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눈 침묵의 인사
칼렙 와일드 지음, 박준형 옮김 / 살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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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림출판사 서평단을 진행하면서, 출간 도서 중 읽고 싶은 책 1권을 신청하면 추가로 도서를 제공해준다는 말에 왠지 센치한 느낌의 이름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공교롭게도 책을 읽기 직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상을 치르고 나서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p. 죽음은 단순히 질척거리고 혼란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나의 가장 진솔한 면을 찾고, 더 강한 유대를 왕왕 찾아내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삶을 더 충만하게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죽음의 DNA 속에 눈부신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고통과 인내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고, 여기에서 성장의 스펙트럼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는 본업이 장의사이다.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사람이다.(저자 스스로도 이렇게 표현했다) 장의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접하면서, 그리고 죽음에 대응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죽음이 부정적인 것도, 두려운 것도, 나쁜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깨달음을 글로 표현해 낸 것이 이 책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가족의 죽음은 바로 할어버지의 부고였다. 암으로 고생하시다 요즘에는 젊다고 하는 60대의 나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비통한 울음소리로 가득했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참 아프고 힘들도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노령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이 생각이 바뀌게 되는 계기를 맞이했다. 할머니는 지병이 없이 90세가 넘도록 장수를 하시다 노령으로 돌아가셨는데, 부모님들도 '나름대로 호상이라면 호상이지'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할아버지 장례식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물론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거나 그래도 고통없이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죽음이 마냥 불행한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사람이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음이 다가온다. 영원한 생은 없다. 그럼 죽음을 받아들이는데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93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그 지인들이 직접 시신을 꾸며주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죽음의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다시 말해서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긍정적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죽음이 부정적인 문화로 형성되고, 계속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에는 장례 산업이 '가족들은 망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죽음은 무섭고, 복잡하고, 메슥거리고, 슬픈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대신 해드립니다'라고 인식시키기 떄문이다...P.104 간호사는 뒷문에서 고인이 있는 방까지 이동하면서 다른 환자의 방문이 열려 있으면, 그 방문을 꼭 닫는다. 모든 간호사들은 다른 환자들이 나와 내가 하는 일을 보지 못하도록 특정한 구역 안에 몰아놓는다. 우리는 닌자처럼 복도를 통과해서 요양원에서 누군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란다.



이번에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난생 처음 입관식에 들어갔다. 즉, 죽은 사람의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들어가기 전에는 굉장히 긴장했다. 그러나 할머니를 모신 곳으로 들어가 내가 본 장면들은 죽음에 대한 내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날리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와 헤어지기 전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면서 내 온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온기를 통해 할머니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빌어보았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죽음의 전문가'들이 모든것을 알아서 처리해주고 가족들은 그저 그들을 따라가면서 눈물만 흘린다. 그런데 내가 접한 장례식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장례전문가가 아니라 가족들이 더 깊게 참여하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장의사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고 직접 고인의 단장을 돕고, 고인의 시신과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나온다. 나 또한 죽음을 억지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장례의식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끊어내지 않고 죽음에 익숙해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내가 이상한 것일까라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아직은 친척 어르신들이 많이 건강하셔서 내가 접해본 친지의 죽음은 몇 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도 나이를 먹고 있고, 나이든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도 한다. 다음에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을때는 지금처럼 방황하지 않고 마음껏 애도하고 슬퍼하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이 리뷰는 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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