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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평점 :
“검사내전”이라는 제목보다는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생활형 검사라는 것은 실제 검사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것일테고, 사람 공부 세상 공부라는 것은 범죄와 연루된 사람들의 인간 군상을 깨닫고, 그런 사람들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 대해 깨우치게 된다는 의미라고 재해석 되었다. 그렇다고 본다면, 저자가 이 책을 써내려 갈 때의 자세라고나 할까? 일종의 모드?가 느껴져 책 속으로 들어갈 때의 독자인 나의 모드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책 내용은 무척 인간적으로 쓰여져 있었다. 검사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고, 완벽하게 법질서를 수행하는 우국지사로서의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고민하고 실수하고 고뇌하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실수하는 인간적인 검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보면 ‘생활형 검사’ 표현에 ‘생계형 검사’라는 표현이 내포되어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생활형 검사'로 열심히 살아온 저자가 검찰 '안'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이자, 검사라는 '직업' 덕분에 알게 된 세상살이, 사람살이를 둘러싼 그의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기하게도 검사인 저자의 필력이다. 자유로운 은유와 사례 인용 등을 자유자재로 하며, 마치 논리를 따지는 검사를 넘어, 유쾌함 까지 담은 명강사의 필력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또, 이 정도의 필력과 논리 구사력이 있기에 비로소 검사-변호사 논리대결에서 싸울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케이퍼무비가 흥행하는 최근 콘텐츠 업계 트렌드 때문일까? <검사내전>에서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1장 ‘사기 공화국 풍경’이다. 그 사기꾼들은 대단한 논리적 설계와 허를 찌르는 캐릭터 분석을 통한 묘수들이 있기에 한해 24만건의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김웅의 생각은 애석하게도 각자가 알아서 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예로 1장에서 예시로 든 몇 가지 사건들의 정황을 보면 그게 만만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치타와 가젤의 비유처럼, 실제 사기꾼들의 활약상을 읽어보면 ‘걸리면 끝’이라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기에, 법이라는 무기를 가진 검사인 치타와 한 수 높은 사기꾼 가젤을 잡기란 쉽지가 않다.
신용도 좋도 인상은 더 좋으며 여러번의 수감 생활을 통해 경험치까지 쌓은 할머니 사기꾼은 검사들의 일하는 패턴까지 꿰고 있고, 울버린급으로 많은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한 보험사기꾼이 있는가 하면, 보험사기꾼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검사의 수사에는 그 윗선에 줄을 대는 것으로 빠져나가는 병원장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연쇄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악’과 ‘선’이 교모하게 얽힌 게 바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많은 정재계 거물들도 서로 얽히고 설켜 있기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문제가 나비효과가 되어 연쇄적으로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 역시 쉽게 연상되었다.
또, 사기꾼에게 당하는 피해자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라고나 할까? 비자금이라 하면 검은 돈이고, 그 검은 돈은 영수증이 없으며 그 행방 역시 묘연하다는 생각을 뛰어 넘어, 그 검은 돈이 바로 자신의 것이 된다는 도둑놈 심보에 이를 쉬쉬하며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전 정권의 비자금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면서 사기꾼이 접근할 때를 설명하며,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면서도 ‘어차피 돈을 안 줄 거니까 들어나보자’식의 모드로서 설명을 듣다보면 ‘진짜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이는 곧 남들이 모르는 비밀에 접근한다는 우월감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이 도둑놈심보에서 비롯된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또, 벼룩의 간을 내어 먹을까 하는 방심도 있다. 사연에는 피해자가 조사를 받으면서, 할머니가 설마 자기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을 등칠 줄 몰랐다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니까 사기 치는 것이라고 한다.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했기에 피해자가 된 것이다. 오히려 이런 방심을 뚫고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고 한다.
그 외에도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넘쳐나고, 그 현장에서 생생하게 사건들을 설명하는 필력 역시 몰입감 있다. 그러면서도 그 흥미 속에서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순간들이 있다. 바로 그 피해자가 나였다면 이라는 아찔한 상상과 함께,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검사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조직생활에도 맞지 않고, 검사로서도 유능하지 않지만, 그 존재로서의 역할이 있기에 노력하겠다고 한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촛불처럼.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람 공부 세상 공부를 하고, 법과 정의란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