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
스테퍼니 랜드 지음, 박순미 옮김 / 타래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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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여러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선택은 늘 차선 속에서 이루어진다. 가난 속에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삶 앞에서 배움과 꿈은 점점 멀어지고, 겨우 한 발짝 나아가려 해도 수많은 제약이 따라붙는다.

저자이자 화자인 스테퍼니 랜드는 싱글맘이다. 그녀는 아이가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작가의 꿈을 위해 대학에 입학한다. 누군가에게 대학은 낭만적인 배움의 공간이지만 그녀에게 강의실은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된다. 젊은 동급생들이 과제와 수업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아이를 맡길 곳과 저녁 식비를 걱정한다. 늘 돈과 시간의 압박 속에서 아이의 안전을 염려하며 캠퍼스와 일, 그리고 육아 사이를 오간다. 같은 캠퍼스에 있지만 동기들과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을 매번 증명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아이를 책임질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반복된다. 이러한 복지 제도의 모순과 사각지대는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도움 앞에서 고마움보다 먼저 찾아오는 수치심, 아이를 재운 뒤 노트북을 켜지만 곧 밀려오는 피로 속에서 과제를 붙잡고 있는 밤. 그녀는 싱글맘의 현실적인 삶을 그대로 보여 주며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래스』를 읽다 보면 그 사다리가 누구에게나 같은 높이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의실과 사회적 계급이라는 두 의미가 교차하며, 작품의 제목 ‘클래스’ 또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여성의 인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회는 좋은 엄마가 되기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생계를 책임질 것 또한 요구한다. 그러나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는 거의 없다.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고, 공부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늘 어떤 역할에서는 부족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완벽한 선택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평등한 배움의 기회를 허락하고 있을까.
누군가에게 꿈을 꾸는 일이 왜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이어야 할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스테퍼니 랜드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해 온 ‘기회’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빈곤선 아래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사람들의 오해 어린 시선이, 구조적인 문제만큼이나 그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 또한 돌아보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 꿈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한 사람의 꿈을 향한 여정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사회의 구조와 그 안에 자리한 가치 판단의 편견을 함께 이야기한다. 가난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결과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이겨 내는 개인의 용기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빈곤선 아래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삶을 담은 이 이야기는 독자에게 깊은 공감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다시 나아갈 용기를 전한다.

#클래스 #조용한희망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도서증정 @ksibook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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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름
체사레 파베세 지음, 이열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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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가 상상했던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무엇을 기대했건 삶은 늘 다른 것을 들고 나타나 우리의 이해를 시험한다. 미래를 향해 어떤 장면들을 그려 보지만 현실은 종종 그 장면들을 비껴 가며 전혀 다른 풍경 속으로 이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긋남 속에서 비로소 삶을 이해하게 된다.

젊음과 사랑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여름처럼 뜨겁고 강렬한 무엇이다. 그러한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젊음과 사랑이 의미 자체로 너무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감정들이 그 안에 담겨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은 시간이 그곳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계절 속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순간들이 영원처럼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아름다운 여름은 파베세 특유의 절제된 문장으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젊은 시절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흔들리는지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사랑을 처음 경험하며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그러나 그 세계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따뜻하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제목과는 달리 작품의 전반적인 정서는 차갑고 고요하다. 소설 속 풍경은 어딘가 시리고 쓸쓸해 외로운 정서를 머금고 있다. 인물들이 오가는 공간과 대화,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이 내내 흐른다. 파베세는 이러한 분위기를 사소한 장면들과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 속에 담아내며, 젊음의 기대가 서서히 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단연 인상적인 것은 여성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 파베세의 탁월함이다. 남성 작가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여성이 직접 써 내려간 이야기라 해도 믿을 만큼, 소녀와 어른의 경계에 선 한 여성의 기대와 불안을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그녀가 품고 있던 환상은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현실의 윤곽을 선명히 드러내며 어떤 설명으로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로 변한다.

