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스페셜 양장 리커버 개정판) - 사람을 남기는 말, 관계를 바꾸는 태도
이해인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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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 더 곱씹으며 읽었다. 나는 어째서 다정하기가 어려운 걸까. 그것은 어쩌면 타고난 성정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내재된 태도, 혹은 살아오며 겪어온 수많은 일들이 나를 안으로 침잠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다정함은 어려운 일이 아닐까.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더라도 누구나 혼자이면 안 될 시간에 홀로 남겨지는 순간들을 겪는다. 그런 시간들이 우리를 조금씩 방어적으로 만들고, 진실한 연결 앞에서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다정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쉽게 믿고 마음을 내어주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살아가며 실망과 오해, 상처를 반복해서 겪는 동안 조금씩 조심스러워진 것은 아닐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거리를 두고, 기대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무심한 척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방어의 틀을 조금씩 벗고 자신과 타인을 진실하게 마주하려는 용기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수없이 다짐하게 되었다.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물론 이해와 행동은 늘 다른 결말로 이어지곤 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를 다스리며 다정해지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다가가야 함을 다시 한번 깊이 새기게 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도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다정해지기 어렵다. 어쩌면 다정함 역시 계속해서 연습해야 하는 삶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늘 다정한 사람이 되기보다 한 번이라도 더 다정함을 선택하는 사람. 그것을 나의 작은 목표로 삼아보자 마음먹으며 책을 덮었다.

이 책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단락별로 정돈된 짧은 이야기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부담 없이 다가오고, 삶과 관계, 일상 속 고민들이 친밀한 언어로 펼쳐진다. 여러 인용문들은 오래 마음에 머물렀고, 저자의 진솔한 경험과 다정함에 대한 통찰은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준다. 다정함이란 결국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한 번 더 좋은 방향을 선택해보려는 마음과 태도일 것이다.

#다정한사람이이긴다 #에세이추천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도서증정 @feelmbook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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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모리엄 - 2024 올해의 영국 도서상 데뷔 소설 부문 수상
앨리스 윈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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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운동하는 트랙에는 방과 후 학생들이 모여든다. 서로를 놀리고, 웃고, 때로는 사소한 이유로 다투다가도 금세 잔디 위를 뒹굴며 웃는다. 햇살 아래서 소란스럽게 뒤엉키는 그 모습은 평화롭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얼굴들. 내일도 당연히 다시 만날 것이라 의심 않는 표정들. 우리는 그런 장면에 익숙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쉽게 잊는다. 우리가 살아 있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 소설 속 소년들 역시 꼭 그 나이였다. 시를 쓰고, 친구를 질투하고, 사랑을 품고, 미래를 상상하던 나이. 아직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세상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던 시간. 그러나 그 젊음은 어느 날 갑자기 총성과 진흙, 피와 공포의 한가운데에 던져진다.

우리는 전쟁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직접 겪지 않은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일에는 어딘가 가식 같은 망설임이 따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쉽게 입 밖에 꺼내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생한 묘사를 읽는다 한들 우리는 결국 안전한 자리에서 그것을 상상해볼 뿐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목격하고, 피 냄새가 스민 참호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다음 날 다시 총을 들고 나가야 했던 어린 생명들의 공포를 우리는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학은 더욱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한 시대가 얼마나 쉽게 젊음을 소모했는지, 국가와 이념이 얼마나 무심히 개인의 미래를 앗아갈 수 있는지를 처절할 만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묻고,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 사무치게 되새기게 한다.

이 참혹한 이야기 속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사랑이다. 두 소년의 마음은 너무도 조심스럽고, 연약하고, 동시에 놀라울 만큼 단단하다. 죽음이 일상이 된 세계 속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오히려 더욱 선명해진다. 하지만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 전쟁 때문이었다 해도, 전쟁은 없었어야 했다고. 극한의 상황이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것이 비극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전쟁이 아니었어도 결국 사랑했을 것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오래 살아남아 깊이 사랑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사랑은 몹시 눈부시다.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환경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걱정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며, 아직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버텨내는 마음. 시대적 참혹함도 그들의 사랑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오직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오늘도 세계 어디선가 전쟁은 계속된다. 뉴스 속 전쟁은 숫자가 되고,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 그러나 그 숫자 안에는 누군가의 친구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아직 끝나지 않은 꿈이 있다. 『인 메모리엄』은 그것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소설처럼 느껴졌다. 전쟁은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다. 그리고 결국 가장 먼저 부서지는 것은, 내일이 당연할 것이라 믿었던 평범한 젊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상할 만큼 큰 위안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소중한 이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 오늘도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거대한 기적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깨닫는다면 전쟁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지 진실로 안다면 전쟁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전부를 가졌다. 우리는 살아 있다. 우리는 ‘삶’을 가졌다.

