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은둔자 - 완벽하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
마이클 핀클 지음, 손성화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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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스토리> 로 유명세를 탄 저널리스트 마이클 핀클의 책이며,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라 한다. 나는 원래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는 타입인데, 이 책은 제목을 보아도, 책 뒷편에 소개글을 보아도 줄거리 파악이 잘 되지 않아 그냥 무작정 읽기 시작한 책이다.

책은 '크리스토퍼 나이트'라는 한 남성에 대해 저자가 조사하고 직접 만나 경험한 일화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2013년 미국에서 한 절도범이 붙잡혔다. 놀랍게도 그는 27년간 사회를 떠나 숲 속에서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낡은 텐트와 직접 꾸민 은신처에 숨어 살며서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이 필요할때만 숲 주변의 민가에서 훔쳐서 삶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이 충격적인 이야기에 저자는 나이트에 대해 취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숲 속에 스스로 집을 지어 사는 나이트의 생활방식을 보고 우리나라 TV프로그램 자연인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빼놓고 보시는 프로그램이라 나도 옆에서 많이 본 적이 있는데, 자연인은 보통 일상의 삶에서 상처받고 지쳐서 인간사회를 떠나살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나이트 또한 인간관계나 사회에서 상처를 받아 숲속으로 도망간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취재를 하면서 알게된 것은 나이트는 20세의 나이에 별다른 사회적 문제가 없었는데도 어느날 사회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이트가 사회를 떠나게 된 이유를 추적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나이트의 가족에 대해서 조사하기도 했다. 저자는 여러가지 가설을 제시하지만, 나이트는 스스로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에 어떤 이유가 그를 숲속으로 데려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저 어느날 스스로를 지워야만 하는 욕구를 가진 그의 모습에서 나의 비슷한 점이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딱히 교우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학생은 아니다. 그냥 조금 소극적인, 그러나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의 가족에 대해서 마을 주민들은 낯을 많이 가리고, 자립심과 독립성을 중요시 하는 품성을 지녔다는 특징이 있지만 역시나 평범한 가정이었다고 평가한다.
여기서 내 학창시절의 모습을 한 번 떠올려보았다. 어린 시절 나는 낯선 사람에게 단 한마디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낯을 가리며, 주목받는걸 무척 싫어하는 소심한 아이였다.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낯을 가려도 시간이 흐르면 타인과 충분히 친해질 수 있는 평범한 아이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는 어린시절부터 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함으로써 타인을 대하는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속의 고독속에서 진정한 평온함을 찾았다는 나이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트의 은신처에서 밤을 보낸 저자는 밤의 숲이 가져오는 "아무것도 없는" 고요와 어둠을 직접 경험하며 나이트가 27년을 겪어온 자연 속 삶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자연인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어둠의 평온을 추구하는 점에서 나이트와 비슷한 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절도 현행범으로 붙잡힌 나이트는 오랜세월 자신을 감싸준 숲 속에서 나와 지금은 다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변사람들은 그가 빠르게 사회에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저자를 통해 나이트의 삶을 들여다 본 독자의 입장에서는 나이트가 다시 사회 속에서 메말라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숲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놀이거리도 없고, 구경하기에도 언제나 같은 풍경뿐이다. 밤이 오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어둠이 찾아온다. 나이트는 그 고독속에서 오로지 생존만을 생각하며 27년을 보냈다. 복잡한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청년 중 하나인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책을 읽다 사색을 하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쉬고 싶다고. 바쁘게 돌아가는 챗바퀴 같은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일을 한다. 쉬는 것을 모르는 젊은이들도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어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라도 나누어야 한다. 만날 사람이 없으면 취미라도 즐겨야 한다. 오로지 생존에만 충실하고 그 외엔 자연의 일부로 파묻혀 스스로를 바라보기만 했던 나이트의 삶.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는 나이트처럼은 살 수 없다. 그러나 그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고독을 즐기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것도 솔직한 내 마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적인 삶'에 대해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어던 책이다.

(이 리뷰는 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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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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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마지막 작품, 그리스인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 3권이다.
사실 로마제국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많아서 어릴적부터 쉽게 접했다. 반면 그리스의 의야기는 "그리스와 로마"라는 단어로 묶어 부르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민주주의 정도로 기본적이 것만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인 이야기를 보고 신기함과 호기심을 감출 수 가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상태에서 서평단을 통해 접하게 된 책이라 1, 2권은 보지 못하고 3권을 먼제 읽게 되었는데, 읽을수록 1, 2권을 구매해야겠다는 결심이 커졌다.

