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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사회 -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
이승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4월
평점 :
이 책은 우리가 왜 이토록 쉽게 관계를 끊고,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을 점점 더 부담스러워하며, 외로움이 어떻게 보편적 감각이 되었는지를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오늘날의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가 없어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더 이상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스스로를 관리하고 증명하며 상품 가치를 높여야 하는 존재로 살아갈 때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간과 돈, 감정을 써야 하지만, 동시에 자기계발과 노동, 생존 경쟁을 위해 자신 또한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 관계는 기회비용이 되고, 우정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평가해야 할 대상처럼 여겨진다. 그 결과 현대인은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절친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개인의 냉정함이나 미성숙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가 관계를 유지할 여유를 빼앗고, 관계의 의미마저 효율과 성과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예리하게 짚어내는 것은 외로움이 산업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외로움은 소비를 자극하는 결핍이 되고, 마케팅 전략이 되며, 각종 플랫폼과 서비스가 파고드는 시장이 된다. 소셜 미디어와 유사 관계, 유료 모임, 치유 산업은 우리에게 연결과 회복을 약속하지만, 그만큼 쉽게 인간적 유대를 대체 가능한 상품으로 바꾸어 놓는다. 외로운 사람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관리하며, 더 많이 자신에게 몰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관계는 약화되고 개인적 고립은 심화된다.
『손절사회』는 이 악순환을 사회적·정치적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현대 사회는 우울, 불안, 번아웃, 관계의 고통을 개인이 치료하고 관리해야 할 문제로 만들지만, 그 고통의 상당 부분은 불안정한 노동, 낮은 임금, 과도한 경쟁, 공공성의 약화, 공동체의 붕괴에서 비롯된다. 사회가 만든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둔갑시키는 순간, 문제는 탈정치화된다. 사람들은 함께 분노하고 연대하기보다 각자 상담을 받고, 자기계발서를 읽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다고 믿었던 많은 실천들이 오히려 자신을 더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지금은 역설적인 시대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우울과 자살, 고립의 문제가 심각해지며, 공동체적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산업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는 귀찮고 위험한 것이 되고, 타인의 고통은 나의 정서적 안전을 해치는 요소로 취급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혼자 완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관심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면서 자신의 삶도 확장한다. 공동체적 삶을 위한 타인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나에 대한 관심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가장 깊이 있고 선명하게 분석한다. 외로움과 손절, 자기돌봄과 치유, 소비와 관계의 문제를 하나의 구조 속에서 연결하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삶의 방식과 감정의 언어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이해, 노동과 시간의 재편, 공공성의 회복, 그리고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대하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손절사회』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회피함으로써 안전해지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받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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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across_book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