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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괜찮게 읽어서 다른 책을
읽어보았다.
제목 그대로 판사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점들을 판사 커뮤니티에
개제했던 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때문에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읽은 내용이 겹치기도 한다.
개인주의라는 한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던 개인주의사 선언과 달리, 판사유감은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일정한 주제를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판사로서 느끼는 법과 법원, 판사와 사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숨김없이 드러난 책이라 생각한다.
p.50
법원에서는 주로 잘못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거나, 누구보고 누구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거나, 남의 집을 팔아 빚을 받아주거나 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개인파산, 개인회생사건 한건 한건은 한 사람을, 한 가정을, 한 아이를 되살리는 일입니다. 파산부는 회생부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 중 인상깊었던 부분은
"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저자의 시야가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나는 법률이란 "죄"를 단죄하고 범죄자를 사회와 분리하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파산부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법이 단순히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처벌만 하는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이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하며, 특히나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를 준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법의 순기능이라서 굉장히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또한 지성과 반지성에 대한 저자의 말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지성이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해왔다. 그러나 판사가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상, 그는 언제나 모든 지식과 사실관계와 인과관계를
명확하고 뿌리깊게 파악해야 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지성을 내가 뿌리부터 현재까지 완벽하게 아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동안 나는 내가 지성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기준에 의하면 과연 내가 제대로 알고있는 지식은 어떤게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도대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저자가 던진 의문들 뿐 아니라, 이 책에는 아직 30대 젊은 청년판사의 열혈적인 면모도 볼 수
있었으며, 권위주의적인 법원 관행에 대한 의문제기도 담겨있다. 나에게 판사는 권위주의적이고, 전형적인 기득권 층으로만 느껴졌는데 사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시행착오를 거치고 열정을 가진 청년시절이 있었으며, 공정한 판결을 위해 야근을 거듭하는 열정적인 직원 중 한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판사라는 직업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