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리학으로 세상을 다르게 본다 - 사소한 순간에 마주친 뜻밖의 물리학
하시모토 고지 지음, 정문주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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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이 인기를 끌고 줄 서는 맛집이 대세가 되자, 사람들은 ‘나만 아는 맛집’을 쉽게 소개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알게 되는 순간, 그 맛집에 앉아 있을 내 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너무 유용해서, 괜히 혼자만 알고 싶어지는 책.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학교에 다니고, 만원 전철로 출퇴근하던 그 시절에 이 물리학책을 만났다면 나는 분명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앞차를 여유롭게 보내며 다음 차를 탔을 것이다. 그리고 전철 안에서는 저자가 알려준 ‘필승법’으로 매번 앉아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된다면 모두가 같은 필승법을 쓰게 될 것이고, 그 순간을 비켜 갈 또 다른 필승법을 저자는 다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자의 다음 책까지 기대해 본다.

비에 덜 맞는 방법, 복숭아를 공평하게 나누는 법, 붐비는 버스를 피하는 비책, 지하철에서 앉을 확률을 높이는 물리학.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 모두 물리학으로 설명될 수 있고, 심지어 해답까지 얻을 수 있다니. 『나는 물리학으로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물리학과 일상이 만나, 쉽고도 유쾌하게 물리학을 통과하게 만든다. 어렵다는 선입견 없이 웃으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물리학의 기본 개념들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세상을 향한 강한 호기심과 일상을 물리학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남다른 시선이다. 물리학과 사랑에 빠진 물리학자는 엉뚱하면서도 따뜻해, 읽는 내내 유익함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낸다.

물리를 이렇게도 배울 수 있구나 싶은 순간들이 이어지며, ‘이런 물리학이라면 머리가 아프지 않고 오히려 즐겁게 고민해 보고 싶다’는 기대감까지 생긴다. 과학자의 역할이란 복잡한 이론을 세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 이미 존재하는 과학을 발견하게 해 주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과의 관계부터 일상의 아주 작은 순간들까지 물리학을 적용해 보는 저자의 이야기는 마치 일기처럼 다정하게 읽힌다. 그의 질문과 수식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수많은 실패와 성공이 지금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이 책은 물리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며 과학적 사고의 문턱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학문을 향한 저자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유쾌하고 솔직하게 전해지며, 과학이 위로가 되고 감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일,
그 시야가 넓어지는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해 보자.

#나는물리학으로세상을다르게본다 #과학에세이추천
#북스타그램 #추천도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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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 인류가 나아지지 못하는 7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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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은 하나의 방대한 희망의 서사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깊은 감동과 함께 나 역시 지금의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더 이로운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의욕이 솟아올랐다.

우리에게 변화는 늘 멀고 어려운 과제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은 역사적 성공 사례들을 공감 있게 제시하며, 우리 스스로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간 이해의 가장 깊은 지점에서 시작되는 변화에 닻을 올린다.

매일의 뉴스는 기후위기로 인한 환경 파괴를 전하며 우리에게 경고를 보낸다.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 환경운동가와 작가들 또한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끊임없이 설명하며 인식과 사고의 전환을 요구해왔다.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 불안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지 않고, 이미 우리의 일상과 삶의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동시에 우리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으며, 결국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개인의 삶에서도 변화는 늘 난제다. 우리는 해마다 운동, 독서, 공부 같은 다짐을 한다. 분명 삶에 이롭다는 걸 알기에,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기에 반복되는 결심이다. 하지만 다짐은 오래가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쉽게 반복되며, 해야 할 일은 늘 다음으로 미뤄진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나약하고 끈기 없는 존재로 규정하며 자책한다.

