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이시다 이라 지음, 이은정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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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으로 받아본 책이다. 선택지가 있었기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수도 있었지만, 제목만 보고 어느정도 내용이 예상되어서 책을 골랐다. 그리고 이 책은 내용이 뻔하다고 생각한 내 자만함을 꾸짖어 준 책이 되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의 주인공은 마흔살의 남성 고헤이이다. 그는 4년전 불행한 사고로 아내를 잃고 초등학생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잘 안팔리는 작가'이다. 배경만 보면 별 내용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 고헤이는 작가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들을 챙기는 평범한 아빠의 모습, 넉넉치 못한 경제사정에 고민하는 평범한 서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평범한 속에서 굴러가는 고헤이의 생각과 마음들을 표현한 문장들이 좋아서 책을 손에서 놓기 싫어지는 매력이 있다.

고헤이는 안 팔리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친우들 중에는 잘나가는 작가도 있다. 생계고민과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회의감, 질투나 공허함 같은 감정까지, 현실적인 감정부터 작가라는 직업에서 느낄 수 있는 고민까지, 현실에 있을법한 고민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소설 속에서 고헤이는 뛰어난 관찰력을 갖추고 있으나 절제되고 담담한 문체가 특징인 소설가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서술 자체가 마치 고헤이 그 자체로 느껴졌다. 분명 고헤이의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내고 있으면서 너무 격양되지도 않고, 너무 우울하지도 않은 적당한 담담함이 느껴지는 문체때문에 이 책이 마치 고헤이가 직접 쓴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또한 아내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익숙한 일본영화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 작가가 일본에서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참 좋을법한 이야기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이력을 살펴보니 원래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중간중간 마음을 확 찌르는 문장들이 눈에 띄곤했다.



p.296 소중한 사람을 잃은 충격을 주로 '무겁다'고 표현하지만 고헤이의 경우는 전혀 반대였다. 너무나 크고 심한 충격은 가볍다. 혼의 절반, 내장의 절반, 혈액과 근육의 절반이 갑자기 떨어져나가버려서 자신의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처럼 둥실둥실 가볍게 느껴진다.



p.344 흔한 위로의 말일지도 모른다. 죽은 자의 본심을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고헤이는 그 흔하디흔한 말이 고마웠다. 소설을 쓰고 있으면 효과적인 대사와 드라마틱한 설정에만 신경이 간다. 하지만 이 세상은 흔한 감정과 당연한 말로 이루어져있다. 전하고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면 말의 형태따위는 뭐든 상관없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주로 책을 읽는 나는 보통 좋은 책을 발견하면 내려할 역이 가까워지면 책을 접어야하는 걸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다 읽는게 너무도 아쉬어서 내려할 역이 가까워진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내 방의 책장이 작아서 아주 마음에 드는 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중고서점에 파는데 이 책은 꼭 소장해두고서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었다.