방대한 역사이야기란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데, 역시나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술술 읽힌다.
앞서 말했듯이 로마에 대해 다룬 책은 많지만 그리스에 대해 다룬 책은 그리스신화를 제외하고는 처음 접해보았다. 사실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그리스인 만큼 다양한 국가들이 있었을텐데, 나는 왜 아테네와 스파르타 외에 다른 나라가 있을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정도로 그리스인 이야기에 등장한 다양한 도시국가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매력적이었다.

책은 시리즈의 마지막인 만큼, 그리스의 중추국가였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쇠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특히나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스파르타에 대한 작가의 사견이었다. 보통 그리스에 대해 배울때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대표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나는 스파르타 또한 중추역할을 맡을만한 자질이 있는 나라였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저자의 의견은 이와 정 반대되는 의견이다. 스파르타는 문화적으로도 아테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뒤쳐진 나라였으며, 무력을 숭상하는 나라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국가였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나, 저자는 찬란한 문화와 사회적 제도를 꽃피운 아테네와 비교하면 스파르타는 야만적인 국가라고 여기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주도권을 잡은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저자는 스파르타를 미워하는 것 같았달까. 아무래도 그녀는 문화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던 아테네를 굉장히 선호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 스파르타를 몰아부쳤던 테베에 대해서는, 스파르타만큼은 아니지만 중소국가의 한계 때문에 그리스에 변화를 가져올 큰 희망이 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아테네가 그리스의 주도권을 빼앗긴 뒤 혼란한 그리스 상황들을 이야기 한 후, 그녀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리스 역사에 대한 기초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국가들 중 부당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던 것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 필리포스와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거쳐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찬란한 전성기를 꽃피우게 된다. 500페이지 중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300페이지가 넘어보이는 것이 그녀가 마케도니아의 행보에 얼마나 감동했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중소국가들 사이에서 계속된 전쟁으로 더 진보하지 못했던 그리스가 결국 페르시아 원정까지 성공했던 장대한 이야기가 그녀 특유의 흡입력을 발휘하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저자의 사적인 의견이 듬뿍 담긴 역사에세이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제왕"의 이야기에 많은 힘이 실린 것도 사실이고, 그녀의 역사관이 많이 담겨있는 만큼 기존 역사가들과는 다른 해석도 많다. 하지만 그리스의 역사를 이 정도로 상세하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은 여지껏 없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그녀의 이야기를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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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 실은 조금도 괜찮지 않은 나를 위해
엔도 슈사쿠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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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라는 이름은 '만년 노벨상 후보'라는 수식어로 들어본적이 있으나, 실제로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노벨상 후보로 거듭 반복되었다면 그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은 조금도 괜찮지 않은 나를 위해' 라는 부제가 끌려서 서평을 신청하게 되었다.

이런 장르의 책은 내용이 뻔하다거나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쓴 책이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서문이 눈에 띄었다.

p.6 살아온 세월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터득하게 된, 여러분보다 좀 더 연륜이 많은 인생 선배의 이야기가 지금 당신이 마주한 나약함의 고통을 줄어주고 좀 더 평안한 삶을 누리는 데 인생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의 연륜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 더 쉽게 얻고, 더 나을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은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다,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다, 나를 사랑하는 법 3가지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챕터에서는 내가 외면했던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p.27 이렇듯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저절로 가면을 쓰게 된다. 정신의학자 융은 이것을 가리켜 '페르소나'라고 말했다. 가면을 쓴 모습만이 자신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자아는 다른 곳에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회에서 내가 가면을 쓰고 살고 있으며, 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계속 고민을 해왔다. 그런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게 당연하다고 단언하는 말을 들으니,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하게 되었다.

p.65 날마다 똑같은 틀에 박힌 생활이지만, 조금만 궁리를 해보면 그 속에 작은 숨구멍을 내서 바람을 불어넣는 일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놀이를 찾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는게 좋다. 자신의 취미에 맞는 놀이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연극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좋다. 결론은, 정신을 바짝 가다듬고 당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보내는 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항상 일-집-일-집이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보면 한번쯤 취미생활을 찾아볼까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야근을 하게 된다는 핑계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핑계로, 그 시간에 차라리 자기개발을 해야한다는 강박감으로 인해 꾸준히 취미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독서를 취미로 삼고 있지만, 가끔식 좀 더 내 커리어개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야 하는게 아닌가? 단순히 재미로만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저자는 취미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작가 활동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마추어 극단이다. 극단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똑같이 연기에 몰입한다. 일년에 몇 번 없는 축제를 기다리때 느껴지는 설레임을 매번 극단 모임이 있을때마다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설레고 충실하게 바뀔 것인가?
나 또한 가끔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때면 책을 읽기 위해 퇴근시간만 기다리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스릴 때가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직업과는 다른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취미에 몰두할 것. 앞으로는 취미생활에 핑계나 죄책감은 필요없을 것이다.

