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참 이상한 마음 황인찬 시에세이 2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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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시가 시인의 마음을 빌려 친근해진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시들을 꼭 두 번씩 읽게 되었다. 먼저 시를 읽고, 뒤이어 적힌 시인의 말과 마음을 따라 다시 한 번 시로 돌아간다. 그렇게 읽고 나면 처음에는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시가 어느새 친숙한 얼굴로 다가온다.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다정한 문이 열린다.

시인의 일상적이고 생활감 가득한 문장들은 시를 이해하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동시에 살아가는 일에서 느끼는 불안, 고독, 사랑, 기쁨 같은 다양한 마음에 대해 말을 건넨다. 시인의 사적인 기억과 시에 대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세계는 충분히 넓은지, 사랑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잠들지 못하는 밤을 나는 어떻게 견뎌왔는지 같은 질문들이 생겨난다. 이 책은 시를 통해 그런 질문들을 안전하게 품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시는 독자를 수동적으로 두지 않는다. 독자가 자신의 기억, 감정, 경험을 꺼내지 않으면 시는 끝내 반쯤만 열린 상태로 침묵을 만든다. 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보다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마치 추상적인 그림 앞에서 감정을 쉽게 읽어낼 수 없는 것처럼, 문학과 예술은 곧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해서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하지만 그곳에는 벽과 문이 동시에 있어, 언제든 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가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마음을 바로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마음이 쉽게 번역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그 정직함이 때로 불친절하게 다가오더라도 다시 읽기를 반복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결국 시와 대화를 이어가려는 마음일 것이다.

《시는 참 이상한 마음》은 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책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마음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지만, 분명한 힘을 가진 화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를 읽는 의미 있는 시간 앞으로.

#시는참이상한마음 #북스타그램 #도서추천 #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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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나의 세계
마이클 톰프슨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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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해 마지막 날 새로운 다짐을 한다.
다음 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어쩐지 마음 한편에서는 작은 설렘이 고개를 든다. 새해는 늘 어떤 새로움을 안겨줄 것 같고,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시도해볼 도전의식을 품게 한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매해 새로운 기회가 도착한다. 기억되는 삶의 적립 속에서, 나만의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인연 역시 시간을 따라 자연스럽게 깊어진다.

어떤 뇌과학 책에서는 사람이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주변 사람들’에서 찾는다.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기억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속에서, 인간의 뇌는 일부 기억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리니 가족과 친구처럼 삶을 함께 살아가며 나에 대한 기억을 나눠 갖는 존재들이 새삼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기억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지속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없는 나의 세계》의 주인공 토미는 그 ‘함께 기억해주는 세계’를 가질 수 없는 소년이다.
토미는 매년 자신의 생일이 되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부모도, 친구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다음 날이면 토미를 처음 보는 낯선 존재로 대한다. 기억과 기록, 관계의 흔적까지 모두 지워진 세상에서 토미만이 어제를 기억한 채 홀로 남겨진다.

그는 매해 세상에 없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존재처럼 살아간다. 늘 처음 만나는 세상, 처음 맺는 관계, 처음 건네는 인사 속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다. 무엇보다 가장 슬픈 일은 소중했던 추억과 사랑이 오직 자신에게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토미가 품고 있는 기억은 공유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존재하고, 그 기억을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이 반복되는 상실은 토미의 삶에서 가장 잔인한 규칙이 된다.

하지만 그는 기억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사랑하고, 관계를 맺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생일이 지나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될 것을 알면서도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낸다.
매번 같은 상실을 겪지만, 같은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더 신중해지고, 더 용기 있게 선택하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고민한다.

기억되지 않는 삶은 과연 무의미할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살아낸 시간조차 사라지는 걸까.

토미의 삶은 함께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을 잃지 않는 삶은 분명 가능하다고 증명해 보인다. 정체성이란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는 것이라고.

토미의 삶에 대한 사랑과 선택은 깊은 감동을 전한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는 자신을 기억해주는 세계 대신, 자신을 잊지 않는 태도를 스스로 선택하며 성장해 나아간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삶.
매일의 선택이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정체성의 가장 현실적인 증거임을 보여준다.

토미의 어린 시절부터 그의 성장을 내내 지켜보며 뭉클하고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다. 동시에 토미의 의지와 사랑을 통해 삶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작가 모리아크는 말했다.
“내면에 암울한 비밀을 지니지 않은 인간은 이야기할 것이 없다.”

