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만든 가난 - 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Philos 시리즈 25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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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유한 국가에 존재하는 빈곤의 진실”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 너머를 들여다 보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함을 피력하며 도시 빈민가의 주거 문제를 다룬 <쫓겨난 사람들>의 저자인 프리스턴 대학교 사회학교수인 매슈 데즈먼드가 사례와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먼저, 가난의 성격에 대한 정리. 명료하다. 


-가난은 통증, 육체적 통증이다.

-가난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그런데 사회는 그걸 치료하는데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고통에 대처할 때가 많다.

-가난은 통증일 뿐만 아니라 불안정이기도 하다.

-가난은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질 거라는 끊임없는 두려움이다.

-가난은 자유의 상실이다.

-가난은 정부가 당신의 편이 아니라 당신의 적이라는 느낌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경범죄 기소와 소환의 형태로 국가에 시달린다.

-가난은 당혹감과 수치심을 일으킨다.

-가난은 쪼그라든 삶과 인성이다. 

-하지만 가난은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가난은 물질적 결핍과, 만성통증과, 투옥과, 우울증과, 중독 등등이 겹겹이 누적된 형태일 때가 많다.


「1장 가난이라는 문제의 성격」을 읽고 든 생각은 부끄럽지만, ‘다행이다’였다.(‘다행’이라는 감정이 책을 읽는 동안 여지없이 파헤쳐지고 부끄러움이 오롯이 남는 경험이었다.)

부끄러움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가난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전방위적인 구조에 대한 설명이 조목조목 이루어진다.


먼저, 노동. 

우리가 더 많은 부와 값싼 물건을 즐기려고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허락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무엇을 거부당하는가? 행복, 건강, 생명 그 자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본주의인가? 우리에게는 이 정도의 자본주의밖에 허락되지 않는가?

노동자를 싸게 부려 먹는 행태가 반복되고 더이상 일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실직하고, 빈곤은 악순환한다.


둘째, 주택

수백만에 달하는 가난한 세입자들이 착취적인 주택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더 나은 조건을 감당할 능력이 안 돼서가 아니다. 더 나은 조건이 그들에게 제시조차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p131

가난하기 때문에 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가난한 동네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


셋째, 복지

가난을 없애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계속 생산되고 복지 예산은 늘어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가 닿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빈곤층의 복지 의존성이 아니라 복지 회피였다. 가난한 사람들 상당수가 잘 모르고 서툴고, 신청 절차가 까다로워서 오히려 가난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지 프로그램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졌다,


넷째, 금융

배제는 착취를 낳는다. 제1금융권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비싼 수수료와 비싼 이자를 감수하고 대안적 금융거래를 한다. 


책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는 명료한 문체, 간결한 문장, 설득력 있는 객관적 자료 제시 등으로 읽기에 좋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명백한데, 이걸 읽고도 가만 있을래?” 하는 느낌표의 말투가 마음을 툭툭 계속 쳐댔다. 

본문에 앞서 있는 조문영 연세대 교수의 해제로 일목요연하게 책의 내용을 먼저 접하고 읽어 나갈 수 있어 이해가 쉬웠다. 특히 미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우리 사회에 적용하고 있어 삶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시가 있어 함께 적는다.


그 쇳물 쓰지마라/제페토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정성으로 다듬어/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2010년 충남 당진의 철광업체에서 20대 노동자의 용광로 추락사를 시로 적은 내용인데, 그러고도 한참동안,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사고들이 일어났다. 구의역, SPC계열사,쿠팡 노동자 사고 등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싸구려 노동에 쓰러져 갔다.


다시 나의 부끄러움을 살펴보자.

쿠팡의 새벽 배송을 중단했다가 며칠 못 가 다시 주문을 누르고, 최저가 제품을 찾아 헤맸으며, 알량한 자산을 지키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공정과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입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다. 


나는 다른 사람의 등에 올라탄 채 그 사람의 목을 조르고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다니게 만들지만, 나 스스로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마치 그 사람에게 대단히 미안하다는 듯,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이 더 편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듯 행동한다. 그 사람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고_ 레프 톨스토이


저자는 빈곤을 없애기 위해 대단히 똑똑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저 빈곤을 충분히 싫어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담장 너머로 돈을 던지는 대신 그 담장을 허물어뜨리자고 한다.


그러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라. 

당신의 삶에서 노동계급과 빈민과 관계를 맺을 방법을 찾아라p298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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