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긍정감을 회복하는 시간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이정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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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바쁜 업무로 인해 지속되는 야근으로 지친 심신과 신경이 날카로워진 동료들과의 신경전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이상하게도 자존감이 낮아지는데, 최근 계속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괴로웠다. 그래서 제목을 보고 집어든 책이다. 사실 일본작가들의 자기개발서 분위기를 풍기는 책들은 대부분 실속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힐링이 되었던 책이다.





저자는 대인관계요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신과 전문의이다. 대인관계요법은 인간관계를 통해 자기긍정감을 높임으로써 정신질환을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p.6 "자신 있게 내 주장을 해서 자기긍정감을 높이자!", "당당하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하고 마음먹고 노력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자기긍정감이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독선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더욱 자신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초반의 머릿말부터 내 기분을 꿰뚫어 보는 문장이 있는 책은 오랜만에 접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던 '자존감 수업'에서는 솔직히 내 마음에 크게 와닿는 문장이 없었는데, 이 책은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문장들이 많이 있었다.



p.76 즉 상대방에 대해 어떤 부분이 우수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내리면 모든 사람을 리스펙트하기 어렵지만, 평가를 버리고 각자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 힘든 제약 속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상대방을 리스펙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자기긍정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리스펙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리스펙트, 존경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리스펙트와는 다르다. 보통은 훌륭한 업적이나 고결한 성품 등 어떠한 조건을 보고 그것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을 조건적 리스펙트라 칭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리스펙트'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리스펙트는 타인에 대한 리스펙트와 자신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다. 우리는 이 중에서 타인에 대한 리스펙트를 먼저 실천해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자기긍정감이 낮은 상태의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긍적적인 생각과 확신이 힘들기 때문에 우선 남을 먼저 리스펙트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p.92 "어쨌든 마음에 안 들어", "믿을 수 없어.", "인간이 아냐"라는 식의 태도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데는 분명히 그만한 사정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거기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타인을 리스펙트하는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는데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상처로 돌아온다. 그저 저 사람이 많이 힘들구나, 저 사람도 저럴만한 사정이 있겠지라며 타인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존중을 실천하는것으로 자기긍정감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리스펙트에 대해 저자는 두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리스펙트 화법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두기이다.



p.109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짜증 나"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자신감을 잃게 돼"라는 식으로, 상대방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중점에 두고 말해야 한다. 리스펙트를 보여주는 화법이란 '나'를 주어로 삼는 화법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중심으로 두고 이야기를 하면, 결국 상대방도 그것을 부정하기 위한 날카로운 말을 내뱉게 된다. 그런데 내 감정을 중심으로 하는 화법을 사용하면 상대방도 한 걸음 물러서서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솔직함을 통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 감정, 나 자신을 주어로 한 말투. 책을 읽을 때는 별 것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실천하고자 하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나는 평소 눈치와 분위기를 많이 살피는 타입이라 타인에게 맞춰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내 감정을 먼저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꼭 필요한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p.173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영역 안에서의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너야말로 잘못 생각하는 거야"라고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면 반격을 당한다.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리스펙트란 말만 들어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거리두기를 통해 타인을 리스펙트할 것을 권유한다. 거리를 둠으로써 "음~그래, 그럴수도 있지"라고 유연한 태도를 갖출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리스펙트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많은 책들을 보았지만 정확한 실천방법이 있었던 책을 만난게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어린시절 부정을 많이 당해 스스로에 대한 자기긍정감이 부족했던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들이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자존감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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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게임 - '세대 프레임' 을 넘어서
전상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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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회학과 교수로, 이 책은 이 시대에서 "세대"가 어떻게 프레임을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책이다.





세대게임이라는 단어는 저자가 만든 단어로, 인종카드놀이(play the race card)에서 착안한 개념이라고 한다.

