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위의 가마괴
강지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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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어떤 기대를 품게 된다.
설계자에 의해 치밀하게 짜인 견고한 서사,
영화처럼 그려지는 드라마틱한 장면들,
그리고 점점 고조되는 긴장 끝에 도달하는 클라이맥스.
마지막에는 인과응보가 분명히 작동하고,
주인공은 상처를 통과한 뒤 다시 삶을 이어간다.

이 모든 요소가 한 권의 장편소설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독자는 책을 덮는 순간 묘한 희열을 느낀다. 어쩌면 그 희열은 이야기를 완성해낸 작가의 에너지가 독자에게 그대로 전이된 감각일지도 모른다.

강지영의 『기린 위의 가마괴』는 바로 그 기대를 정확히 충족하면서도, 기대에만 안주하지 않는 소설이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작품은 독특하고 개성 강한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빠르게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 같은 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기린 모자와 까마귀라는 상징적 장치,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의식과 전설은 이야기에 묘한 판타지적 균열을 만든다. 이 현실과 환상의 겹침은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보듯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만들어내면서도, 곳곳에 배치된 블랙코미디적 요소로 호흡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덕분에 독자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끝까지 몰입하며 읽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과정에서 촘촘하게 배치된 ‘인연의 고리’들이다. 인물들은 무작위로 등장하는 듯 보이지만, 정확한 시점마다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며 서서히 베일을 벗는다. 과거와 현재, 개인의 상처와 도시의 균형이 맞물리며 하나의 구조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독자는 그 연결이 완성될 것을 직감하면서도, 다음 장면을 넘기기 전까지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기대했던 클라이맥스는 영화적 장면처럼 긴박하게 펼쳐진다. 이 소설이 단순한 액션이나 서스펜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위기의 순간마다 인물들의 얼굴과 선택이 또렷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폭력을 끊기 위해 폭력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도시를 떠받친다.

『기린 위의 가마괴』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기보다,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회 속 개인들의 역할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완성되는 일은 없다는 이 모순적인 진실은, 사회 안에 결코 하찮은 위치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그러한 메시지는 책 속 한 문장으로 오래 남는다.
“돕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지만, 도울 때는 이유가 없어. 그냥 하는 거지.”

망가진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강지영은 거창한 영웅 서사 대신, 눈에 띄지 않는 역할과 책임,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은 통쾌함만이 아니라, 묘한 여운과 생각의 잔상이다.

『기린 위의 가마괴』는 잘 만들어진 서스펜스이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틀어 비추는 거울 같은 소설이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독자는 어쩌면 이미 어딘가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인물들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사회적 모순을 바탕으로 개성 강한 인물들과 신선하고 독특한 설정을 결합한 이 소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흥미로운 장면들을 펼쳐 보인다. 그 속에서 가족과 이웃, 사회와 정의, 그리고 개인이 감당해야 할 역할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단순한 오락적 서사를 넘어, 우리가 어떤 세계를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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