누구에게나 상실은 비극일 수 있지만, 삶의 선택은 감각으로 남는다. 토미는 자신의 비극을 넘어 매년 세상에 자신을 다시 심는다.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삶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품고 다가온다.

토미의 잊히는 삶으로 쌓아 올린 잊히지 않을 이야기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더없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내가없는나의세계 #장편소설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도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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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 - 100개의 물질로 읽는 생명과 우주, 인류의 미래 최소한의 지식 2
김성수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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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직후의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생명에 필요한 재료는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의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들 또한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별은 많은 일을 해냈다. 별의 내부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과 온도 속에서 핵융합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숨 쉬는 산소, 몸을 이루는 탄소, 피 속을 흐르는 철과 같은 원소들이 탄생했다.

거대한 별은 마지막 순간 초신성으로 폭발하며, 자신 안에서 만들어낸 원소들을 우주 공간으로 먼지처럼 흩뿌린다. 그 먼지들이 다시 모여 새로운 별과 행성, 그리고 결국 지구와 생명이 태어났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별의 죽음으로 태어난 ‘별의 먼지’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 하나하나는 한때 별의 중심에 있었던 것들이며, 어떤 별의 죽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명과 우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화학 원소들의 생성과 결합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이 책은 화학 현상을 통해 우주의 시작에서 생명의 탄생, 인류 문명의 형성과 산업, 나아가 미래까지를 ‘물질’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연결한다. 우리는 우주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물질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어떤 학문의 이론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개인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물리나 화학처럼 기호와 공식이 가득한 학문을 알지 못해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과학적 이론을 연구하고, 물질의 원리를 밝혀내려 애써왔을까.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의 방식 대부분은, 알지 못했다면 도달할 수 없었을 해답들이 과학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 개념을 이해하는 일은, 알기 전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원자와 원소의 결합과 생성, 화학 평형과 반응이라는 개념들을 우주와 지구, 생명과 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풀어내며 100가지 물질을 통해 화학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모든 물질은 서로 반응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균형 속에서 공존한다. 화학은 결국 관계와 균형의 학문이다. 그리고 그 균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다루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 또한 엿볼 수 있다.

AI가 수많은 가능성을 계산하고 예측하는 시대에도, 현실을 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물질이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며, 그 중심에는 물질에 대한 이해, 즉 화학적 사고가 있다. 이 책은 화학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별에서 시작된 원자는 생명이 되고, 문명이 되며, 다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화학》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물질 속에, 화학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책을 덮고 나니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은 더 이상 아름답기만 한 풍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화학의 언어를 통해 별을 이해하는 순간, 그 별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인간이 존재하게 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의 증인이 된다. 아름다움은 경이가 되고, 감상은 사유로 확장된다.

화학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책은 인간의 과학적 증명을 통해 환경오염과 같은 시대적 난제 앞에서, 우리가 다시 균형을 배울 수 있는 길이 화학 안에 있음을 말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화학이 이 책안에 있다.

#세상을이해하기위한최소한의화학 #화학 #북스타그램 #책추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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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위의 가마괴
강지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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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어떤 기대를 품게 된다.
설계자에 의해 치밀하게 짜인 견고한 서사,
영화처럼 그려지는 드라마틱한 장면들,
그리고 점점 고조되는 긴장 끝에 도달하는 클라이맥스.
마지막에는 인과응보가 분명히 작동하고,
주인공은 상처를 통과한 뒤 다시 삶을 이어간다.

이 모든 요소가 한 권의 장편소설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독자는 책을 덮는 순간 묘한 희열을 느낀다. 어쩌면 그 희열은 이야기를 완성해낸 작가의 에너지가 독자에게 그대로 전이된 감각일지도 모른다.