#인메모리엄 #소설추천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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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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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은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대개 역사를 한 줄로 기억한다. 유럽의 식민지 확장, 아프리카 원주민의 착취, 문명을 명분으로 이루어진 폭력. 그러나 역사는 단순한 문장만으로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 실제 그 시대를 살아낸 누군가의 감각과 두려움, 탐욕과 혼란, 그리고 인간의 모순까지 함께 마주할 때 비로소 역사는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얼굴을 갖게 된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유럽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 콩고 식민지의 폭력과 약탈을 배경으로 한다. 정글의 습기와 열기,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와 불안,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무너지는 인간의 얼굴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시대의 실체를 생생하게 감각하게 한다. 조지프 콘래드는 실제 콩고에서 기선 선장으로 머물렀고, 훗날 “인간의 양심과 지리적 탐험의 역사를 훼손시킨 가장 간악한 약탈 행위 중 하나”를 목격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허구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느껴지는 구체성을 지닌다.

콘래드는 문명을 전파한다는 명분 아래 유럽인들이 어떻게 탐욕과 고립, 권력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결국 ‘누가 문명인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가장 야만적이라 불리던 공간에서 오히려 문명인이라 자처한 이들의 욕망과 폭력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인간을 절망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곳곳에서 인간 안에 남아 있는 양심과 절제,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선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우리는 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해야 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대와 타인의 삶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문학이 건네는 상상력을 통해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가까워질 수 있다. 누군가의 상처를 상상하는 힘은 우리를 이기심에서 멀어지게 하고, 편협한 편견과 헛된 욕망으로부터도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든다. 그래서 고전은 오래 살아남는다. 인간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계속 던지기 때문이다.

소설 속 밀림에 대한 자연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밀림은 인간의 탐욕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존재처럼 그려진다. 가혹하고 음산한 자연의 묘사는 마치 인간의 오만을 응시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는 듯한 인과응보의 감각을 남긴다. 원주민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대신 드러내는 거대한 침묵처럼 읽히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독특한 서사 구조 덕분에 더욱 생생하다. 한 화자가 또 다른 화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방식은 현재성과 실제성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형식임에도 마치 그 시대의 현장을 바로 옆에서 목도하는 듯한 감각이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인간 문명의 어두운 단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생생함이 전해지고, 그만큼 가혹한 역사가 더욱 선명하게 인식된다.

『암흑의 핵심』이라는 제목은 여러 의미로 읽힌다. 그것은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공간을 향한 유럽인의 시선을 뜻하기도 하고,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제국주의의 탐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끝내 이 제목이 가리키는 가장 깊은 곳은 인간 내면의 어둠일 것이다. 권력과 욕망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으로서 지닐 수 있는 가치와 선에 대해 오래 생각해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암흑의핵심 #고전문학 #도서추천 #소설추천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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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 빛의 순간들 - 100개의 대표작으로 만나는 클로드 모네의 모든 것
박송이 지음 / 빅피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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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그림에는 그저 아름답다고 느끼고, 오래 바라보게 되며, 이상하게 마음이 환해지는 감각이 있다. 어쩌면 그 느낌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조금 알 것 같다. 모네의 그림이 건네는 아름다움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가 붙잡아낸 순간의 감각과 인상이라는 것을.

나는 서른이 넘어 그림을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예술사나 화풍, 기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론적인 영역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반드시 그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훨씬 자연스러운 감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풍경 앞에서 이유 없이 벅차기도 하고,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기도 한다. 예술은 종종 이해 이전에 먼저 감각되는 것이니까.

이 책을 읽으며 모네의 그림과 인상주의에 대해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모네는 대상을 선명하게 재현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빛이 닿는 순간의 변화와 그 인상을 붙잡고자 했던 화가다. 나무와 강, 하늘과 꽃은 그의 그림 안에서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빛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윤곽보다 색채가 먼저 움직이고, 형태보다 공기가 먼저 느껴진다. 빛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자연을 마주하는 듯한 감각을 전한다.