저자 슈테판 클라인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문제는 의지나 성실함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변화를 향해 설계된 기관이 아니다. 안정과 예측, 에너지 절약을 최우선으로 삼도록 진화해왔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미 가진 기대와 습관에 맞게 해석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잃을 가능성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더 나은 선택이 눈앞에 있어도, 익숙한 현재를 고수하는 쪽이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뇌의 구조는 개인의 변화 실패뿐 아니라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문제 앞에서 사회가 멈춰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이성적이어서,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우리는 오히려 변화에 취약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많은 뉴스와 미래 예측이 반복해온 절망을 과감히 걷어내고, 우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인 방식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결과를 쉽게 예측하고, 미래를 성급하게 단정한다. 앞으로의 환경은 지금보다 나빠질 것이라며 모두가 불안과 위험을 예견한다. 하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아무것도 시도해 보기 전에 단정할 필요가 있을까. 이 책은 막연한 환상을 걷어내고, 환경과 구조, 문화가 바뀔 때 인간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의지보다 맥락이, 도덕적 훈계보다 작은 장치와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작았지만 결코 사소하지는 않았다.

전례 없는 풍요 속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풍요에 상응하는 방식과 수단 또한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다.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정확히 이해할 때, 변화는 가능하며 우리의 역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어떤 조건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이 책은 개인의 삶에도, 사회의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한 희망을 남긴다. 변화는 어렵고 느릴 수 있으며 예측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곧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책의 한 문장은 오래 남아 분명한 변화의 씨앗을 심는다.

“희망이란 뭔가가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다.
희망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다.”

책을 덮으며, 기후 위기 앞에서 막연한 불안 대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 또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변화가 절실한 이 시대에, 이 책은 우리를 무력감에서 꺼내어 다시 생각하고, 다시 움직이게 한다. 변화를 믿기 어려운 지금, 그래서 더욱 필요한 필독서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뇌는어떻게변화를거부하는가 #책추천 #뇌과학 #북스타그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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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악의 날 부처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불안의 심연에서 나를 구원한 첫 번째 가르침
데이비드 미치 지음, 강정선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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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분명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진 시대를 살고 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공간, 선택할 수 있는 직업과 관계까지. 그럼에도 마음은 좀처럼 고요해지지 않고, 불안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충분한 조건 속에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 기묘한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책은 인생이 잘못 흘러가고 있어서 우리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불안해진다고 말한다. 우리는 직업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환경을 바꾸면 마음도 함께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결과는 늘 비슷하다. 잠시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같은 불안으로 되돌아온다.

저자는 불교를 직접 경험하고 실천해온 과정을 통해, 변화된 자신의 삶과 마음의 상태를 솔직하게 풀어낸다. 불안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대신,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일상 속에서 어떻게 마음의 중심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전한다.

불교는 흔히 떠올리는 종교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불교는 무엇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방향으로 훈련할 것인지를 묻는다. 부처는 숭배의 대상이라기보다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처럼 제시되며, 그 가르침은 삶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바라보는 태도를 요청한다.

마음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흘러가는 과정이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진다. 미래는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습관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오직 마음의 방향뿐이다.

상실과 실패, 병과 무기력 같은 순간들을 저자는 인생의 오류나 벌로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초대라고 말한다. 인생이 흔들릴 때 우리는 비로소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를 묻게 되고, 그 질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고통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통찰로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한 계기가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은 어떤 조건을 달성했을 때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누구나 연습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이며, 훈련의 결과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는 대신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 ‘마음의 방향’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하루 10분의 명상, 작은 선행, 태도를 점검하는 짧은 멈춤이 삶 전체의 결을 서서히 바꿔놓는다.

요즘 불교와 명상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르게 가는 법이 아니라,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만족이란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깊은 울림으로 전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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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참 이상한 마음 황인찬 시에세이 2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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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시가 시인의 마음을 빌려 친근해진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시들을 꼭 두 번씩 읽게 되었다. 먼저 시를 읽고, 뒤이어 적힌 시인의 말과 마음을 따라 다시 한 번 시로 돌아간다. 그렇게 읽고 나면 처음에는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시가 어느새 친숙한 얼굴로 다가온다.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다정한 문이 열린다.

