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규 온라인 마케팅 가이드 - 하 ㅣ 강상규 온라인 마케팅 가이드
강상규 지음 / 바른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광고대행사에서는 ATL과 BTL로 나누었다. 메인 4대 매체라 불렸던 ATL은 어느새 매체가 바뀌어 온라인(인터넷)이 더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갖게 되며, 광고대행사의 일부 팀이었던 온라인 마케팅이 가치가 전복되어 오히려 산업의 중심에 오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제 온라인 마케팅의 중요성은 중요성 이외에도 그 파급력이 높아지고 있다.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이벤트를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 동영상을 제작해서 적극적으로 제품의 품질과 성능을 알리고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래서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양산되었고, 많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를 위한 플랫폼이 되고자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지점에서 중요하다. 상하로 나뉘어 온라인 마케팅에 대해 저술하고 있는데, 온라인 마케팅 전략, 시장 분석 전략, 고객 중심 전략, 상품 포지셔닝으로 나누어 단계별로 설명해준다. 보다 과학적이고, 수치를 활용한 마케팅 효과를 도출해 냄으로서 그 효과에 대한 근거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상의 마케팅이라고 해서 오프라인과 다를 게 없다는 통찰력이 돋보였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상품을 어떤 절차를 통해 구매하느냐의 문제일 뿐, 상품 구매자인 ‘고객’은 해당 지역의 사회, 문화, 경제적 특성, 기후, 자연환경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나고 자라고 생활하고, 그로 인해 부지불식 간에 지역색과 지역 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게 되며, 그것이 그 사람의 개성은 물론 일상 행동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그 기본은 같다는 내용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주었다.


아쉬운 점은 개념적이고도 원론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이라든지, 전체를 한 명의 캐릭터를 빌어 마케팅을 보다 쉽고 친근하게 가르쳐 준다기 보다 마케팅학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좀 아쉽다. 그렇다 보니 온라인 마케팅의 핵심과 기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온라인 마케팅이 꼭 필요하지만 마케팅 지식이 부족한 소상공인이라든지, 생산자 출신 등 비 마케터 출신의 대표들은 이를 활용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온라인 마케팅이라는 것은 오프라인 마케팅 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비용 고효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접근하기 쉽고도, 정작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마케팅은 굴지의 기업들에게는 전체 마케팅 비용 중 프로모션의 일부이겠지만, 마케팅 비용이 부족한 기업 혹은 사업가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쉽게 시행해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렇게 본다면, 조금은 쉽게 이해시켜 나가면서도 상대적으로 보다 많은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현재로서도 좋은 사례들을 비교분석해두었지만, 상대적으로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부족인지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권당 49,000원)이 좀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늘, 창업했습니다 - 뻔한 월급보다 Fun한 창업을 즐겨라
창업몬 지음 / 베프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일전 방영된 SBS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회사는 나를 만들어 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 가는 곳이 아니다.”


2번의 창업 경험과 실패를 맛본 나로서는 이 책이 무척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남다르게 다가왔으며, 나의 실패를 떠나 다른 사람들의 창업기가 궁금했다.

   

 

