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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기 싫은 날엔 카프카를 읽는다 - 예술가들의 흑역사에서 발견한 자기긍정 인생론
김남금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때마침(?) 번아웃이 왔고, 이 책이 내게 왔다.
마치 '네 마음 다 알아'라는 것처럼.
<출근하기 싫은 날엔 카프카를 읽는다>(김남금 지음 / 앤의서재 / 2024)를 읽게 된 건 행운이자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목만 봐서는 '카프카'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인가 했는데 '카프카스러운' 날들을 살아내는 예술가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도 소개되었지만 '카프카스럽다'는 건 희망 없고, 참을 수 없는 모든 상황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마치 아침마다 발을 질질 끌고 출근하는 요즘 내 모습이랄까. 이 책이 더 특별했던 건 목차였다. 표지를 넘기고 목차를 보다가 '와~'란 말이 절로 나왔다. 챕터마다 완전 내 얘기였기 때문이다.(번아웃이 제대로 오긴 왔구나)
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직하고 싶을 때
마지못해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때
지금 당장, 이곳에서 달아나고 싶을 때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요새 같은 고민을 나누고 있는 직장 동료에게도 이 목차를 보여줬더니 웃더라. 지칠대로 지친 직장인들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제목과 내용이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아주 좋았다. 유명한 예술가의 좌절과 절망, 그리고 그 과정을 극복하고난 후의 모습이 단순히 위인전이나 뻔한 자기계발서의 클리셰가 아닌, 그들의 당시 모습을 오늘의 직장인에 빗대어서 차근차근 비교한 내용이 참 좋았다.
원하는 땀을 흘리기 위해서는
어쩌면 원하지 않는 일에 땀을 더 많이 흘리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시간이 괄호 처리가 될 뿐.
와, 멋진 표현이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원하지 않는 일에 땀을 흘릴 때 비로소 원하는 땀을 흘릴 수 있다는 표현이 인상깊었다.
대학교 때 중국어를 복수전공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가, 위화. 그가 발치사, 즉 이를 뽑는 사람이었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퇴근 후 끊임없이 썼던 덕분에 <허삼관 매혈기>도 탄생했으니 얼마나 힘이 나는 이야기인지.
카프카도 마찬가지였다.
카프카 역시 카프카스러운 상황에서 버티기 위해 퇴근 후에 '쓰는 사람'으로 살았단다. 여기서 깜짝 놀랐다. 내 인스타그램의 자기소개가 바로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벌써 본캐와 부캐를 가지고 있었다니, 퇴근 후 피곤하다는 핑계가 쏙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예술가들의 인생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
처음부터 성공하고 유명한 게 아니었고,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올라선 것이라는 게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물론 결과적으로 성공했기에 이런 좌절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작가의 말대로 실패하면서 맷집도 늘고 버티는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예술가의 뒷이야기도 좋지만, 이를 직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더 좋았다. 직장인이라면 200% 공감할 내용이 곳곳에 써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그래.', '나도 힘들어.'류의 메시지가 아니어서 더 힘이 되었다.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충분히 고통스러워하고, 완전히 쏟아낸 후, 가볍게 다시 치고 올라가야지. 직장인이라면 반복되는 슬럼프를 피할 수 없다. 다시 기운을 모아서 박차고 올라가는 수밖에.
<출근하기 싫은 날엔 카프카를 읽는다>를 읽으며 축 처진 어깨를 다시 한번 세워본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