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결별하기
도종환 지음 / 한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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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시간은 사계절을 천천히 산책하는 시간과 닮아 있다. 길을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추면 시인은 나무와 바람, 꽃과 계절을 바라보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읽으며 얼마 전 보았던 여행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법륜스님과 함께 인도를 여행하던 사람들이 길 위에서 삶의 질문을 꺼내고,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자신의 답을 찾아가던 모습. 이 책도 그 여행과 닮아 있었다. 계절을 따라 걸으며 삶의 이치를 배우고,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살아가는 마음을 배워 가는 시간이었다.

도종환 시인은 자연에서 삶을 읽어 낸다. 계절은 쉬지 않고 바뀌고, 나무는 꺾인 자리에서도 다시 잎을 틔운다. 자연은 생명과 회복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법을 보여 준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상처 또한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언젠가 다시 자신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나 역시 자연을 그리는 화가이기에 그의 시선이 더욱 깊이 와닿았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연은 언제나 가장 큰 스승이 되어 준다. 숲과 하늘, 바람과 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힘을 품고 있다. 자연 속에서는 욕망도 조급함도 조금씩 잦아든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삶은 한결 가벼워지고, 사계절이 이어지는 풍경은 예술가에게 끝없는 영감이 되어 영원한 주제로 남는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마음도 함께 천천히 걸어간다.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그리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문장마다 서두르지 않는 호흡이 담겨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에도 잔잔한 여백을 남긴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산문을 통해 시인의 삶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시가 어떤 시간과 어떤 마음에서 태어났는지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익숙하게 읽었던 시들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산문은 시인의 삶을 비추는 또 하나의 창이 되어 그의 시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책은 마음이 지친 하루에 꺼내 들기 좋은 산문집이다. 한 편씩 읽다 보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고, 평범한 하루의 무탈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에도 다시 초록은 자란다는 사실을, 시인은 자신의 삶과 문장으로 전한다. 책을 덮고 창밖의 나무를 한참 바라보게 되었다. 계절이 그러하듯 삶도 다시 초록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잔잔하게 채워 주었다.

#상처와결별하기 #도종환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도서증정 @hangilsa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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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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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은 자신을 어디까지 솔직하게 내어줄 수 있는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예수의 아들』을 읽으며 여러 번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팔아 살아가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잊고 싶은 기억과 가장 감추고 싶은 얼굴을 다시 불러내어 낯선 인물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 그래서 위대한 소설에는 언제나 작가 자신의 상처가 숨어 있다.

마약과 폭력, 방황으로 가득한 이 소설 속 세계는 낯설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몇 편을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그가 쓰고 있는 것은 마약 중독자의 삶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조차 끝내 사라지지 않는 삶에 대한 기대와 감각이라는 것을.

그가 자신의 삶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 가장 부끄러운 순간까지도 담담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 그 정직함은 문장 속에서 투명하게 빛난다. 그래서인지 공허하고 부조리하며 기꺼이 비난하고 죄를 물을 법한 장면에서조차 연민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다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할 뿐, 억지로 의미를 만들지 않는다. 그 공백은 독자 스스로 메우게 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고통을 견디기 어려운 이유는 고통 자체보다 고통을 겪는 자기 자신에게만 시선이 머물기 때문은 아닐까. 데니스 존슨은 고통 자체를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옮긴다. 어쩌면 그가 긴 방황의 시간을 지나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과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글쓰기는 자신의 상처를 끝까지 이해하려는 일이었다. 그 숭고함이 너무도 눈부셔 그의 글은 힘없는 대화 몇 마디만으로도 완전해진다.

그의 문장은 설명이나 화려한 수사보다 생략이 많다. 비어 있는 문장 사이에서 독자는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데니스 존슨이 미국 현대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독자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 인간의 가장 깊은 상처를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다는 연약한 외침은, 어느새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이 소설집은 너무 큰 것을 품고 있기에 구원이 찾아올 자리를 비워 둔다. 상처는 끝내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에게 문학은 깊은 위안이 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저마다의 삶에서 발견한 고유한 의미들로 채워진다. 결국 인간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을 통과해야만 진실된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 데니스 존슨은 자신의 삶과 문학으로 그 사실을 마침내 증명해 보인다.

#예수의아들 #데니스존슨 #소설추천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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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오현일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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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잊힌 이름들을 다시 불러낸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사람이 한 명쯤은 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함께 웃었던 친구들, 늘 반갑게 맞아 주던 이웃, 세상을 가르쳐 준 선생님, 그리고 묵묵히 곁을 지켜 준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있었기에 평범했던 하루는 추억이 되었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열두 살 소년 수동이에게 갑자기 찾아온 낯선 남자 ‘아재’. 처음에는 의심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수동이는 그와 함께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배워 간다. 들판의 바람을 느끼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바라보며 평범한 풍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을 익혀 간다. 이 소설은 성장이란 한 사람을 만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임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따뜻하게 보여 준다.

