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따라야 인생이 달라진다 - 열심히 살아도 공허한 사람들에게
메건 헬러러 지음, 이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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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오늘날을 “성과사회”라고 말한다. 지금 시대는 “너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명령이 우리를 지배한다. 문제는 이 긍정이 타율이 아니라 자율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경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소진한다. 그는 이를 “자기 착취”라고 부른다.

메건 헬러러가 말하는 ‘공허한 과잉성취자’는 바로 이 성과사회의 인간형이다. 목적 지향적 삶은 끊임없이 결과를 요구한다. 더 많은 성취, 더 나은 스펙, 더 확실한 미래. 안전과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과잉의 긍정은 결국 우울과 번아웃으로 귀결된다. 공황 발작으로 쓰러진 저자의 장면은 단순한 개인적 위기가 아니라, 성과사회의 필연적 증상처럼 보인다.

『방향을 따라야 인생이 달라진다』는 실제 코칭 사례들을 통해 실천적 처방을 제안한다. 목적이 아니라 방향을 따르라는 말은, 성과사회가 강요하는 ‘결과 중심성’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성과사회는 최종 목적지와 결과만을 묻지만, 방향을 따르는 삶은 지금 이 선택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는지’를 묻는다. 결국 자신의 호기심과 기쁨을 따르는 것이 주체적이고 번아웃 없는 삶, 곧 방향을 따르는 삶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말했다.
“끊임없이 당신을 다른 무엇으로 만들려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남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성취다.”

성과사회적 성공과 대비되는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진짜 성취로 향하는 열쇠가 된다.

책 속에 사소해 보이지만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편안하고 만족스럽고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준다면, 그것이 당신과 조화를 이루는 결정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삶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 사회가 중요하다고 말해 온 기준을 먼저 떠올려 왔다. 안정적인 직장, 설명하기 좋은 이력, 남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취. 그렇게 ‘중요해 보이는 삶’을 선택하는 법을 배워 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선택들이 개인을 번아웃으로 몰아넣고, 사회를 끝없는 비교와 과잉 경쟁 속에 가두어 왔음을.

문제는 우리가 잘못 살아서가 아니다. ‘실제로 충만한 삶’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주는지 묻는 법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적을 설정하는 법은 익혔지만, 방향을 감각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이 책은 그 감각을 일깨운다. 거창한 인생 계획 대신 지금의 한 걸음을, 최종 목적지 대신 현재의 조화를 묻도록 한다. 자신에게 진실되고 안도감이 드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그 순간 삶은 더 이상 타인의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가 직접 살아내는 충만한 과정이 된다.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목표를 내려놓을 용기를 준다는 데 있다. 더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나로 사는 법을 보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목적이 아닌 방향 속에서, 설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소중한 얼굴들이 많이 떠올랐다. 시대의 피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하루를 버텨 내는 이들. 그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방향을따라야인생이달라진다 #자기계발 #도서추천 #처세술 #서평

*도서증정 @nextwave_pub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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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문장 쓰지 마세요 허블청소년 4
케빈 윌슨 지음, 박중서 옮김 / 허블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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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규정하는 말들에는 뭐가 있을까. 치기 어린, 풋풋한, 미숙한, 어설픈, 무언가 아직 정제되지 않은, 덜 여물고 유약하여 상처 입기 쉬운 것들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에 가능한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실패를 몰라 무한히 열려 있는 가능성들이 함께 떠오른다.

상처 하나에도 세계가 무너질 것처럼 굴다가도 증명하고 싶어 안달 나는 존재의 시기. 아직 스스로를 다루는 법을 몰라 세상이 나를 향해 열려 있다고 믿는 시기. 모든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것처럼,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해지는 시기. 아, 써놓고 보니 무한히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닌가.

『내가 만든 문장 쓰지 마세요』는 그런 10대의 아름다움과 위태로움이 뒤엉킨 순간을 그려낸다. 열여섯의 프랭키와 지크는 자신들을 증명할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어떤 문장 혹은 그림일 수 있었고, 예술에 가까우면서도 장난일 수도 있었던 포스터였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 자신들의 포스터를 보고 잠시 멈춰 서는 장면에서 희열을 맛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작은 시골 곳곳에 포스터를 매일같이 복사해 붙이기 시작한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 특별해지고 싶다는 마음,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조급함. 그것은 솔직한 고백이자 충동적인 둘만의 놀이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포스터는 의도를 넘어서 악마 숭배의 징표로, 범죄의 암호로, 집단적 공포의 증거로 소비되기 시작한다. 언론과 방송이 달라붙으며 한여름의 일탈은 사회적 사건으로 비화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까지 번지자, 아이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로 확장된 파장은 그들의 우정과 자아를 시험한다. 아이들에게 각 사건의 직접적인 의도는 없었지만, 사건의 발단이 자신들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여름은 성장하는 내내 자신을 규정하기도 하고, 혹은 그 경계를 허무는 기억으로 남는다.