힐링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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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눈 침묵의 인사
칼렙 와일드 지음, 박준형 옮김 / 살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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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림출판사 서평단을 진행하면서, 출간 도서 중 읽고 싶은 책 1권을 신청하면 추가로 도서를 제공해준다는 말에 왠지 센치한 느낌의 이름을 보고 선택한 책이다. 공교롭게도 책을 읽기 직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상을 치르고 나서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p. 죽음은 단순히 질척거리고 혼란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죽음에서 나의 가장 진솔한 면을 찾고, 더 강한 유대를 왕왕 찾아내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삶을 더 충만하게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죽음의 DNA 속에 눈부신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고통과 인내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고, 여기에서 성장의 스펙트럼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는 본업이 장의사이다.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사람이다.(저자 스스로도 이렇게 표현했다) 장의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접하면서, 그리고 죽음에 대응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죽음이 부정적인 것도, 두려운 것도, 나쁜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깨달음을 글로 표현해 낸 것이 이 책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가족의 죽음은 바로 할어버지의 부고였다. 암으로 고생하시다 요즘에는 젊다고 하는 60대의 나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비통한 울음소리로 가득했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참 아프고 힘들도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노령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이 생각이 바뀌게 되는 계기를 맞이했다. 할머니는 지병이 없이 90세가 넘도록 장수를 하시다 노령으로 돌아가셨는데, 부모님들도 '나름대로 호상이라면 호상이지'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할아버지 장례식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물론 슬퍼하고 애도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새기거나 그래도 고통없이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죽음이 마냥 불행한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사람이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음이 다가온다. 영원한 생은 없다. 그럼 죽음을 받아들이는데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93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그 지인들이 직접 시신을 꾸며주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죽음의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다시 말해서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긍정적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죽음이 부정적인 문화로 형성되고, 계속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에는 장례 산업이 '가족들은 망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죽음은 무섭고, 복잡하고, 메슥거리고, 슬픈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대신 해드립니다'라고 인식시키기 떄문이다...P.104 간호사는 뒷문에서 고인이 있는 방까지 이동하면서 다른 환자의 방문이 열려 있으면, 그 방문을 꼭 닫는다. 모든 간호사들은 다른 환자들이 나와 내가 하는 일을 보지 못하도록 특정한 구역 안에 몰아놓는다. 우리는 닌자처럼 복도를 통과해서 요양원에서 누군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란다.



이번에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난생 처음 입관식에 들어갔다. 즉, 죽은 사람의 모습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들어가기 전에는 굉장히 긴장했다. 그러나 할머니를 모신 곳으로 들어가 내가 본 장면들은 죽음에 대한 내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날리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와 헤어지기 전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리면서 내 온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온기를 통해 할머니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빌어보았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죽음의 전문가'들이 모든것을 알아서 처리해주고 가족들은 그저 그들을 따라가면서 눈물만 흘린다. 그런데 내가 접한 장례식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장례전문가가 아니라 가족들이 더 깊게 참여하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장의사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고 직접 고인의 단장을 돕고, 고인의 시신과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나온다. 나 또한 죽음을 억지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장례의식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끊어내지 않고 죽음에 익숙해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내가 이상한 것일까라는 불안함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아직은 친척 어르신들이 많이 건강하셔서 내가 접해본 친지의 죽음은 몇 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도 나이를 먹고 있고, 나이든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도 한다. 다음에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을때는 지금처럼 방황하지 않고 마음껏 애도하고 슬퍼하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


(이 리뷰는 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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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커피 - 음악, 커피를 블렌딩하다
조희창 지음 / 살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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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음악평론가로, 지금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이다. 카페운영자이자 음악평론가로서, 커피와 음악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써야하지 않겠냐는 아내의 추천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평소 흔히 접하는 에세이 보다는 잡지에서 볼 법한 칼럼 느낌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월간 <맑은소리 맑은나라>에 2년간 연재한 글을 묶어낸 책이라고 한다. 때문에 읽으면서 일반적인 에세이보다는 정보전달의 성격이 느껴지는 글이다.

 

저자는 커피와 추천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하여 하나의 글을 써 나간다. 나는 사실 클래식에 대해 거의 모르기 때문에 과연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줌으로써 흥미를 돋궈준다.

 

 

또한 하나의 글을 끝나면 글에서 소개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 QR코드가 나온다는 점에서 여타 책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진정 음악 책이라고나 할까?

이 QR코드를 보면서 언젠가 냄새를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저자가 소개하는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장치가 책에 들어있다면 오감으로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에세이이기 때문에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기는 힘들고, 읽으면서 내가 감명받았던 문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P.22 '따로'가 없는 '같이'는 전체주의가 되고, '같이'가 없는 '따로'는 독선으로 망한다.

 

독선과 전체주의에 대해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문장은 처음 접해본다. 다양한 미사여구들로 가득 찬 설명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한 문장이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따로 때문에 생기는 독선은 경계하면서 따로를 무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전체주의는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떠한 일이든 조화가 중요하다. 오로지 혼자도 아니고 무조건 함께도 아닌 적당한 조화가 중요하다.