“시시콜콜하다.”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이다. 가장 기초인 사업자등록 신청부터 마케팅까지 창업의 전영역을 쉽고, 친근감 있게 알려준다. 또 각 세션마다 퀴즈가 있어 재미나게 내용을 정리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차별점을 꼽는다면, 바로 이 친근함일 것이다. 정보를 건조하게 전달하기 보다는,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이야기들은 친근하고도 무척 현실감 있었다. 예를 들어 평소 직장생활 중 유/무료 교육과정을 챙겨 수강하면서 관심사 밖의 업무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그 외의 교육과 세미나 기회들이 귀찮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간 떼우기용이고, 상사 눈치보기용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교육 참석자 경쟁률도 떨어지고, 교육 분야와 커리큘럼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도 사실이다. 이 때 자신의 창업 목적을 위해 이를 진행하여 실속을 차리는 것은 바쁜 일상 중에 창업 의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교육 집중도를 자연스럽게 올릴 수 있는 계기로 만드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담을 쌓고 생활했었다. 하지만 조금씩 간접적인 교육 기회까지 챙기다 보니, 어느새 꽤나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고 또 반복된 교육 속에서 이해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청해야 하는 분들까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나름대로의 넓은 통찰력과 산업의 히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창업에 대한 정의였다.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그것을 지속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삶.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하고 쉬고 싶을 땐 과감히 쉬는 삶. 노력을 한 만큼 정직하게 보수가 돌아오고,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한 것을 느끼는 삶. 이런 삶을 즐기는 것이 바로 창업이라고 한다는 정의는 순간순간 내가 바라는 삶에 부합되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창업을 해야겠는데, 지인한테 시행착오 속 시시콜콜한 경험담을 들으며, 창업 A TO Z 속에서 자신의 현주소를 정리하기에는 최고의 입문서로 강추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소설, 여행이 되다 : 작품이 내게 찾아올 때 ㅣ 소설, 여행이 되다
이시목 외 9인 지음 / 글누림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어떻게 보면 여행과 소설은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듯 하다. 소설이란 정적인 행위이고, 여행은 동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여행길에는 늘 책을 한권씩은 지니고 가게 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 여행이 어떤 것인지 짚어준다.

 

‘쉼’

 

아침이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첫시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끝나지 않은 일상의 반복이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여유이며, 그것은 곧 시간과 시간 사이의 ‘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틈’을 찾는 방법이 바로 ‘여행’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연상작용이 무척 와닿았다. 이전 직장 생활에 지쳐 직장과 직장 사이 3개월의 공백기를 가졌고, 이를 ‘여행’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쉼’을 얻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획단계에서 시리즈로서의 짝을 지니고 있다. 한 권은 작품을 중심으로,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작가를 중심으로. 이는 작가의 생애나 문학적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공간과 작품에 주요 소재로 등장해 스토리가 풍성해진 공간이 달라서라고 말한다. 작가 파트에선 작가의 삶과 작품이 공간과 맺은 관계를 들여다 보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작품 파트에서는 작가와는 별개로 작품 속에 드러난 공간 자체나 공간에 배인 작품을 이야기 하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기획단계라기 보다 문학 본연의 본질을 기획으로 담은 게 아닌가 싶다. 보다 잘 팔리는 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본질을 반영한 기획! 이야기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와 닿는 찰나를 재미있게 풀어낸 것일테고, 그런 이야기 들이 모여 바로 그 작가의 세상을 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기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전개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될 때쯤,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이끄는 여행이야기가 나오고, 또 마무리로 문학기행을 떠날 수 있게 ‘문학을 거닐다’라는 팁으로 정리해 주어서, 작가들의 글과 그리고 그 글들을 묶는 대표 작가의 배려와 아이디어가 참신하고도 고마웠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을 면면히 살피다 보니, 이미 읽었던 작품이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문학 작품에는 배경이 있고, 근원이 되는 정서가 있다고 본다면, 이 책은 바로 ‘그 곳’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래서 잠시나마 이 책의 페이지를 따라 간 그 곳에는 현대인으로 살아가느라 무뎌진 감수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자연 그대로의 나를 보다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또 만약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개개인의 ‘그 곳’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주며, 여행계획을 잡아주는 것 같아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면 분노라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분노라는 것의 이면과 시대 속의 분노의 다양한 외침들을 이해하다 보면, 시대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이데올로기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분노가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었다”라는 결론을 전제로 하여,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분노, 대중을 선동하는 집단적 맹신의 분노, 유일신교의 지속적인 지배를 위한 신의 분노, 근대 전체주의의 조직적으로 활용한 분노, 현대 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익으로서의 분노, 그리고 이슬람의 복수를 위한 분노 등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분노를 발전과 변화의 중심 동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나운 충동은 이미 고대부터 통제된 방식으로 조절되어 왔다고 한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20세기 전체주의는 분노를 모으고 조직함으로써 경제적으로 활용하고 거대한 이데올로기로 변모시킨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프랑스 대혁명의 원천은 시민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였고, 2015년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사상 최악의 프랑스 폭탄 테러 사건에는 분노라는 씨앗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또 유대교와 기독교, 20세기 전체주의는 분노를 효과적으로 조직해 활용했다. 저자는 “현실적으로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정치인이 자신의 이해에 맞게 분노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하느냐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며 기나긴 역사를 통해 현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슬로터다이크의 이 책은 깨달음을 주는 분석을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적대감으로 돌아온 분노도 다루고 있다.