성인이 된 프랭키에게 그 여름은 지워야 할 사건이라기보다 지금의 자신을 만든 기원에 가깝다. 지크가 기억을 밀어내려 애쓰는 동안, 프랭키는 그것을 껴안으려 한다. 상처를 삭제하는 대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려는 태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마음속에서 되뇌어지는 문장 하나가 인간의 성장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보여준다.

그 시절에는 그토록 간절했던 무엇도, 그 의미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선명해진다. 어른이 된 후에야 비로소 이해되는 10대의 진심을 이 책은 마지막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가 부끄러워 감추고 싶었던 기억, 말하지 못해 봉인해 둔 문장들. 그것들은 어쩌면 삶을 망쳐놓은 사건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소중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열여섯의 치기와 과잉은 우리 안에 남아 성장한 자신을 만든다. 이해받지 못했어도, 과장되고 서툴렀어도, 그 모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10대는 미숙했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하게 ‘나’였던 시간이었다.

읽는 동안 여러 번 다시 읽게 만드는 좋은 문장들이 많았다. 욕설과 성적인 표현, 마약이나 자살 같은 언급은 청소년 소설로서 과연 적절한가 잠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날것의 언어야말로 10대의 감정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더 솔직하고, 거칠기에 숨김이 없는 표현들 말이다.

우리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을 순수함 속에만 머물게 하려는 건 아닐까. 깨끗하고 무해한 존재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욕망은, 때로 그들의 복잡성과 격렬함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10대는 단순하지 않다. 그들은 더 많은 호기심과 더 많은 충동, 더 많은 가능성으로 흔들리는 존재다. 미숙하지만, 그렇기에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시기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그 누구보다 청소년들이 더 잘 읽어 내리라.

#내가만든문장쓰지마세요 #허블 #청소년소설 #청소년문학 #서평

*도서증정 @hubble_book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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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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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쯤 지나, 먼 훗날의 사람들이 지금 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읽는다면 무엇을 느낄까. 등장인물의 대화와 표정, 그들이 머물던 방의 공기와 문장들에서 어떤 풍경을 떠올릴까. 우리는 사랑을 말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사랑을 둘러싼 불안과 결핍, 인정 욕구를 더 많이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 나는 19세기 영국 소설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그 작품 속 사랑은 격정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인간 욕망의 날것을 거의 가리지 않고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읽은 『구원에게』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시대는 달라도 사랑은 여전히 어딘가 뒤틀려 있다. 어쩌면 사랑이란 처음부터 온전한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결핍을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통해 잠시 숨을 고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내 자리’라 믿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 책 속 사랑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의 미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이미 덧씌워진 기대와 욕망 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나의 공허를 채워줄 미지의 영혼으로 세운다. 헌신과 배려, 이해라 부르는 행위들조차 결국은 나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아무런 이기 없이 누군가를 그토록 염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원에게』는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균열, 차마 미화하지 못한 감정의 잔여들을 담담히 꺼내 놓는다. 무관심이 사랑의 반대말이라는 고백, 거울처럼 서로를 마주하며 닳아간다는 통찰, 기다리지 않겠다는 다짐 속에는 이미 한 차례의 소진이 지나간 흔적이 배어 있다. 이 사랑은 구원이면서 동시에 상실이었다.

아마 10년 전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전혀 다른 감상을 적었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시절. 조금 망가지고 상처 입어도 다시 시작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던 시절. 그때라면 나는 이 문장들에 더 깊이 침잠했을 것이다. 우울한 젊음의 표상처럼 나의 사랑을 겹쳐 읽으며, 혼란을 낭만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묻게 된다. 왜 사랑은 온전히 행복으로만 남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분노하고, 실망하고, 그럼에도 쉽게 관계를 끊어내지 못했을까. 우리는 상대에게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어떤 기대가 사랑을 무겁게 만들었을까. 나를 끝까지 인정해 줄 타인의 시선을 바랐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시선은 애초에 한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을까.

이 책 속 사랑은 눈부시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끝까지 써 내려간 태도는 아름답다. 자신이 만났던 누군가를 하나의 의미로 치환하는 일, 닳아 없어진 감정을 다시 문장으로 불러내는 일은 결코 가벼운 작업이 아니다. 쓰고 닳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있다면, 이 산문은 그 소진의 기록이다.

결국 『구원에게』는 사랑을 지나온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운명이라 믿었던 순간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닳은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형태로 남아, 결국 나를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

아름답지 않았던 사랑도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장을 통해 타인이 아닌, 그때의 자신을 마주한다. 사랑의 의미는 그 사람에게 있지 않고, 그것을 통과해온 나에게 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그것은 아름다워진다.

#부크럼 #출판사 #에세이추천 #구원에게 #정영욱

*도서증정 @bookrum.official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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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번던스 - 결핍을 넘어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해법
에즈라 클라인.데릭 톰슨 지음, 홍지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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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는 매일이 트럼프의 말 한마디로 들썩이며 관세전쟁으로 혼란스럽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현재의 미국은 여전히 막강한 패권국이며, 곧 미국이 잘 돌아가야 세계도 안정된다는 공식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의 정책 결정과 제도적 역량은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 사회가 겪는 혼란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시대에 『어번던스』는 단순한 정책 제안서를 넘어, 미국이라는 시스템이 왜 삐걱거리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해부하는 보고서처럼 읽힌다.

