 그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1942년에 교토에서 출생한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하기 위해 한국 영주 귀국을 선택한다. 1964년. 아직 한일 간에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때라 그렇게 집을 떠나면 다시는 못 올 수도 있는 상황. 막내아들의 생활에 대해 가타부타 관여를 하지 않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완강히 반대하셨던 게 그의 영주 귀국이었다. 결국 야구를 선택한 아들을 받아들이며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아들과 사진을 찍고는 형제들을 불러

 “이 아이는 여기 있을 아이가 아니다. 보내주자.”

라는 장면에서 김성근 감독이 한시도 쉬지 않고 어떤 예외도 두지 않으며(3번의 암수술도 아무도 모르게 받고 바로 경기장에 섰을 정도로) 자신의 ‘의식’을 단련시키는 모습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렇게 떠난 오사카공항에서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다음날로 출국이 연기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의 방이 이미 말끔히 정리되어 자신이 이 집에 살았다는 흔적이 싹 사라져 있었다는 일화에서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함 속에 담긴 애정이었다.


각진 돌멩이들은 산골짜기 속 물을 따라 바다까지 흘러 내려온다.

거센 물살을 타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내려온다. 

부딪히는 속에서 연마되고, 어떤 데서는 스톱 되고, 고생하고, 고통을 겪고,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아 흘러가고 또 흘러간다. 

결국 세월이 흘러 바다에 가까워 갈 때는 요만한 돌멩이가 되고 마침내 모래가 된다.


그게 인생이다. 


그런데 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다 보면 돌은 반드시 어딘가에 막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꽉 막히고 답답한 순간이 온다.

평범한 사람은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혹은 문제가 알아서 해결되기를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반면, 뛰어난 사람들은 문제 속에 푹 빠져서 깊이 탐구하고 골몰한다.


물이 어디서 고였을 까? 지형이 원래 나빠서일까? 원래는 흘러야 할 구멍인데 어디가 막혀 있을까?

하루종일 매달리고 온통 그 생각에 빠져 밥도, 잠도 다 내던질 만큼 죽자 살자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끝내 자기 안에서 답을 찾는다. 상식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그렇게 찾은 비상식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누군가는 이를 보며 치사하다느니, 비겁하다느니 비난한다.


나는 야구 인생 내내 그랬다. 비상식을 찾아 결국 이겼지만 현역 감독 시절 내내 잘했다는 소리는 얼마 듣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 제일 중요한 건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결과뿐이었다.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는데 점잖고 상식적이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상식 속에만 있으면 앞으로 가지 못한다.

고이고 막히는 순간을 수없이 넘어오며 나의 비상식은 어느새 상식이 되었고,

나라는 돌도 요만한 돌멩이가 되었다가 이제는 모래가 되었다.

마침내 물도 잔잔해졌다.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 80여 년을 흘러온 것 같다.


그의 인생과 인생을 관통하는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다. 언제나 깨어있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자신의 자리에서 베스트가 되기 위한 고심을 멈추지 않았기에 결국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 

긴 글이 아니었음에도 읽고 난 후의 여운이 만만치 않다. 감동이 크게 밀려온다. 계속 곱씹고 되새기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