인종카드 게임이란 어떤 전략적 이점을 취하기 위해서 공적 토론에 인종이라는 주제를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 비슷한 의미로 저자는 사람들이 세대에 주목하도록 판을 짜서 어떤 전략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활동이나 움직임을 '세대 게임'으로 정의하였으며, 우리 사회에서 이미 자행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누가, 왜 세대게임을 만드는 것일까? 즉, 세대 게임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세대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논점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세대간의 갈등이 아닌 문제를 세대갈등처럼 보이도록 꾸며서 책임여부를 피할 수 있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탐욕스럽게 일자리를 나누지 않으려는 기성세대 때문에 고통받는 가난한 청년이라는 세대 프레임을 살펴보자. 사실 숙련된 경력자인 기성세대와 사회초년생인 청년세대는 담당하는 업무가 각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일명 '대기업'은 업무에 맞도록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로 골고루 고용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취업문제가 세대 게임으로 변형되면 대기업은 청년을 고용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 탐욕스런 기성세대에게 착취당하는 피해자의 탈을 쓸 수 있다.

박근헤 탄핵과 관련한 촛불집회와 그의 반대편에 섰던 태극기부대(저자는 이들을 촛불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맞불집회라고 칭했다)는 어떠할까?

사실 연령을 막론하고 박근혜의 탄핵에 대한 찬반여부는 8대 2정도로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뉴스를 보면 마치 촛불 집회의 규모와 맞불 집회의 규모가 5대 5로 비등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언론이 이렇게 촛불과 맞불의 규모를 비슷하게 몰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것을 세대갈등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법치주의에 의거하면 박근혜는 명백하게 법을 위반하였으며, 때문에 일명 박근혜 라인에게 더이상의 정치적 희망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세대 갈등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촛불집회를 20-30대 청년/자식 세대로, 그리고 맞불집회를 60-70대 기성/부모 세대로 프레임을 잡게되면 이것은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된다. 여기서 세대갈등의 특징이 하나 나타나는데, 여타 다양한 갈등들과는 달리 세대갈등은 결국에는 합의점을 찾거나 협의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청년세대는 언젠가 나이가 들어 기성세대가 될 것이고, 기성세대는 이전에 청년세대였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자식과 부모가 갈등을 계속 지속할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세대갈등의 특징에 기대게 되면, 박근혜 라인 및 현 여당은 다시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이렇듯 우리사회에는 이미 세대게임이 만연해 있고, 이 게임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세대 게임의 존재와 특징을 파악하고 이에 휘말리지 않는 냉정한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면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하게 된다. 도대체 맞불집회는 왜 생겨날까? 누가 보아도 박근혜는 국가의 부역자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등의 주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이러한 말도 안되는 주장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믿고 있었던 사실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본인의 결정을 바꿀 수 없다면 인간은 인지부조화로 인한 불편함을 없애려는 노력을 시도하게 된다. 바로 정보편식과 지지세력 확보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실을 보지 않고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보며, 이러한 정보를 지지하는 비슷하 사람들만 만남으로써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맞불집회 참여자들에게 박근혜는 단순한 대통령이 아니다. 내 젊음을 바쳐 나라 경제를 일으켜 세웠던 내 지난날의 흔적이며 증거이고, 어느새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린 내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보편식을 통해서라도 박근혜가 벌인 죄과를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 post-trust개념이 추가된다. 21세기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은 굉장히 다양하다. 언제든지 거짓정보를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팩트가 아니다. 내 감정과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거짓 진실"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저자는 현 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 세력을 만든 것이 바로 현 여당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노무현 신화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담당한 젊은이의 활약을 본 진보당들은 청년세대에게 집중한다. 이에 진보당을 지지했던 기성세대마저 소외감을 느낄 정도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논단 사태까지 터지고 만다. 야당을 지지하던 기성세대는 이제 여당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저자가 든 예시가 충격적이다.



p.263 이를테면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자행하며, 유럽의 주류 사회가 자국 내의 무슬림을 증오하고 혐오할 것이고, 애당초 극단주의에 거리를 두던 무슬림들도 그에 저항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자신들을 대변하는 유일한 세력인 극단주의에 의탁하게 된다.