이는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2017년 대한민국의 광장의 촛불혁명을 똑똑히 보았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례들에 동질감을 가지며 이해하게 된다. 횃불이 아닌 촛불이었지만 하지만 성난 분노가 아닌 냉정한 분노였다. ‘비폭력’을 외치며 분노의 감정을 속으로 숨기고, 이성적이지만 뜨겁게 행동함으로써 부조리함을 이겼다. 그렇게 본다면, 위대한 대한민국은 저자가 말한 “분노의 본질을 깨닫고 진정으로 분노하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을 잘 이행한 것이라고 본다. 민족주의 등 이데올로기나 종교에 치우쳐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분노했기 때문이다.


분노의 기획된 형태는 현대의 은행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분노라는 자원을 모으고, 투자자를 끌어들여 적절한 지점에 저장된 분노를 꺼내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노가 프로젝트의 형태로 투자되고, 긴 안목과 침착함을 지닌 사악한 지도자가 분노를 집단적으로 관리할 때 혁명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분노를 기획하여 폭력이라는 수단이 사용되는 순간, 세상은 혼란의 악순환이 계속되게 된다는 깨달음을 읽으며, 얼마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현명하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순수한 분노에는 복잡한 내면의 삶도, 감추어진 정신세계도 없으며, 영웅이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는 개인적인 비밀도 아니다. 오히려 행동하는 전사의 내면적 삶은 총체적으로 대중 앞에 드러나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총제적인 행동이어야 하며 또한 가능하다면 총체적인 노래가 되어야 한다.

솟아오르는 분노가 그 현란한 표현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당시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이처럼 절대적인 표출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자신을 감추거나 자기 보호를 위해 염려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싸움에는 얻기 위한 그 ‘무엇’인가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투쟁은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가령 투쟁의 에너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전략이나 전쟁의 목표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은 나중에야 표면으로 떠오른다.

분노가 불타오를 때마다 우리는 완전한 전사를 보게 된다. 활활 타오르는 영웅이 온몸을 던져 싸울 때 동력을 지닌 인간이라는 정체성이 비로소 실현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이런 최고의 순간이 오길 꿈만 꿀 뿐이다. 그들도 미루거나 기다리는 삶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기백 넘치는 행동이 어떤 상황을 만나 곧바로 분출했던 그런 순간의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고 있다. 로버트 무질Robert Musil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것을 순수한 동력과 하나가 되는 것, 동기가 전제된 삶에서 누리는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p. 26~27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강압적인 채무 상환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죄는 죄인을 괴롭게 만들지만, 빚은 적어도 경제적 에너지가 남아 있는 한은 채무자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31 죄와 빚은 결정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둘 다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이 과거에 만들어진 밧줄에 묶여서 살아가도록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서로 힘을 합쳐 퇴보적이고 강압적인 결속을 만들어내는데, 이 세계에서는 지나온 일이 앞으로의 일을 지배한다. 빚을 청산하거나 빚을 갚아가는 것은 거래라는 행위의 심장부를 늘 겨냥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객관적인 거래 행위지만 주관적인 감정으로는 분노로 바뀐다. --- p. 61


