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이시다 이라 지음, 이은정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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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으로 받아본 책이다. 선택지가 있었기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수도 있었지만, 제목만 보고 어느정도 내용이 예상되어서 책을 골랐다. 그리고 이 책은 내용이 뻔하다고 생각한 내 자만함을 꾸짖어 준 책이 되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의 주인공은 마흔살의 남성 고헤이이다. 그는 4년전 불행한 사고로 아내를 잃고 초등학생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잘 안팔리는 작가'이다. 배경만 보면 별 내용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 고헤이는 작가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들을 챙기는 평범한 아빠의 모습, 넉넉치 못한 경제사정에 고민하는 평범한 서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평범한 속에서 굴러가는 고헤이의 생각과 마음들을 표현한 문장들이 좋아서 책을 손에서 놓기 싫어지는 매력이 있다.

고헤이는 안 팔리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친우들 중에는 잘나가는 작가도 있다. 생계고민과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회의감, 질투나 공허함 같은 감정까지, 현실적인 감정부터 작가라는 직업에서 느낄 수 있는 고민까지, 현실에 있을법한 고민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소설 속에서 고헤이는 뛰어난 관찰력을 갖추고 있으나 절제되고 담담한 문체가 특징인 소설가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서술 자체가 마치 고헤이 그 자체로 느껴졌다. 분명 고헤이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내고 있으면서 너무 격양되지도 않고, 너무 우울하지도 않은 적당한 담담함이 느껴지는 문체때문에 이 책이 마치 고헤이가 직접 쓴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또한 아내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익숙한 일본영화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 작가가 일본에서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참 좋을법한 이야기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이력을 살펴보니 원래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중간중간 마음을 확 찌르는 문장들이 눈에 띄곤했다.



p.296 소중한 사람을 잃은 충격을 주로 '무겁다'고 표현하지만 고헤이의 경우는 전혀 반대였다. 너무나 크고 심한 충격은 가볍다. 혼의 절반, 내장의 절반, 혈액과 근육의 절반이 갑자기 떨어져나가버려서 자신의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처럼 둥실둥실 가볍게 느껴진다.



p.344 흔한 위로의 말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의 본심을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고헤이는 그 흔하디흔한 말이 고마웠다. 소설을 쓰고 있으면 효과적인 대사와 드라마틱한 설정에만 신경이 간다. 하지만 이 세상은 흔한 감정과 당연한 말로 이루어져있다. 전하고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면 말의 형태따위는 뭐든 상관없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주로 책을 읽는 나는 보통 좋은 책을 발견하면 내려할 역이 가까워지면 책을 접어야하는 걸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다 읽는게 너무도 아쉬어서 내려할 역이 가까워진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내 방의 책장이 작아서 아주 마음에 드는 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중고서점에 파는데 이 책은 꼭 소장해두고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힐링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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