 

P.60 인간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는데, 그 가운데 '호모 나란스'가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먹고 산다. 더 이상 이야기를 듣기도 싫고 이야기를 하기도 싫어지는 상태가 된다면, 그것은 바로 '절대 고독'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물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제공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함께 있음에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같이 마주보고 않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경우가 참 많다.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되도록 핸드폰을 보지 않으려하는 나로써는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주변인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일까, 나는 수다스러운 책이 너무 좋고, 달변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

P.96 과거 기자 시절에 뉴욕에서 '미국 바이올린계의 대모'로 불리는 도로시 딜레이를 인터뷰한 적 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좋은 연주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딜레이가 짧고도 단호하게 대답해주었다. "좋은 연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해요. 첫째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어야하고, 둘째는 그 점을 청중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면서 이처럼 명확하면서도 폭넓게 적용되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

 

명쾌한 딜레이의 답변에 감탄한 저자처럼, 나도 그녀의 대답을 읽고 탄성을 내질렀다. 음악 뿐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해서 내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때문에 지금도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스스로 확신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는데, 내가 동경해왔던 인물들이 바로 딜레이가 말한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동경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그동안 많이 고민해왔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다. 바로 '나만의 해석'과 '타인의 설득할 수 있을만한 근거와 자신감'이다.

 

P.173 좋은 친구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이에 대해 카페라테 식으로 패러디해본다. 일단 1) 신서한 원두로 잘 내린 에스프레소와 좋은 우유가 필요하다. 두 사람의 기본 자질이 좋아야하기 때문이다. 2) 적절한 온도를 지켜야 한다. 카페라테에 들어가는 우유의 온도는 70도 정도가 좋다. 너무 뜨거우면 우유의 단백질 결합이 깨져 맛이 없고, 너무 낮으면 밍밍한 관계가 된다. 사람 관계도 비슷하다. 그리고 3) 약간의 설탕과 약간의 소금이 맛을 더해준다. 모름지기 인생이란 달고 짠맛을 ㅇ같이 겪어줘야 내공의 깊이가 생기는 법이다.

 

좋은 친구관계에 대해 익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저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문단이다. 이렇듯 남들과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글솜씨가 매력적이다. 나도 꼭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만드는 문단이었다.

 

 

 

(이 리뷰는 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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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수 있는 배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윤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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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의 저자 무라타 사야카의 신작이다.
편의점 인간도 무척이나 특이한 성향의 주인공이 나왔는데, <멀리 갈 수 있는 배> 또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리호, 치카코, 츠바키 3명의 여성이고, 리호와 치카코가 주요 화자로 번갈아 나온다.

리호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만 19세의 여성이다. 세 명의 중심인물 중 가장 어린 나이인 그녀는 남자들에게는 "여자가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털털한 성격이다. 하지만 털털하고 쿨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 안에는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그녀는 그동안 사귄 남자친구와의 성관계에서 제대로 된 교감을 느끼지 못해 본인의 성 정체성이 일반적인 여성과 다른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하지만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거부감을 느껴 더욱 혼란에 빠진 사이, 치카코와 츠바키라는 성인 여성 2명과 만나게 되면서 더욱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츠바키는 세 인물 중 가장 여성성이 강한 인물이다. 뛰어난 외모를 가졌으며, 본인도 그것을 어릴때부터 자각해왔고, 그 미모를 지키기 위해 햇빛이 없는 한밤 중에도 선크림을 챙겨바를 정도로 "여성성"에 대한 강박감이 가장 심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성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리호과 가장 크게 부딪친다. 리호와는 가장 반대되는 성향에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치카코는 나머지 두 명과는 다른 관점에서 특이한 인물이다. 성 정체성과 관련하여 대립하는 리호, 츠바키와 달리, 치카코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고민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치카코는 스스로가 지구라는 커다란 별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이 아등바등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저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어차피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갈 뿐인데..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인간의 삶을 소꿉놀이처럼 느낀다. 마치 진짜가 아닌 연기라도 하듯이 멀게 느끼기 때문에, 사랑마저 그녀에게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누구보다 여성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츠바키와 자신만의 성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호를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호기심을 이끈다.