강지영의 『기린 위의 가마괴』는 바로 그 기대를 정확히 충족하면서도, 기대에만 안주하지 않는 소설이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작품은 독특하고 개성 강한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빠르게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 같은 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기린 모자와 까마귀라는 상징적 장치,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의식과 전설은 이야기에 묘한 판타지적 균열을 만든다. 이 현실과 환상의 겹침은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보듯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만들어내면서도, 곳곳에 배치된 블랙코미디적 요소로 호흡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덕분에 독자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끝까지 몰입하며 읽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과정에서 촘촘하게 배치된 ‘인연의 고리’들이다. 인물들은 무작위로 등장하는 듯 보이지만, 정확한 시점마다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며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과거와 현재, 개인의 상처와 도시의 균형이 맞물리며 하나의 구조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독자는 그 연결이 완성될 것을 직감하면서도, 다음 장면을 넘기기 전까지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기대했던 클라이맥스는 영화적 장면처럼 긴박하게 펼쳐진다. 이 소설이 단순한 액션이나 서스펜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위기의 순간마다 인물들의 얼굴과 선택이 또렷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폭력을 끊기 위해 폭력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도시를 떠받친다.

『기린 위의 가마괴』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기보다,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회 속 개인들의 역할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완성되는 일은 없다는 이 모순적인 진실은, 사회 안에 결코 하찮은 위치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러한 메시지는 책 속 한 문장으로 오래 남는다.
“돕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지만, 도울 때는 이유가 없어. 그냥 하는 거지.”

망가진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강지영은 거창한 영웅 서사 대신, 눈에 띄지 않는 역할과 책임,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은 통쾌함만이 아니라, 묘한 여운과 생각의 잔상이다.

『기린 위의 가마괴』는 잘 만들어진 서스펜스이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틀어 비추는 거울 같은 소설이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독자는 어쩌면 이미 어딘가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인물들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사회적 모순을 바탕으로 개성 강한 인물들과 신선하고 독특한 설정을 결합한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흥미로운 장면들을 펼쳐 보인다. 그 속에서 가족과 이웃, 사회와 정의, 그리고 개인이 감당해야 할 역할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단순한 오락적 서사를 넘어, 우리가 어떤 세계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게 하는 작품이다.

#기린위의가마괴 #장편소설 #한국소설 #북스타그램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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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 - 김삼환 목사의 나누는 삶, 섬기는 사랑에 대하여
은파기념사업회 지음 / 현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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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오늘의 사회는 과거에 비해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세계 곳곳의 굶주림과 결핍을 상당 부분 완화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 하루를 살아낸다는 일은 여전히 당장의 생존과 맞닿아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과 풍요로움으로 채워진 듯 보이는 나라들 안에서도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모두가 불평등 없이 잘사는 사회는 어쩌면 유토피아에 가까운 이상일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그 구조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누군가는 생겨난다. 그렇다면 ‘나눔’은 일시적인 선의나 특별한 미덕이 아니라, 이 불완전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되어야 할 실천적 행위에 가깝다.

누군가를 돕는 선택은 특정한 신념의 증명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는 한 사람이 선택해 온 삶의 태도가 어떻게 공동체의 움직임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김삼환 목사 개인의 종교적 위치나 교회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는 별개로, 이 책이 담고 있는 ‘행위의 기록’ 자체는 분리해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공동체가 나눔을 실천해 온 구체적인 장면들을 통해 우리 역시 나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삼환 목사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결핍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 결핍이 있었기에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의 결핍이 어떻게 타인을 향한 감각으로 전환되었는지를 따라간다.

에티오피아 MCM 병원 설립, 캄보디아 교육관 건립, 국내외 재난 현장에서의 구호 활동 등 다양한 사례들이 이어진다. 나눔을 향한 한 번의 선택과 한 번의 결단이 또 다른 선택을 낳고, 그렇게 이어진 작은 움직임이 결국 더 큰 흐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개인적이고 이기심이 만연한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나는 10년 넘게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기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하루 만 원이 없어도 내 생활은 이어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그 만 원은 생존의 문제이자 삶을 이어 가는 마지막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시작한 나눔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크기를 키워 갔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누군가를 돕기 위한 결단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나 역시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 살아왔고, 인간은 사회 안에서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나눔은 선의를 증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보수와 진보, 종교와 비종교를 가르기보다
'지금, 누군가가 힘들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이 단순한 기준이 오히려 오늘날에는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윤리가 되었다.

어떤 신념을 넘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사용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갈 것인가.

작은 물결처럼 보이는 선택도 시간이 지나면 파도가 된다.
나눔 역시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의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로운 힘을 지닌 책이다.

#작은물결이파도가되어 #에세이 #현암사 #북스타그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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