두번째 챕터는 나를 이해함으로써 나를 좋아하기 위한 물꼬를 트는 이야기이다.

p.71 대인관계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어떤 부분에서 자신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대인관계가 참 어려웠다.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라 짖궂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했고, 내 행동이 보편적으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 아니라는 불안감에 대인관계에서 언제나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자의 말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더니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과 거침없는 말투에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와 반대되는 내 소심한 성격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열등감 때문에 내 말은 그다지 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거나, 내 행동이 호감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암감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열등감을 나만의 매력으로 바꾸어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한다.
사투리가 열등감인 사람은 누구보다 눈에 띄는 특징으로써 사투리를 갈고 닦는다거나, 말주변이 없는 것이 열등감인 사람은 잘 듣는 경청의 자세를 갈고 닦는 것이다.
농담을 잘 하지 못하는 내 대화형식은 누구보다도 진실된 말만을 한다는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은 뛰어난 관찰을 통해 세심한 배려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p.96 자기혐오라는 것은 결국 자기분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떤 점이 싫은지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되는 것이다.

흔히 자기혐오는 부정적인 것이며, 자존감에 좋을게 없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저자는 반대로 자기혐오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계기가 되며, 이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 챕터는 결국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p.139 웃음이란 자신만의 고독에서 빠져나와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스스로 어릴때 부터 웃음과 유머를 무의식 중에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웃음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한다.
상대를 향해 짓는 미소는 상대에 대한 열린 마음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며, 가장 온화하고 효율적인 소통방식이라고 한다.
나는 초면인 사람에게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처음에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미소였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할때는 꼭 눈을 맞추고 생글생글 미소를 짓는다.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인데, 한시간 쯤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미소를 유지한다. 내가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손쉽게 친해지는 사람은 될 수 없지만, 밝은 미소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을 좀 더 수월하게 이어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p.144 많은 사람들이 질투심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내리는데, 나는 이것을 '자존심이 짓밟혀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질투심이란 참 골치아픈 감정 중 하나이다. 질투는 질투대상이 되는 상대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 정도가 강하고 기간이 길수록 스스로의 자좀감도 무너뜨리는 위험한 감정이다. 나 또한 질투심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저자의 말을 통해 질투심을 다루는 한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내 자존심이 짓밟히는 기준선, 즉 내 역린을 파악해야 질투라는 감정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정확한 방안을 떠올리지는 못했으나 이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키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질투심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 또한 알 수 있지 않을까?


p.159 어디까지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게 좋다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화를 내지 않으면 된다. 가장 나쁜 결말이 화를 낼 땐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햇는데, 나중에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되도록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의 성격에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대인관계나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에 공통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본인의 감정에 충실할 것, 화가 날 때 화를 낼 것. 그런데 나는 몇 번을 노력해도 이것이 힘들었다. 내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서로 얼굴을 붉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있고, 어디까지 화를 내야 관계를 망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화를 내고 '아, 화내지 말걸' 후회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럴때마다 화도 내지 못하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 속상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저자가 화를 내는게 성격에 맞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자존감 높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한 여러가지 책들을 읽어왔다. 읽다보면 다른 이야기 같지만 결국 기본적인 주장은 동일하다. 우선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할 것.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것. 그럼으로써 결국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될 것.
이 책도 이러한 기본적인 주장을 똑같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 다른 책들과 다른점이라면 연륜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 찾아보니 안타깝게도 이미 96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앞으로 새로운 책을 접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의 생전 작품들을 천천히 읽고 싶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이 리뷰는 북스토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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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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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괜찮게 읽어서 다른 책을 읽어보았다.
제목 그대로 판사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점들을 판사 커뮤니티에 개제했던 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때문에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읽은 내용이 겹치기도 한다.

개인주의라는 한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던 개인주의사 선언과 달리, 판사유감은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일정한 주제를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판사로서 느끼는 법과 법원, 판사와 사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숨김없이 드러난 책이라 생각한다.