한 국가 혹은 정부조차도 영웅주의나 복수-낭만주의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은 아스라엘 대통령 골다 마이어Golda Meir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팀이 1972년 올림픽 게임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의 3분의 1을 몰살하고 난 후, 마이어는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에게 가해자와 그들의 지원자들을 법적 절차와 상관없이 제거할 것을 은밀히 명령했다. 코드명 ‘신의 분노(Zorn Gottes)’라는 이들의 작전은 정부 기관의 활동이라기보다는 대중문화의 상상력의 산물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기존 규칙에 대한 대중적?무정부적 의심은 새로운 영웅적 행위라는 형식과 결부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른 또 다른 결과는 영원히 정부라는 기관을 배제하고 사안마다 스스로 판결을 내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발터 벤야민이나 안토니오 네그리 같은 좌파 이론가들은 ‘자본주의라는 조건하’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는 정부라는 제도에서 배제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라는 위험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일단 ‘세상의 질서’가 법적 지위를 잃게 되면 폭력적인 방식을 비롯한 즉흥적 처분이 가능해진다. --- p. 109


악마 자신이 세계의 지배자라는 교리는 그가 지닌 능력의 범위를 짐작하게 한다. 악마의 지배하에 놓인 세상과 티모스적 에너지의 악마화는 신의 이미지를 드높게 승화시킴과 동시에 인간의 지위를 한 단계 하락시킨다. 신은 자신의 티모스적 에너지를 악마의 중심부로 대부분 이동시켰기 때문에 이제 신은 완전히 숭고한 공간으로 격상되었다. 이제부터는 숭고하고 신비로운 특성만으로 완전하게 조합된 신적 특징이 완성된다. 이는 단테의 ‘천국paradiso’과 같은 드높은 신성 공간에 대한 묘사에서 엿볼 수 있다. 신의 ‘영광Herrlichkeit’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분노의 양만으로도 충분했다.

신을 분노의 집행자라는 위치에서 해방시킨 대가로 악마라는 다양한 반대편 세상이 출현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완전한 존재론적 독립성을 얻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반그리스도의 존재 혹은 두 번째의 원리를 인정하는, 일신교의 범주 내에서는 불가능한 입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조적인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신과 그와 반대되는 적대적 힘의 함수는 복종과 반역의 변증법 속에서 결정되는 만큼 악마는 셀 수 없는 비참함의 근원으로써 충분한 존경을 받았다. 복종과 반역, 이 두 가지 요소 모두 계급적 관계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는 형태로 발전하며 세계의 특징이 되었다 --- p. 177~178


‘사회’가 그 자체의 조건에 관한 분노의 표출 결핍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징후로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분노를 자극하는 문화가 가장 중요한 정치 심리학적 임무가 되었다. 이러한 임무를 처음으로 거행한 것은 프랑스 혁명인데, 이때 기존의 환경에 대한 ‘비판주의’라는 관념이 승리에 찬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 절망적인 ‘기득권 체계’는 도덕적 전제조건이 되었다. 그것이 무정부주의건 공산주의건 국제 사회주의나 민족 사회주의 데모 행진이건 상관없이 19세기와 20세기의 흥분된 전투적 혁명의 흐름은 이러한 부분에 집중되었다. --- p. 223


가능성의 세상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은 오늘날보다는 훨씬 더 강했고 ‘기존 질서의 좌측’ 영역에 대한 요구를 당당히 할 수 있었던 때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누구도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에 빠지지 않았다. 다른 세상은 우리 삶의 한가운데에 와 있었고, 그것은 끔찍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다른 것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Alternative’이라는 단어가 빛을 발하게 되었다. 물론 ‘구현된’ 사회주의가 완벽하게 망가지고 무의미해진 것은 분명했지만, 아무리 썩고 무의미한 체계라도 계속 존재하는 한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언젠가는 사악하지 않은 동기의 정당한 실현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모든 전복 에너지가 예술 세계의 심야 프로그램이나 팬터마임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지평이 아직 성적 흥분으로만 가득 찬 인류의 마지막 놀이동산으로 축소되지는 않았을 때였다. 오래된 유럽의 진실에 대한 일원론적 개념과의 인식론적 단절 이외에도 최근의 세계를 지배하는 무한한 다원주의는 대체로 유럽의 계몽주의의 특징이며, 중세적 논리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진화론적 교리의 종식이라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 p. 344