에피소드마다 공동체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같은 마을의 이웃들은 서로의 이름을 서슴없이 큰 소리로 부르고,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함께 걱정하며 살아간다. 미워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끝내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지금처럼 개인의 삶이 우선이 된 시대에는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어려워 더욱 애틋하고 정겹게 다가왔다.

나 역시 1980년대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전화 한 통보다 사람의 목소리가 먼저 닿던 시절이었다. 엄마를 부르고, 친구를 부르고, 골목 끝에서 이름을 크게 외치면 누군가는 골목을 돌아 반드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 주었다. 지금은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그렇게 큰 소리로 불러 보는 일은 점점 사라졌다. 편리함은 가까워졌지만, 사람의 존재를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은 오히려 줄어든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수동이가 목이 터져라 “아재!”를 외치는 순간과,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마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과의 재회. 그 부름은 잊고 지냈던 기억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향한 인사처럼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재』는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다. 책을 덮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이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리고 문득, 그들에게 오래전부터 전하지 못했던 진심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내 어린 시절은, 당신 덕분에 더 아름다웠다고.

#아재 #소설추천 #도서출판이곳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도서증정 @book_n_design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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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괴물의 시간
마크 해던 지음,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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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기묘한 동화, 그 숲속으로 다시 들어간 듯했다.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순간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인간에 대한 질문 한가운데 서 있다.

마크 해던은 오래된 신화를 오늘의 감각으로 변주하며, 그 안에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폭력과 연민을 새롭게 불러낸다. 그 과정에서 괴물은 점점 인간적으로 다가오고, 오히려 인간은 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변모한다.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마크 해던의 서사적 힘이다. 여덟 편의 단편은 어느 작품을 먼저 펼쳐도 첫 문장부터 독자를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도입부는 짧고 강렬하며, 장면은 선명하게 그려지고,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이어져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들고,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게 한다.

특히 상황을 그려내는 방식이 탁월하다. 불필요한 설명을 늘어놓기보다 인물의 행동과 공간, 분위기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독자가 직접 그 세계를 경험하게 만든다. 마치 그 공간을 함께 걷는 듯한 몰입감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박하고 생생하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조차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필력 덕분일 것이다.

이 소설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읽는 동안 내내 순수하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신화처럼 오래 마음에 머물며 새로운 의미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 재미와 사유를 동시에 품은 이야기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크 해던은 신화를 빌려 인간을 이야기한다. 오래된 전설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려, 지금도 변함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본성을 더욱 농밀하고 적나라하게 파고든다. 이야기의 힘만으로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는 작가가 얼마나 드문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개와괴물의시간 #마크해던 #문학수첩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도서증정 @moonhaksoochup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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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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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프랭클의 강의와 인터뷰를 묶은 유고집이다. 그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를 듣는 듯한 문체 덕분에 한 문장 한 문장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평생 삶의 의미를 탐구했던 그가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흔히 삶에서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 삶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프랭클은 중요한 것은 내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의 통찰력 있는 질문은 인간을 피해자에서 삶에 응답하는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불행과 상실, 실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 일은 끝내 자신의 자유로 남는다.

프랭클은 우리가 사랑한 것, 이루어 낸 것, 그리고 견뎌 낸 모든 것은 과거라는 곳에 영원히 보존되어 있으며, 이미 실현된 삶의 의미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과거는 더 이상 상실의 시간이 아니라 삶의 창고처럼 느껴졌다. 이미 살아낸 시간은 모두 삶의 일부가 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존재했던 삶은 결코 무효가 되지 않는다. 이보다 삶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철학이 있을까.

프랭클의 사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현재적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생활은 점점 더 편리해질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자유와 여가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랭클이 말했던 ‘실존적 공허’는 오히려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을 어떤 의미로 채울지는 대신 결정해 주지 못한다. 앞으로 프랭클의 철학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조차 그것을 인간다운 성취로 바꾸어 낼 가능성을 끝까지 믿었다. 그 믿음은 추상이 아니라, 극한의 현실을 살아남은 사람이 건네는 말이기에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마지막 강의에서 프랭클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은 철학을 넘어 위로가 되고, 우리에게 삶을 향한 아름다운 희망을 전한다.

살다 보면 가까운 사람이 깊은 상실을 겪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침묵하게 된다. 정작 자기 자신이 흔들릴 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조차 건넬 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그의 사유를 펼치게 될 것이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을 보여 준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며, 끝내 삶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질문 앞에서 그의 사유는 여전히 가장 가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좋은 철학은 한 번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시기마다 다시 읽으며 새롭게 발견하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빅터 프랭클의 사유는 여러 번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붙들고 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그 질문만큼은 결코 낡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수용소이후 #빅터프랭클 #리뷰어클럽리뷰 #도서추천 #서평

*도서증정 @bookhouse_official @yes24_official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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