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파는 의사들 - 의료시스템은 어떻게 우리를 약물 의존으로 내모는가
애나 렘키 지음,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 옮김 / 오월의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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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병은 개인의 병보다 먼저 나타난다.”
— 미셸 푸코

최근 한국 학원가에서 ADHD 치료제가 ‘공부약’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중독을 파는 의사들》이 지적하는 구조적 중독의 현실이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연예인들의 항정신성 의약품 중독 처방 문제 역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한국 사회는 사소한 오점조차 치명적 낙인이 될 수 있는 구조와 압박 속에서,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 개인들 역시 수면제·진정제·감정 조절 약물에 점점 더 쉽게 의존하게 된다. 약물 의존이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의존은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의료 시스템과 처방 관행이 이미 중독 생태계를 견고하게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에서 말하는 중독은 마약 거래의 장면이 아니라, 진료실 안에서 작동하는 중독 메커니즘이다.

환자는 고통을 덜기 위해 병원을 찾고, 의사는 빠른 해결을 위해 처방한다.약국에서 합법적으로 구매된 약은 안전한 치료처럼 보이지만, 그 약이 삶을 무너뜨리는 기점으로 변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우리가 고통을 제거하는 약물에 얼마나 쉽게 기대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의존이 어떻게 새로운 고통을 재생산하는지 보여준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듯 진통제·수면제·진정제를 처방받는 시대에 ‘덜 고통받기 위한 즉각적 처방’이 일상화되면서, 약물 의존은 가장 손쉬운 선택이 되었다.

통증은 원래 치유의 일부였지만, 현대 의학은 통증을 가능한 한 빠르게 제거해야 하는 결함으로 규정한다.
불안과 슬픔, 집중력의 차이 같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스펙트럼 역시 병리적 결함으로 취급되며 곧바로 약의 목표가 된다.

20세기 후반 이후 ‘참을 수 없는 통증’의 기준이 급격히 낮아졌고,
처방은 폭증했다.
성과와 효율을 우선하는 의료 구조 속에서 의사는 인간을 진료하기보다 생산 라인처럼 환자를 처리해야 한다.
여기에 제약회사의 영향력이 더해지며 약 처방은 빠르고 안전해 보이지만, 가장 위험한 결정으로 자리 잡는다.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은 중독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축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악의적 의사’만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선의를 가진 다수의 의사가 구조적 압력 속에서 중독의 공급자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비판한다.

비극은 개인의 도덕이 아니라, 의료·경제·정치가 얽힌 구조가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또한 중독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 가장 인간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고통을 회피하는 태도를 내려놓고, 고통을 통과하며 의미를 재구성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약물은 어디까지나 보조 바퀴이며,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언젠가 약의 도움 없이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의사에게
그 ‘놓아주는 순간’을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독을 파는 의사들》은 우리 사회의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 변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고통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 다양성을 병으로 오해하는 문화, 효율을 인간성보다 우선하는 시스템을 향한 경고이자 강력한 질문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약에 기대야만 하는 사회를 만들었는가?”

#중독을파는의사들 #의학서적 #과학서적 #서평
#오월의봄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의료시스템 #애나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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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사랑할수록 함부로 말할까 - 화내고 뒤돌아서면 후회하는 연인들을 위한 감정 조절 심리학
앨런 E. 프루제티 지음, 최다인 옮김 / 부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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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을 ‘감정’으로만 이해하고, 그 감정만 충분하다면 관계는 저절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다루고 표현하는 기술의 부족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다.” — 에리히 프롬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우리가 가까운 사람과 갈등이 심해지는 이유를 “우리 뇌가 가까운 사람을 ‘타인’이 아닌 ‘나’와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뇌는 친밀한 관계일수록 정보를 ‘자기(self)’ 인식과 가까운 영역에 저장하고, 이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만 다르게 행동해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하여 훨씬 과도하게 반응한다.

즉, 가까운 사람일수록 대화가 어려워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신경학적·심리학적 필연성이다.

프루제티 박사의 《우리는 왜 사랑할수록 함부로 말할까》는 이 지점을 매우 실전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흔히 심리서를 읽으면 “맞아, 그럴 수 있지”라고 공감은 되지만 막상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막막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대화를 ‘교과서적 예시’가 아닌, 지금 내 삶에서 당장 일어날 법한 생생한 사례로 제시한다.

독자는 자신의 과거와 닮은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패턴을 인식하게 되고, 그 상황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까지 명확한 ‘대안 문장’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또한 감정 문제를 단순히 “참아라”, “말을 곱게 해라”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저자는 DBT(변증법적 행동치료)를 기반으로
1차 감정과 2차 감정의 차이,
오해가 감정 반응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
언어 선택이 갈등을 어떻게 심화하거나 완화하는지.
이러한 요소들을 쉽고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의 진짜 욕구를 감추고 공격적인 언어로 자신을 방어하는데, 이 변환 과정은 거의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관계는 파괴적인 흐름에 휩쓸리기 쉽다.