시인의 일상적이고 생활감 가득한 문장들은 시를 이해하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동시에 살아가는 일에서 느끼는 불안, 고독, 사랑, 기쁨 같은 다양한 마음에 대해 말을 건넨다. 시인의 사적인 기억과 시에 대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세계는 충분히 넓은지, 사랑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잠들지 못하는 밤을 나는 어떻게 견뎌왔는지 같은 질문들이 생겨난다. 이 책은 시를 통해 그런 질문들을 안전하게 품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시는 독자를 수동적으로 두지 않는다. 독자가 자신의 기억, 감정, 경험을 꺼내지 않으면 시는 끝내 반쯤만 열린 상태로 침묵을 만든다. 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보다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마치 추상적인 그림 앞에서 감정을 쉽게 읽어낼 수 없는 것처럼, 문학과 예술은 곧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해서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하지만 그곳에는 벽과 문이 동시에 있어, 언제든 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가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마음을 바로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이 쉽게 번역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그 정직함이 때로 불친절하게 다가오더라도 다시 읽기를 반복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결국 시와 대화를 이어가려는 마음일 것이다.

《시는 참 이상한 마음》은 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책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마음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지만, 분명한 힘을 가진 화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를 읽는 의미 있는 시간 앞으로.

#시는참이상한마음 #북스타그램 #도서추천 #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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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나의 세계
마이클 톰프슨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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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해 마지막 날 새로운 다짐을 한다.
다음 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어쩐지 마음 한편에서는 작은 설렘이 고개를 든다. 새해는 늘 어떤 새로움을 안겨줄 것 같고,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시도해볼 도전의식을 품게 한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매해 새로운 기회가 도착한다. 기억되는 삶의 적립 속에서, 나만의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인연 역시 시간을 따라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어떤 뇌과학 책에서는 사람이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서 찾는다.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기억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속에서, 인간의 뇌는 일부 기억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리니 가족과 친구처럼 삶을 함께 살아가며 나에 대한 기억을 나눠 갖는 존재들이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기억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지속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없는 나의 세계》의 주인공 토미는 그 ‘함께 기억해주는 세계’를 가질 수 없는 소년이다.
토미는 매년 자신의 생일이 되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부모도, 친구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다음 날이면 토미를 처음 보는 낯선 존재로 대한다. 기억과 기록, 관계의 흔적까지 모두 지워진 세상에서 토미만이 어제를 기억한 채 홀로 남겨진다.

그는 매해 세상에 없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존재처럼 살아간다. 늘 처음 만나는 세상, 처음 맺는 관계, 처음 건네는 인사 속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장 슬픈 일은 소중했던 추억과 사랑이 오직 자신에게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토미가 품고 있는 기억은 공유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존재하고, 그 기억을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이 반복되는 상실은 토미의 삶에서 가장 잔인한 규칙이 된다.

하지만 그는 기억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생일이 지나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될 것을 알면서도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낸다.
매번 같은 상실을 겪지만,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더 신중해지고, 더 용기 있게 선택하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고민한다.

기억되지 않는 삶은 과연 무의미할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살아낸 시간조차 사라지는 걸까.

토미의 삶은 함께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은 분명 가능하다고 증명해 보인다. 정체성이란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는 것이라고.

토미의 삶에 대한 사랑과 선택은 깊은 감동을 전한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는 자신을 기억해주는 세계 대신, 자신을 잊지 않는 태도를 스스로 선택하며 성장해 나아간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삶.
매일의 선택이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정체성의 가장 현실적인 증거임을 보여준다.

토미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성장을 내내 지켜보며 뭉클하고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다. 동시에 토미의 의지와 사랑을 통해 삶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작가 모리아크는 말했다.
“내면에 암울한 비밀을 지니지 않은 인간은 이야기할 것이 없다.”

누구에게나 상실은 비극일 수 있지만, 삶의 선택은 감각으로 남는다. 토미는 자신의 비극을 넘어 매년 세상에 자신을 다시 심는다.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삶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품고 다가온다.

토미의 잊히는 삶으로 쌓아 올린 잊히지 않을 이야기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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