모네가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같은 장소를 수없이 반복해 그리며 시간과 계절,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끝없이 관찰했던 집요함. 그것은 살아 있는 세계를 향한 그만의 특별한 사랑처럼 느껴진다. 자연은 결코 반복되지 않고, 같은 풍경조차 단 한 번도 같은 얼굴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예술가란 그 미세한 차이를 끝내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는 흥미가 없다. 내게 오래 남은 감각, 설명하기 어려운 인상, 자연 속에서 문득 밀려온 감흥이 그림이 된다. 그림 속 밝음은 어둠이 있기에 더 빛나고, 색은 대비 속에서 비로소 살아난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나의 그림에 건넨 ‘인상주의적이다’라는 말은 자못 기쁘다. 그것이 단순한 화풍의 유사성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의 방향과 닿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모네는 신화 같은 천재가 아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절망하면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한 인간이다. 가난과 상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시력을 잃어가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계속 자연을 바라봤고 빛을 좇았다. 고통보다 아름다움을 더 오래 붙드는 일이 인간을 살게 한다는 것을 그의 삶이 말해주는 듯하다.

그림을 그리는 한 사람으로서, 책을 덮고 한동안 오래 생각했다. 무엇이 우리를 계속 그리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매일 비슷한 풍경을 보면서도 또다시 색을 꺼내 들게 되는 걸까. 아마 예술은 거창한 이유보다, 사라지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네가 평생 빛의 순간을 붙잡으려 했듯, 우리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 속의 찰나를 붙들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모네, 빛의 순간들』은 단순히 한 화가의 작품집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감각을 끝까지 믿으며 살아낸 시간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모네의 그림과 생애는 그 자체로 깊은 위안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클로드모네 #모네빛의순간들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빅피시서평단

*도서증정 @bigfish_book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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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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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는 문학의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소설이다.

전쟁의 잔상이 남아 있는 시대, 이미 정해진 삶의 궤도 위에서 살아가야 했던 한 소년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한다. 그 변화는 천천히 깊은 파동을 만들며 아주 섬세한 언어적 감각의 이동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소설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내면을 비추는 자연의 아름다운 묘사이다. 바다와 하늘, 바람과 들판, 빛의 농도와 색의 변화는 인물의 마음과 나란히 움직인다. 익숙한 세계를 등지고 바다를 향하는 장면에서는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오래된 압력과 편견, 망설임을 벗어나 조금씩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기척이 느껴진다. 마침내 무엇에도 가려지지 않은 수평선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한 사람의 새로운 탄생처럼 다가왔다.

주인공의 변화는 계절과 빛, 파도의 움직임과 공기의 무게 속에서 은유처럼 번진다. 그래서 문장을 읽을 때마다 풍경과 색, 냄새와 온도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노을빛으로 물든 풍경, 바다를 닮은 색감, 저녁 공기의 촉감 같은 시적으로 풍부한 표현들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감각으로 펼쳐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아름다운 풍경의 인상주의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색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경계는 흐리고, 빛은 흩어지는데 이상하게 마음속에는 오래 남는 그림 같은 감각.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한 붓질처럼 쌓이며 장면을 완성한다. 때로는 시 같고, 때로는 그림 같으며, 어떤 순간에는 음악처럼 잔향을 남긴다. 배경 묘사조차 단 한 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질 만큼 문장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이 작품은 전쟁 이후라는 무거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끝내 삶의 경이를 놓치지 않는다. 같은 시대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폐허와 상실, 비관의 상징 위에 서 있다면, 『수평선 너머』는 그 잔상을 지나 앞으로 나아가려는 젊음의 감각을 붙든다. 상처를 모른 척하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어쩌면 삶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우연들로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생애 처음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숨어 있다. 누군가를 만나 처음으로 다른 삶을 상상하게 되는 일, 한 문장이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일, 어느 풍경 앞에서 문득 자신이 살아 있음을 선명히 느끼게 되는 일. 『수평선 너머』는 바로 그런 순간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섬세하고도 시적인 언어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 것은 결국 이야기 자체보다도 언어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희망의 감각이다. 주인공의 내면에 새겨진 그 여름의 공기와 빛처럼, 생애 오래 남아 내내 떠오를 무엇. 그리고 수평선 너머에는 언제나 지금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용한 확신.

#수평선너머 #소설추천 #문학 #도서추천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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