<편의점 인간>과 <멀리 갈 수 있는 배>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여러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번째는, '평범'하지 못한 인물들의 속 사정이다. 편의점 인간에서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이 등장했다면, 멀리 갈 수 있는 배에서는 남들과는 다른 정체성에 고민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두번째는, 모든 인물들이 사회의 일부분에 속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무리'에서 눈의 띄는 존재였다. 그래서 사회라는 무리 속에 녹아들기 위해 메뉴얼대로의 삶을 살고자 한다. 멀리 갈 수 있는 배의 리호는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평범해보인다. 그러나 실상 그녀는 사회속에 녹아들고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사회속에 녹아드려는 시도를 해보지만 실패한다. 츠바키는 당연히 누구보다 사회속에 녹아들기위해 애쓰는 인물이며, 리호는 왜 자신이 사회속에 녹아들 수 있는 평범한 성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것인지 괴로워한다.

사회속에 녹아들고 모난 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 저자의 책은 편의점 인간과 멀리 갈 수 있는 배, 2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녀가 작가로서 글을 쓰며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타인의 눈치를 보며 폐를 끼치지 말아야하고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평범해야 하고) 여성스러움이나 남성스러움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가 있는 일본사회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문제를 글로 풀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그녀가 써내려 갈 다른 이야기는 어떤 것이지 궁금해졌다.

P.S. 책의 마지막에 해설이 나오는데, 책에 대해 본인의 감상을 다 소화할때까지 해설을 읽지 않는걸 추천한다. 너무 개인적인 사견이 많이 담긴 해설이라 자유로운 감상을 망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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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
존 벨레어스 지음, 공민희 옮김 / 살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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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관에 갔다가, 영화 개봉예정 리스트 중에 잭 블랙이 나오는 판타지 영화 포스터를 보았다. 잭 블랙이 나오는 영화라 기억에 남았는데, 우연히도 살림출판사 서평을 통해 그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게 되었다.

주인공 루이스는 갑작스레 사고로 부모님을 잃게 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삼촌과 함께 살게 된다. 삼촌과 삼촌의 이웃이자 친구인 짐머만 부인과 함께 포커를 치며 즐거운 첫 날을 보낸 루이스는 삼촌과 부인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그러나 두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과는 상관없이, 루이스는 두 사람이 평범함 사람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을 살피게 되고, 마법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마법사에 대해 알게 된 루이스가 새로운 도시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화들이 초중반에 나오는데, 초등학생다운 고민과 허세가 귀엽게 느껴진다.
결국 친구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루이스는 손을 대면 안되는 죽은자를 살리는 마법을 실행하게 되고, 아이작 부인이 되살아나 세상의 평화를 위협한다. 악당 아이작 부인의 흉괴를 저지하기 위해 벽 속에 숨은 시계를 추척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개요는 전형적인 아동 판타지소설의 궤도를 따르고 있다. 불행한 가족사를 겪고 특이한 가족과 살게되는 주인공, 새로운 가족과 친구의 수상쩍은 행동과 그에 대한 추척,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미스테리에 손을 대다가 세상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게 되고, 결국 용기를 가지고 악당을 저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된다는 것까지.

분량은 2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으로, 가독성도 좋아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미스테리함과 긴장감이 책을 읽을수록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성인의 입장에서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정도였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하여 충분한 긴장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문체일 것이라 생각한다.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마법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도, 영화를 보기 전 원작소설에 대해 궁금한 성인이 읽기에도 모두 좋은 책이다.

(이 리뷰는 살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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