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게임 - '세대 프레임' 을 넘어서
전상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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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회학과 교수로, 이 책은 이 시대에서 "세대"가 어떻게 프레임을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자 하는 책이다.





세대게임이라는 단어는 저자가 만든 단어로, 인종카드놀이(play the race card)에서 착안한 개념이라고 한다.

인종카드 게임이란 어떤 전략적 이점을 취하기 위해서 공적 토론에 인종이라는 주제를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 비슷한 의미로 저자는 사람들이 세대에 주목하도록 판을 짜서 어떤 전략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활동이나 움직임을 '세대 게임'으로 정의하였으며, 우리 사회에서 이미 자행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누가, 왜 세대게임을 만드는 것일까? 즉, 세대 게임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세대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논점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세대간의 갈등이 아닌 문제를 세대갈등처럼 보이도록 꾸며서 책임여부를 피할 수 있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탐욕스럽게 일자리를 나누지 않으려는 기성세대 때문에 고통받는 가난한 청년이라는 세대 프레임을 살펴보자. 사실 숙련된 경력자인 기성세대와 사회초년생인 청년세대는 담당하는 업무가 각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일명 '대기업'은 업무에 맞도록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로 골고루 고용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취업문제가 세대 게임으로 변형되면 대기업은 청년을 고용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나 탐욕스런 기성세대에게 착취당하는 피해자의 탈을 쓸 수 있다.

박근헤 탄핵과 관련한 촛불집회와 그의 반대편에 섰던 태극기부대(저자는 이들을 촛불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맞불집회라고 칭했다)는 어떠할까?

사실 연령을 막론하고 박근혜의 탄핵에 대한 찬반여부는 8대 2정도로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뉴스를 보면 마치 촛불 집회의 규모와 맞불 집회의 규모가 5대 5로 비등하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언론이 이렇게 촛불과 맞불의 규모를 비슷하게 몰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것을 세대갈등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법치주의에 의거하면 박근혜는 명백하게 법을 위반하였으며, 때문에 일명 박근혜 라인에게 더이상의 정치적 희망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세대 갈등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촛불집회를 20-30대 청년/자식 세대로, 그리고 맞불집회를 60-70대 기성/부모 세대로 프레임을 잡게되면 이것은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된다. 여기서 세대갈등의 특징이 하나 나타나는데, 여타 다양한 갈등들과는 달리 세대갈등은 결국에는 합의점을 찾거나 협의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청년세대는 언젠가 나이가 들어 기성세대가 될 것이고, 기성세대는 이전에 청년세대였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자식과 부모가 갈등을 계속 지속할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세대갈등의 특징에 기대게 되면, 박근혜 라인 및 현 여당은 다시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이렇듯 우리사회에는 이미 세대게임이 만연해 있고, 이 게임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때문에 우리는 세대 게임의 존재와 특징을 파악하고 이에 휘말리지 않는 냉정한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면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하게 된다. 도대체 맞불집회는 왜 생겨날까? 누가 보아도 박근혜는 국가의 부역자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등의 주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이러한 말도 안되는 주장을 고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믿고 있었던 사실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본인의 결정을 바꿀 수 없다면 인간은 인지부조화로 인한 불편함을 없애려는 노력을 시도하게 된다. 바로 정보편식과 지지세력 확보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실을 보지 않고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보며, 이러한 정보를 지지하는 비슷하 사람들만 만남으로써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맞불집회 참여자들에게 박근혜는 단순한 대통령이 아니다. 내 젊음을 바쳐 나라 경제를 일으켜 세웠던 내 지난날의 흔적이며 증거이고, 어느새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린 내가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보편식을 통해서라도 박근혜가 벌인 죄과를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 post-trust개념이 추가된다. 21세기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은 굉장히 다양하다. 언제든지 거짓정보를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팩트가 아니다. 내 감정과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거짓 진실"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저자는 현 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 세력을 만든 것이 바로 현 여당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노무현 신화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담당한 젊은이의 활약을 본 진보당들은 청년세대에게 집중한다. 이에 진보당을 지지했던 기성세대마저 소외감을 느낄 정도가 되어버린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논단 사태까지 터지고 만다. 야당을 지지하던 기성세대는 이제 여당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저자가 든 예시가 충격적이다.



p.263 이를테면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자행하며, 유럽의 주류 사회가 자국 내의 무슬림을 증오하고 혐오할 것이고, 애당초 극단주의에 거리를 두던 무슬림들도 그에 저항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자신들을 대변하는 유일한 세력인 극단주의에 의탁하게 된다.



사실 저자도 결국 이러한 맞불세력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정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세대 게임이라는 프레임을 알고 있다면 그들을 별종 취급하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파악하고 해석하고 설득해야할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변화를 맞이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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