책의 서론은 특히 인상적이다. 저자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은 ‘풍요’를 소비재의 넘침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충분한 상태”로 재정의한다. 물건은 넘쳐나지만 주거, 에너지, 의료, 인프라는 부족한 현실. 이 역설을 직시하는 순간 독자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정작 필요한 집을 충분히 짓지 못할까? 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더디게 진행될까? 왜 대규모 공공사업은 늘 예산을 초과하고 일정이 늦어질까? 저자들은 그 이유를 기술 부족이나 아이디어 부족에서 찾지 않는다. 문제는 ‘실행 역량’에 있다고 말한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빠르게 추진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은 커졌지만, 해결하는 능력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진단은 날카롭다.

이 책은 한쪽 진영만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스로 진보 성향임을 밝힌 두 저자가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진보 진영 내부의 한계다. 좋은 의도로 도입된 규제와 절차가 거듭 덧붙여지며 누적된 결과, 아무 일도 신속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를 축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 정부가 연구를 지원하고 장애물을 제거하며 혁신을 촉진했던 사례를 떠올리면, 정부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해결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어번던스』가 제안하는 해법은 분명하면서도 현실적이다. 말로만 정의를 외치기보다 실제로 더 많이 짓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빠르게 실행하자는 것이다. 풍요란 사치스러운 소비가 아니라,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집과 에너지, 의료 같은 기본 조건이 충분히 마련된 상태를 뜻한다. 부족한 것을 나누는 결핍의 정치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충분히 만들어내는 공급의 정치로 방향을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이 문제의식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주택 문제, 에너지 전환, 복잡한 규제로 인한 정책 지연 등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국 정책에 대한 비판서라기보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안전은 누군가가 실제로 발명하고, 생산하고, 실행해낸 결과다. 앞으로도 그런 사회로 남기 위해서는 가치관의 변화와 제도적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 위기와 같은 시급한 문제 앞에서 더 이상 선택을 미루는 정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 책은 막연한 비판이나 냉소 대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분열과 불신이 깊어지는 시대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실제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책.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어번던스 #정치학 #도서추천 #베스트셀러 #서평

*도서증정 @hankyung_bp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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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불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체사레 파베세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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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위대한 작품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억이라는 것이 파베세 자신에게 이토록 아름다웠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게 된다. 그의 문장은 건조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기교를 덜어낸 정서 그 자체로 마음을 두드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기억이 오히려 상실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슬퍼지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를 지탱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더 이상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음을 증명한다. 붙들수록 선명해지고, 선명해질수록 멀어지는 것. 이 소설은 바로 그 아이러니 위에 서 있다.

이 작품에서 달과 불, 언덕과 흙, 포도밭 같은 자연의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주인공의 기억을 불러내는 매개이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대신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그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대신,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풍경 묘사를 통해 자신의 기억에 충실한다. 그 결과 문장은 서정으로 스며들고, 은유는 과장되지 않은 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고향을 떠나 성공한 한 남자의 귀향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돌아옴의 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공간으로는 되돌아오지만, 시간 속의 자신에게는 결코 닿지 못한다. 마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미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고, 사람들은 남아 있지만 그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간극이 놓여 있다. 달은 예전처럼 떠오르지만, 그 달을 바라보던 마음은 더 이상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소설의 배경은 전쟁 이후의 북부 이탈리아 농촌으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균열이 깊이 스며든 공간이다. 사람들은 다시 밭을 일구고 계절은 어김없이 반복되지만, 그 일상 아래에는 쉽게 봉합되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전쟁 이후의 침묵, 말해지지 않은 상처, 서로 다른 관념이 겹쳐지지 못한 채 흩어져 있는 마을의 정적. 그 정적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깊은 목소리다. 파베세는 그 침묵을 설명하지 않고, 다만 인물들의 짧은 대화와 멈춰 선 시선, 달빛 아래 드리운 풍경 속에 스며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거운 공기를 따라 서사보다 시간의 깊이를 체감하게 된다.

파베세 본인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이 소설은 감정으로 치닫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달라진 풍경 속에서 우리는 그의 고향을 함께 걷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실제의 장소라기보다, 그 위에 덧씌워진 기억의 빛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빛은 이미 과거로 남아 다시는 손에 쥘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추억한다. 아마도 인간이란,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기억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아름답기에 더욱 슬프다. 달은 여전히 떠 있고 누군가는 또다시 불을 지피겠지만, 지나간 자신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이토록 담담하고도 묵묵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을 오래도록 위대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소설 속 여성성에 대한 표현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시대적 배경과 작가 파베세가 지닌 여성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남성 화자의 시선 자체가 전후 농촌 남성성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다. 단순한 성적 편견이라기보다, 그 시대 남성 심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처럼 읽힌다. 그 불편함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이 소설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것이 고전이 지닌 복합적인 힘일 것이다.

#달과불 #체사레파베세 #소설추천 #이탈리아문학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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