인류에게는 항상 적이 필요하다고 설파하는 비극적 관점의 정치학자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의 분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선물과도 같았다. 이슬람주의가 처음에는 물질적 관점에서 그리 위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리인들이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를 갖지 않고 이주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한은) 이들의 존재는 서구의 불안한 정치심리학의 집단적 목소리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자유주의적? 목가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는 환영받지 못한 손님과도 같았다. 적이 없는 자유로운 사회의 벽면에 외설적인 메시지를 담은 그라피티를 뿌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미친 자들과도 같았다.

새로운 테러 세력에 대한 서구의 이 같은 평가가 아무리 상반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서구 사회의 사회적 평화비용을 재검토하는 데 흥미로운 자산으로 부상하지 않았다면 그저 짜증나는 주변적 현상 이상의 의미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는 비용을 현저하게 높이는 데 기여했다면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은 오히려 비용을 바닥까지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p. 400~4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 여름 가을 겨울...

최순희님의 사진집 <불일암 사계> 속 사진들과 법정 스님의 글이 어우러져 편안한 마음으로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새겨진 삶

그리고 법정 스님과의 아름다운 만남

 

영화 <남부군>의 등장인물의 모델이기도 한 최순희님은 1924년에 태어나 이화여대를 나오고 일본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여성으로 사회주의자였던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북한에서 지도층의 삶을 살다가 한국전쟁 때 한국으로 내려와 생포되었다고 한다.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 북에 남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법정 스님과 만나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책에는 최순희님이 그 사무치는 마음을 잊기 위해 올랐던 불일암 길과 그 길을 오르내리며 찍었던 사진 속에서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의 아름다움과 따스한 가르침에 읽어나가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천천히 녹차가 우려나듯이,

 

가장 페이지를 곱씹으며 읽어간 것은 겨울이었다.

소멸의 시기라 볼 수 있는 겨울이자... 또 다시 찾아올 희망인 봄을 기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몇 개만 설명하자면, “조고각하”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신발을 벗어놓는 자리에서 자기가 서 있는, 지금 자기의 현실을 살피라는 것이다.

신발을 바르게 벗어두라는 표현도 되지만, 신발을 벗어놓는 다는 게 현재의 자신을 잠시 내려놓고, 이를 돌아보라는 교훈은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또,

지나친 감상주의인지는 모르지만, “불일암을 지은 이유”가 참 와 닿았다.

돈 한 푼 없었던 법정 스님이 불일암을 지으려는 게 헛된 생각인 것을 알았지만, 앞서 간 선인들이 지어놓은 집에서 덕분에 잘 지냈으니 그 은덕에 보담하기 위해 자기도 지어 또 다른 인연이 닿는 수행자가 와서 머물다 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었다고 해서 자기 것이 아니듯이.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어서 반가웠고, 또 나를 돌아보게 했다. 쓸떼없는 욕심과 번민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었다.

 

힘들 때마다 종종 불교서적을 읽곤 했었다. 특히 군부대에서 많은 혼란과 번민이라는 생각의 또아리가 머리 속에 틀어 감당할 수 없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무너지면 다른 사람도 힘들고, 나의 부정적인 기운이 남을 해할 수도 있으니 스스로 이를 삭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을 때 바로 도움을 받았던 게 불교서적이었다.

 

그 때의 기억이 많이 난다. 또, ​불일암 풍경사진과 함께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니, 불일암을 거닐며 사색에 잠긴 스님과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내려놓으며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어갔던 최순희님의 모습이 상상도 된다. 그 느낌은 마치 잘 우려낸 녹차같은 느낌을 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맑고 향기로운 ​이런 풍경과 감정을 보고 느끼며 이유없는 복잡함이 나를 혼란스럽게 할 때 두고두고 손 가는 데로 페이지를 넘겨보아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