책이 제안하는 핵심 대화 기술 중 하나인 “타당화(validation)”는 단순한 공감 표현이 아니라, 상대의 경험과 감정의 정당함을 인정하는 심리치료의 핵심 기법이다. 이 기술은 회피형 사람에게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 감정이 격해지는 사람에게는 과열된 반응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결국 타당화는 연인뿐 아니라 친구, 가족, 직장 동료 등 모든 관계에서 기본적이자 결정적인 소통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가까운 사람들이 왜 더 자주 다투는지를 단순한 ‘심리적 경향’에 머물지 않고 뇌과학·임상심리·대화 기술을 유기적으로 엮어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론은 명확하고, 사례는 현실적이며, 솔루션은 즉각 적용 가능하다.

《우리는 왜 사랑할수록 함부로 말할까》는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실전 매뉴얼’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기지만, 관계는 배워야 유지된다. 이 책은 연인, 가족, 친구, 동료 등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현실적 대화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화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기술을 이해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안내한다.

결국 대화는 사랑의 가장 오래된 기술이다.
친절한 말은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더 다정한 사람으로 만든다.
사랑은 감정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말에서 자라난다.

#우리는왜사랑할수록함부로말할까 #커플 #연애
#베스트셀러 #책추천 #대화의기술 #서평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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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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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한국 도시 2026』은 도시의 변화를 단기적 개발 이슈나 선거 공약 수준에서 해석해 온 기존 담론을 넘어, 한국 도시를 읽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이 책은 “도시는 무엇에 의해 변화하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입체적이고, 때로는 냉정할 만큼 구조적인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전국 곳곳을 직접 발로 뛰며 얻은 현장감 있는 관찰을 바탕으로, 도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을 지정학·산업·인구·교통이라는 네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장밋빛 개발 공약과 부동산 시장의 과장된 전망이 실제로는 도시의 미래를 거의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을, 각종 교통망 지연 사례와 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치·행정적 난맥상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도시정책이 ‘약속’이 아니라 ‘현실의 제약’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은 저자의 분석을 관통하는 큰 메시지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국제 정세와 산업 지형의 변화를 ‘도시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읽어낸 부분이다. 트럼프 2기 이후의 미·중 패권 경쟁, 북·중·러의 결속,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단순한 국제뉴스가 아니라 한국의 특정 지역에 산업적·군사적 이점을 제공하는 구조적 변수로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동남권 방위산업 벨트가 갖는 잠재력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설명하는 방식은 한국 도시 연구에서 보기 드문 깊이를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인구 감소와 산업 재편을 도시 경쟁력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확장 강남이 장기적으로 견고한 구조를 갖는 이유, 경기 북부나 서해안 개발 테마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지속 가능성이 낮은 이유를 인구 흐름과 산업 구조 데이터를 통해 명료하게 분석한다. 이는 특정 지역에 대한 낙관·비관을 넘어,

도시를 읽는 “프레임” 자체를 독자에게 제안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제2부의 지역별 분석은 단순한 지리적 나열이나 정책 요약이 아니다. 저자는 각 지역을 3대 메가시티와 6대 소권으로 나누어, 상호 충돌하는 이해관계와 각자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어떤 지역이 장기적 성장성을 지니고, 어떤 지역이 단기 테마로 그칠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얻게 된다.

『한국 도시 2026』의 가치는 단순한 지역 전망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를 ‘개발·부동산’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지정학이 교차하는 거대한 생태계로 바라보게 한다.
도시를 읽는 일은 결국 사회를 읽는 일임을 일깨운다.

많은 도시 연구가 현재 현상의 설명에 머무르는 반면, 이 책은 ‘구조적 미래’를 읽어내는 작업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과장 없이 그대로의 구조를 바탕으로 한국 도시가 어디를 향하는지를 드러내는 분석은 이 책을 단순한 트렌드 전망서가 아닌, 현실 분석서이자 사회적 성찰서로 만든다.

『한국 도시 2026』은
세상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변화를 예측하는 힘을 갖고 싶은 사람,
도시를 통해 사회의 작동 원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책이다.
한국 도시의 미래를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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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경제 #북스타그램 #김시덕 #부동산전망 #경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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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멘탈은 달라야 한다 - 위기와 압박에도 무너지지 않는 실리콘밸리 내면 리더십
사비나 나와즈 지음, 이수경 옮김 / 리더스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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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처음부터 리더일 수 없다.
대개는 그 위치까지 가기 위해 오랜 시간 성과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리더 이전의 자신’이 있다.
그렇게 어제까지 팀원이었던 사람이 오늘 리더가 되면, 같은 말과 행동도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권력을 지닌 말과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압박이 되고, 리더의 사소한 실수조차 조직의 균열이 된다.