사실 저자도 결국 이러한 맞불세력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정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세대 게임이라는 프레임을 알고 있다면 그들을 별종 취급하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파악하고 해석하고 설득해야할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변화를 맞이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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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이시다 이라 지음, 이은정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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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으로 받아본 책이다. 선택지가 있었기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수도 있었지만, 제목만 보고 어느정도 내용이 예상되어서 책을 골랐다. 그리고 이 책은 내용이 뻔하다고 생각한 내 자만함을 꾸짖어 준 책이 되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의 주인공은 마흔살의 남성 고헤이이다. 그는 4년전 불행한 사고로 아내를 잃고 초등학생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잘 안팔리는 작가'이다. 배경만 보면 별 내용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 고헤이는 작가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들을 챙기는 평범한 아빠의 모습, 넉넉치 못한 경제사정에 고민하는 평범한 서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평범한 속에서 굴러가는 고헤이의 생각과 마음들을 표현한 문장들이 좋아서 책을 손에서 놓기 싫어지는 매력이 있다.

고헤이는 안 팔리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친우들 중에는 잘나가는 작가도 있다. 생계고민과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회의감, 질투나 공허함 같은 감정까지, 현실적인 감정부터 작가라는 직업에서 느낄 수 있는 고민까지, 현실에 있을법한 고민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소설 속에서 고헤이는 뛰어난 관찰력을 갖추고 있으나 절제되고 담담한 문체가 특징인 소설가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서술 자체가 마치 고헤이 그 자체로 느껴졌다. 분명 고헤이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내고 있으면서 너무 격양되지도 않고, 너무 우울하지도 않은 적당한 담담함이 느껴지는 문체때문에 이 책이 마치 고헤이가 직접 쓴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또한 아내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익숙한 일본영화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 작가가 일본에서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참 좋을법한 이야기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이력을 살펴보니 원래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중간중간 마음을 확 찌르는 문장들이 눈에 띄곤했다.



p.296 소중한 사람을 잃은 충격을 주로 '무겁다'고 표현하지만 고헤이의 경우는 전혀 반대였다. 너무나 크고 심한 충격은 가볍다. 혼의 절반, 내장의 절반, 혈액과 근육의 절반이 갑자기 떨어져나가버려서 자신의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처럼 둥실둥실 가볍게 느껴진다.



p.344 흔한 위로의 말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의 본심을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고헤이는 그 흔하디흔한 말이 고마웠다. 소설을 쓰고 있으면 효과적인 대사와 드라마틱한 설정에만 신경이 간다. 하지만 이 세상은 흔한 감정과 당연한 말로 이루어져있다. 전하고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면 말의 형태따위는 뭐든 상관없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주로 책을 읽는 나는 보통 좋은 책을 발견하면 내려할 역이 가까워지면 책을 접어야하는 걸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다 읽는게 너무도 아쉬어서 내려할 역이 가까워진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내 방의 책장이 작아서 아주 마음에 드는 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중고서점에 파는데 이 책은 꼭 소장해두고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힐링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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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 네버랜드 클래식 18
마크 트웨인 지음, 도널드 매케이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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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설로 누구나 어린시절 한 번 쯤은 읽어보았을 법한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이다. 내가 어릴때에는 때마침 공중파 tv에서 만화로 방영하였기에 더욱 친숙하다. 그런데 오랜시간이 지나서인지 인상깊었던 장면들은 기억나는데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책장정리를 하다가 어린시절 보았던 책이 있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릴때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사회의 시대상이나 가치관이라고 해야할까? 지금은 아이를 너무너무 사랑하여 아동보호에 철저한 미국이거늘,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걸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아이의 인권을 무시하는 듯한 표현도 많이 보여서 충격적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이전에 읽었던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언급된 아동인권 신장에 대해 다시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톰 소여와 그 친구들이 너무도 '어린아이다웠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모험이야기이니 등장인물이 어린아이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작가는 이 소설을 쓸 당시 여러가지 풍파를 겪은 성인이었다는 점에 놀랐다. 어린시절 작은 일 하나로 떠들썩하고 즐거웠던 시간들, 보호자에게 혼이 난 뒤 서운함에 가출을 결심하고 보호자가 후회하는 미래를 상상하던 기억, 콩닥콩닥 곁에 있고 싶었던 어리고 풋풋한 첫사랑. 어느샌가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감성을 '어른'이 이렇게 완벽하게 묘사해냈다는 점이 너무 놀라웠다. 어린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이야기가 어른이 된 지금은 너무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너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머리말에서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주로 소년 소녀들을 위해 쓰여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이 이 책을 멀리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자신의 어리 시절이 어떠했으며, 그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했으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이상한 일에 정신 없이 몰두했는지를 다시 한 번 즐거운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썻기 때문이다.