그러나 공허가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것은 아니다. 한때 자신을 강렬하게 통과해 간 사랑의 감정은 그녀 안에서 영원이 된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때의 설렘과 혼란, 처음 세상을 마주하던 떨림은 빛처럼 기억 속에 남아 오롯이 그녀만의 삶이 된다. 찰나였기에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여름 속에서.

#아름다운여름 #체사레파베세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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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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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 소설에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붙는지 알겠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왜 우리가 쉽게 말을 잃게 되는지도.

전쟁과 가난, 가정 폭력, 퀴어이면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삶. 이 어둡고 비참한 서사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가득하여 눈부시다.

이 작품은 영어를 읽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다. 더불어 이미 생을 마감한 연인에 대한 애도의 글도 함께 전한다.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수신자를 향해 쓰인 말들.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문장들이다. 말로 건네지 못했던 기억과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쓰인 글은 전달의 불가능함 속에서 진실을 껴안고 그로 인해 완전해진다.

베트남 전쟁을 통과해 온 할머니와 가난한 이민 노동자로 살아온 어머니, 그리고 미국 사회 속에서 자라난 아들 리틀독이 있다. 전쟁은 총성이 멎은 뒤에도 사람들의 몸과 언어 속에 오래 남아 있고, 가난과 폭력은 일상처럼 반복된다. 그 상처를 섬세하게 바라보는 소년 리틀독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깊이 있게 이해하며 성장해 간다.

이 소설의 여러 장면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전쟁과 도피, 가난의 이야기는 가족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나의 역사가 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트라우마를 안은 가족의 삶은 어린 시절 내내 리틀독에게 폭력과 가난으로 대물림된다. 그들의 삶과 기억은 더 이상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이 되어 화자의 고통과 상실, 결핍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것이 역사가 전해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이 겪지 않은 시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런 기억들이 자신의 이해와 만나 색을 입는 순간이다. 상처로만 남을 수도 있던 이야기들이 이해와 연민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감정을 만들고, 기억들은 오롯이 자신만의 삶이 되어 글로 쓰인다. 전쟁과 폭력, 차별과 억압의 삶은 잔인하다. 그러나 과거가 트라우마가 되고 슬픔으로 남더라도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서 가족과 연인에 대한 깊은 사랑이 싹트고, 그 숭고함이 몹시도 아름다워 문장마다 우리를 멈춰 세운다.

이 작품 앞에서는 무엇을 공감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는 일조차 망설여진다. 내 삶의 어떤 고통도 그들의 삶에 비견될 수 없을 때, 단 한 번뿐인 삶이 얼마나 다르게 주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빛으로 가득 찬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둠으로 채워진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삶을 완전히 비추어 볼 수 없기에 무엇이 전부인지 끝내 알지 못한다. 그 빛과 어둠이 각자의 세계 안에서 얼마나 밝고 얼마나 어두운지 또한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해석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 생으로 이어진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삶은 덧없고 빛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은 찰나로 머물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삶이 글로 닿는 순간 매혹은 어쩌면 영원하다. 오랜 시간 뒤에도 내내 매혹적일, 더없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지상에서우리는잠시매혹적이다 #오션브엉 #장편소설 #북스타그램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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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정지음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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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이미 통과한 사람이 건네는 응원은 어쩐지 잘 와닿지 않는다. 레이스 한가운데서 숨이 턱까지 차오른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의 한 걸음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바로 앞에서 함께 달리던 사람이 “조금만 더 가보자”고 건네는 말이 힘이 된다. 무엇이든 다 아는 선생님보다 옆자리 친구의 설명이 더 귀에 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글을 쓰고 싶지만 막상 시작하려면 막막해지는 사람들에게 친구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조차 종종 글 앞에서 멈칫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쓰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써지지 않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덕분에 글쓰기가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고, 조금은 힘을 빼고 글쓰기에 다가가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책 속에는 일상 속에서 글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오는 방법들이 담겨 있다. 길을 걷다가 들은 한마디를 메모해두거나, 평범한 문장 속에서도 흥미로운 단어를 발견하는 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편지 쓰듯 가볍게 써보는 방식까지. 이런 작은 시도들을 통해 글을 쓰는 문턱을 낮추는 저자만의 노하우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내 글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유가 사실은 ‘너무 나다운 이야기라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글쓰기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보는 과정이며, 그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여러 번 읽게 되는 사람 역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읽는 일에도 객관성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저자의 글은 가볍고 유머러스해 술술 읽힌다. 스스로의 실수나 어릴 적의 유치한 상상까지 거리낌 없이 꺼내놓는 진솔함 덕분에 읽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게 된다. 글을 쓰는 과정이 때로는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들도 많다. 덕분에 글쓰기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에서 가벼워지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용기도 샘솟는다.