『리더의 멘탈은 달라야 한다』의 저자 사비나 나와즈는
리더십의 위기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역할이 바뀌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존 맥스웰은 말했다.

“어제의 방식으로 오늘을 다루면 내일을 잃는다.”

높은 자리로 향하는 한 걸음은 한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어제의 동료였던 이들이 오늘은 나의 결정에 기대고,
사소한 말조차 중대한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건 곧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리더십은 능력에 덧붙는 옵션이 아니라 방식 전체를 재구성하는 일임을 실감하게 한다.

책 속에는 이러한 전환에 실패한 수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다’며 모든 일을 떠안다가 번아웃된 관리자,
과거의 ‘전문가 방식’만 고집하다 팀원들의 이탈을 막지 못한 개발 리더,
좋은 의도였음에도 권력 간극을 간과해 팀의 사기를 떨어뜨린 임원까지.

유능한 직원이 리더가 되는 순간 환경과 심리적 조건은 완전히 달라지며,
이를 다스리지 못하면 관계도 성과도 끝내 자신의 위치도 위태로워진다.

『리더의 멘탈은 달라야 한다』가 수많은 리더십 책들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이러한 내면의 오작동을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 도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특정 사람이나 상황 앞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이유를 추적하는 ‘감정 방아쇠 찾기’,
직원의 역량에 따라 위임의 강도를 조절하는 ‘권한 위임 다이얼’,
불필요한 완벽주의를 줄이는 ‘시간 포트폴리오 분석’ 등
즉시 실천 가능한 전략들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은 리더를 이상적인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리더 역시 흔들리는 인간임을 인정하고,
권력이 커질수록 고독과 번아웃이 깊어진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저자 자신도 ‘최고의 상사’에서 ‘최악의 상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었고,
그 경험이 리더십을 자기 성찰의 영역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

『리더의 멘탈은 달라야 한다』는
리더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든 흔들릴 수 있음을 인정하며,
그 마음을 돌보는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한다.
그리고 조직을 이끄는 리더뿐 아니라
스스로를 이끌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일의 방식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간과해 온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게 한다.

결국 이 책은 어떤 자리에 있든 스스로를 이끌어야 하는 모든 이에게 유용하다.
우리가 흔들릴 때, 방식은 언제든 다시 조정될 수 있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서 이 책이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리더십 #리더의멘탈은달라야한다 #좋은팀장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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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안녕을 말할 때
이명희 지음 / 샘터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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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움직이지도, 보지도 못한 채 열세 살이 된 아이를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동안 수없이 물었던 관계에 관한 질문들.”

처음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슬픔을 떠올렸다.
어쩌지 못하는 일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좌절과 고통, 한 사람이 삶에서 겪었을 비통함 같은 것들.
나는 아마도 ‘안녕’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외로움과 이별을 먼저 상상했던 것 같다.
안녕이 사실은 좋은 의미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품었던 추측들은 편견에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린 여전히 누군가의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배경이나 사정을 다 알지 못한 채 판단하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그 판단 속에서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판단하는 순간,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는다.”
_칼 융

이 책은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의 기록’이라는 프레임보다 훨씬 넓은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중증 장애아의 엄마로서 버텨 온 지난 시간을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건 ‘아이의 아픔’이나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무너짐과 다시 서기에서 오는 회복의 기록이다.

회복의 과정은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상담심리 전공자로서 날카로운 통찰과 자조 섞인 유머를 섞어가며 관계·거리·비교·사랑·감사 같은 감정들을 해부한다.

도로 위 점선과 실선으로 인간 사이의 거리를 설명하고,
MBTI의 인기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읽어내고,
감사란 ‘감정’이 아니라 ‘결심’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번 크게 웃었다.
누군가의 삶이란 게 결국 우리와 너무 달라 보이지만, 또 너무 닮아 있기도 해서다.
이 책 곳곳에는 대놓고 위로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따스한 ‘인간성’이 숨어 있다. 회의적인가 싶으면 어느새 기어코 흘러나오는 온기를 마주하게 된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아들의 활동 보조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 엘리베이터에서 나누는 작은 인사, 수영장에서의 만남 등 다양한 삶의 장면은 ‘관계’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용히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모두가 불완전하지만 흔들리면서도 다시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담백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조금 들여다보는 일,
볼품없는 곳에서 빛 한 줄기를 찾아내는 일뿐일지라도,
우리는 결국 상처를 통해 빛이 들어오는 틈을 발견한다.

“세상은 모두를 부수지만, 대부분은 부서진 자리에서 더 강해진다.”
_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책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안부이자,
누군가와의 이별이자,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안녕이다.
나는 그 안녕 속에서 미소와 오래 머물렀고,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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