어린시절에는 별 느낌 없이 넘겼던 이 머리말이 지금에는 너무도 마음에 와 닿는다. 톰 소여의 모험은 이 머리말에서 말하는 그대로이다. 우리가 어느새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너무도 생생하게 녹아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어른이 되어서 꼭 한 번은 다시 읽어보아야 하는 책이라는 말을 이제는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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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눈 침묵의 인사
칼렙 와일드 지음, 박준형 옮김 / 살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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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림출판사 서평단을 진행하면서, 출간 도서 중 읽고 싶은 책 1권을 신청하면 추가로 도서를 제공해준다는 말에 왠지 센치한 느낌의 이름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공교롭게도 책을 읽기 직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상을 치르고 나서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p. 죽음은 단순히 질척거리고 혼란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나의 가장 진솔한 면을 찾고, 더 강한 유대를 왕왕 찾아내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삶을 더 충만하게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죽음의 DNA 속에 눈부신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고통과 인내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고, 여기에서 성장의 스펙트럼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는 본업이 장의사이다.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사람이다.(저자 스스로도 이렇게 표현했다) 장의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접하면서, 그리고 죽음에 대응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죽음이 부정적인 것도, 두려운 것도, 나쁜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깨달음을 글로 표현해 낸 것이 이 책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가족의 죽음은 바로 할어버지의 부고였다. 암으로 고생하시다 요즘에는 젊다고 하는 60대의 나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비통한 울음소리로 가득했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참 아프고 힘들도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노령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이 생각이 바뀌게 되는 계기를 맞이했다. 할머니는 지병이 없이 90세가 넘도록 장수를 하시다 노령으로 돌아가셨는데, 부모님들도 '나름대로 호상이라면 호상이지'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할아버지 장례식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물론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거나 그래도 고통없이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죽음이 마냥 불행한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사람이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음이 다가온다. 영원한 생은 없다. 그럼 죽음을 받아들이는데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93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그 지인들이 직접 시신을 꾸며주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죽음의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다시 말해서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긍정적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죽음이 부정적인 문화로 형성되고, 계속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에는 장례 산업이 '가족들은 망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죽음은 무섭고, 복잡하고, 메슥거리고, 슬픈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대신 해드립니다'라고 인식시키기 떄문이다...P.104 간호사는 뒷문에서 고인이 있는 방까지 이동하면서 다른 환자의 방문이 열려 있으면, 그 방문을 꼭 닫는다. 모든 간호사들은 다른 환자들이 나와 내가 하는 일을 보지 못하도록 특정한 구역 안에 몰아놓는다. 우리는 닌자처럼 복도를 통과해서 요양원에서 누군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란다.



이번에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난생 처음 입관식에 들어갔다. 즉, 죽은 사람의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들어가기 전에는 굉장히 긴장했다. 그러나 할머니를 모신 곳으로 들어가 내가 본 장면들은 죽음에 대한 내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날리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와 헤어지기 전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면서 내 온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온기를 통해 할머니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빌어보았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죽음의 전문가'들이 모든것을 알아서 처리해주고 가족들은 그저 그들을 따라가면서 눈물만 흘린다. 그런데 내가 접한 장례식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장례전문가가 아니라 가족들이 더 깊게 참여하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장의사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고 직접 고인의 단장을 돕고, 고인의 시신과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나온다. 나 또한 죽음을 억지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장례의식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끊어내지 않고 죽음에 익숙해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내가 이상한 것일까라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아직은 친척 어르신들이 많이 건강하셔서 내가 접해본 친지의 죽음은 몇 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도 나이를 먹고 있고, 나이든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도 한다. 다음에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을때는 지금처럼 방황하지 않고 마음껏 애도하고 슬퍼하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이 리뷰는 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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