어떤 날은 겨우 한 문장밖에 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앉아 있었던 시간,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했던 순간들 역시 모두 글쓰기의 일부라는 말은 공감과 위로가 된다. 결과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디는 과정 자체가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는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슬며시 밀려온다. 거창한 글이 아니어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당장 대단한 글을 써야겠다는 의욕보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중 하나쯤은 적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아마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거창한 시작이 아니라, 일단 한 줄을 써보는 것. 그렇게 쌓인 문장들이 어느 날 나만의 이야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글쓰기만큼은 편법보다 가장 느리고 힘든 방법이 오히려 최고의 훈련법이라는 말도 깊이 남는다.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와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작더라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 글쓰기의 여정에서 함께 달리며 손을 내미는 응원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글쓰기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저자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공감을 불러일으켜 읽는 내내 여러 번 웃음 짓게 만든다.

#글이안써지세요저도요 #글쓰기 #에세이 #신간도서 #서평

*도서증정 @originals_book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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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갈 용기, 멈춰설 자유 - 영국 이민 19년, 크레타에서 쓴 인생노트
류두현 지음, 키미림 그림 / 미다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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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때때로 무모함이 필요하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그 불확실성만큼이나 우리의 가능성 또한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가능성을 믿고 과감하게 나아가기 쉽지만, 나이가 들수록 변화는 점점 어려워진다. 체력도, 환경도, 이미 쌓아 온 삶의 구조도 우리를 신중하게 만든다. 특히 중요한 선택일수록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더 많은 망설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한 망설임의 경계에서 저자는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늦은 30대에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향한다. 익숙한 삶의 궤도를 벗어난 선택은 당연히 순탄하지 않았다. 낯선 사회에서 마주하는 문화적 차이와 예측하지 못한 현실적인 문제들, 그리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때로 불안하고 고단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는 예상치 못한 기쁨과 성장 또한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치열하게 움직이며 지나간다. 그때는 그저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바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과정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에게 영국에서의 19년은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긴 여정 끝에서 또 한 번의 선택을 한다. 사업을 정리하고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며, 인생의 또 다른 장을 향해 크레타 섬으로 향한다.

크레타에서의 시간은 저자에게 지나온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바다와 햇빛, 고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풍경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선택들을 마주한다. 빠르게 달려온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삶에서 겪어 온 시행착오와 고민, 그리고 그 속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들을 저자는 진솔하게 풀어낸다.

삶의 선택은 언제나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결정이 옳았는지 판단하는 일 역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많은 우연과 관계, 예측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은 더욱 흥미롭고 가치 있는 여정이 된다. 실패와 좌절 또한 그 길 위에서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 중요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완벽한 계획이나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 때로는 낯선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삶을 새로운 장면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이다.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풍경과 여행의 순간들은 읽는 이에게 잔잔한 설렘을 더한다. 바다와 마을, 역사적인 장소들을 거닐며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다. 그 여행의 중심에는 풍경과 더불어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가 자리한다.

하나의 나침반처럼 느껴지는 이 진솔한 이야기는 익숙한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을 때, 혹은 새로운 변화를 고민하고 있을 때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떠남과 멈춤은 서로 반대되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 둘은 같은 방향을 향한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른다. 끝과 시작은 언제나 함께하기 때문이다. 삶이 여전히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음을, 그리고 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운 용기를 이 책은 전한다.

#떠나갈용기멈춰설자유 #에세이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도서증정 @midasbook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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