p.50 법원에서는 주로 잘못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거나, 누구보고 누구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거나, 남의 집을 팔아 빚을 받아주거나 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개인파산, 개인회생사건 한건 한건은 한 사람을, 한 가정을, 한 아이를 되살리는 일입니다. 파산부는 회생부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 중 인상깊었던 부분은 "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저자의 시야가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나는 법률이란 "죄"를 단죄하고 범죄자를 사회와 분리하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파산부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법이 단순히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처벌만 하는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하며,  특히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를 준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법의 순기능이라서 굉장히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또한 지성과 반지성에 대한 저자의 말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지성이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해왔다. 그러나 판사가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상, 그는 언제나 모든 지식과 사실관계와 인과관계를 명확하고 뿌리깊게 파악해야 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지성을 내가 뿌리부터 현재까지 완벽하게 아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동안 나는 내가 지성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기준에 의하면 과연 내가 제대로 알고있는 지식은 어떤게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도대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저자가 던진 의문들 뿐 아니라, 이 책에는 아직 30대 젊은 청년판사의 열혈적인 면모도 볼 수 있었으며, 권위주의적인 법원 관행에 대한 의문제기도 담겨있다. 나에게 판사는 권위주의적이고, 전형적인 기득권 층으로만 느껴졌는데 사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시행착오를 거치고 열정을 가진 청년시절이 있었으며, 공정한 판결을 위해 야근을 거듭하는 열정적인 직원 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판사라는 직업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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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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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동 학대부터 시작해 가족주의가 만연한 우리나라의 현실, 우리와는 다른 스웨덴 상황과의 비교, 가족의 형태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기자출신으로 현재는 세이브드칠드런에서 아동 인권 보호에 힘쓰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첫장은 아동 학대 방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의 체벌은 금지하고 있으나, 가정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잊을만하면 아동학대로 숨지는 아동들의 뉴스를 접할 수 있으니, 실제 사망하지 않고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학대 피해아동들은 훨씬 많을 것이다.
저자는 학대 근절을 위한 전면적인 체벌금지를 주장한다. 가정 내에서의 체벌을 금지한다고 법적으로 명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체벌 금지에 대한 주장이 대두되면 어느 나라나 반대되는 입장에서 내세우는 공통적인 감성이 있는데, 바로 '사랑의 매'이다. 사랑의 매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감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전세계 곳곳에 만연한 감성이라고 하며, 바로 이것이 체벌의 큰 위험성 중 하나라고 한다. 폭력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위험성.
저자가 아동 인권 보호 및 아동학대 근절의 실례로 스웨덴을 제시하는데, 스웨덴에서 전면적 체벌금지 조항이 생기게 된 일화 중 하나가 굉장히 충격적이다(참고로 스웨덴은 아동체벌 금지를 세계최초로 법률화한 나라라고 한다)
한 어머니가 아이를 꾸중하기 위해 회초리로 쓸 나무막대를 찾아오라 하였는데, 아이가 울면서 들고온 것은 돌이었다. 아이는 돌을 엄마에게 건네며 회초리로 쓸만한 막대를 찾지 못했으니 이 돌을 자신에게 던지라 했다고 한다. 회초리가 훈육이 아니라 폭력이었고, 어차피 폭력을 가하는 일이라면 돌을 던지는 것이나 회초리를 맞는 것이나 아이에게는 다를바가 없었던 것이다. 나 또한 체별이 완전히 금지되면 통제 불가한 아이의 훈육은 어쩌지 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는데 이 일화를 보고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이 어린 아이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아도 체벌은 반성과 죄책감보다는 공포,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을 주로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실제로 체벌이 금지된 이후로 스웨덴의 아동학대는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현재는 가정내 학대로 인한 아동의 사망건수가 0으로 수렴한다고 하니, 학대와 체벌이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어진다.

또한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는 접해본 적 없는 개념을 접할 수 있다.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부모 혹은 어른에게 '귀속'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개별 개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아동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아동을 보호하는 조치인데 부모라는 보호자의 개념이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가 제시한 비유가 기가 막히다.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내를 보호할 때, 아내가 한 명의 독립된 개체로써 폭력이라는 부당한 힘에 노출되지 않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지, 아내가 남편에게 혹은 가족에게 종속된 존재이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동폭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동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는 부모에게 종속 혹은 귀속되어 보호받아야할 존재라서가 아니라, 한 명의 개체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성년의 아이란 무릇 부모나 성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고정관념을 흔드는 동시에, 당연한 전제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이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개인으로서 독립된 주체라고 인정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나라의 가족주의에 대해서도 분석하였는데, 최근 몇 년간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라 관심이 더 갔던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최우선으로 지향하면서, 그에 따르는 책임을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전가했기 때문에 가족주의가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집에 거동이 불편하고 간호가 필요한 환자가 발생한 경우를 상상해보자. 가족들이 번갈아가면서 병구환을 하고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가족구성원이 독립된 개체로 가족으로부터 자립하기 위해서 국가는 이를 적극 보조해야할 의무가 있다. 흔히 말하는 국가의 복지 측면인데, 복지가 잘 갖추어진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가족에 구애받지 않고 자립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사회복지가 잘 갖추어지지 못한 나라에서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가족이 떠안아야하기 때문에 개인은 가족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가족주의적 성향이 나아가 나와는 다른집단인 외집단에 대한 배척과 혐오라는 현상으로 발전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은 독립된 주체로서 가족에게 종속되지 않고 홀로 바로서야 하며,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는 공공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국가가 단순히 가치관을 전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조치를 적극 취함으로써 이를 보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쉽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살면서 한번 쯤 고민해보아야 하는 문제들을 잘 집어낸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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