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번던스 - 결핍을 넘어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해법
에즈라 클라인.데릭 톰슨 지음, 홍지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스에서는 매일이 트럼프의 말 한마디로 들썩이며 관세전쟁으로 혼란스럽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현재의 미국은 여전히 막강한 패권국이며, 곧 미국이 잘 돌아가야 세계도 안정된다는 공식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의 정책 결정과 제도적 역량은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 사회가 겪는 혼란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시대에 『어번던스』는 단순한 정책 제안서를 넘어, 미국이라는 시스템이 왜 삐걱거리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해부하는 보고서처럼 읽힌다.

책의 서론은 특히 인상적이다. 저자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은 ‘풍요’를 소비재의 넘침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충분한 상태”로 재정의한다. 물건은 넘쳐나지만 주거, 에너지, 의료, 인프라는 부족한 현실. 이 역설을 직시하는 순간 독자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정작 필요한 집을 충분히 짓지 못할까? 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더디게 진행될까? 왜 대규모 공공사업은 늘 예산을 초과하고 일정이 늦어질까? 저자들은 그 이유를 기술 부족이나 아이디어 부족에서 찾지 않는다. 문제는 ‘실행 역량’에 있다고 말한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빠르게 추진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은 커졌지만, 해결하는 능력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진단은 날카롭다.

이 책은 한쪽 진영만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스로 진보 성향임을 밝힌 두 저자가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진보 진영 내부의 한계다. 좋은 의도로 도입된 규제와 절차가 거듭 덧붙여지며 누적된 결과, 아무 일도 신속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를 축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 정부가 연구를 지원하고 장애물을 제거하며 혁신을 촉진했던 사례를 떠올리면, 정부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해결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어번던스』가 제안하는 해법은 분명하면서도 현실적이다. 말로만 정의를 외치기보다 실제로 더 많이 짓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빠르게 실행하자는 것이다. 풍요란 사치스러운 소비가 아니라,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집과 에너지, 의료 같은 기본 조건이 충분히 마련된 상태를 뜻한다. 부족한 것을 나누는 결핍의 정치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충분히 만들어내는 공급의 정치로 방향을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이 문제의식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주택 문제, 에너지 전환, 복잡한 규제로 인한 정책 지연 등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국 정책에 대한 비판서라기보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안전은 누군가가 실제로 발명하고, 생산하고, 실행해낸 결과다. 앞으로도 그런 사회로 남기 위해서는 가치관의 변화와 제도적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 위기와 같은 시급한 문제 앞에서 더 이상 선택을 미루는 정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 책은 막연한 비판이나 냉소 대신,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분열과 불신이 깊어지는 시대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실제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회복하자고 말하는 책.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어번던스 #정치학 #도서추천 #베스트셀러 #서평

*도서증정 @hankyung_bp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