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회사에서 8백만원 짜리 수금을 위해서 인천시까지 나를 심부름을 시켰다.  화창한 금요일 오후 버스, 지하철, 택시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무려 3시간의 여정 오후 12시에 출발해 저녁 9시에 회사를 도착했다. 회사에서 받은 경비 3만원 중 택시비라고 거짓말을 하고 이 책을 인천 영풍문고에서 구입을 했다. 대신 택시를 타지 않은 채 1시간은 걷고 말이다. 

'조정래'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설렌다. 그와는 남다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26살이란 늦은 나이에 군대를 입대했다. 상병 쯤 됐을 때 독서를 좋아하는 흉흉한 소문이 군대에 퍼져 '독서병'이란 말도 안 되는 역할을 군대에서 맡게 됐다. 군대에서는 군인들의 지식 향상을 위해 1년에 한 번 30만원의 도서 구입비를 지원해 줬다. 나는 군대에 있는 동지들에게 무슨 책을 읽고 싶은지 철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그런 열정을 배반하듯이 군대에 있는 동지들은 한 권의 책도 말하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명대사는 '책을 줄거면 차라리 소녀시대 브로마이드를 사 줘'라는 절규에 찬 동지들의 목소리. 결국 아무런 책도 선택하지 않은 동지들을 대신해 나는 그때 껏 내 돈 들여서 사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을 마음껏 신청했다. 

그 중에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도 들어 있었다 

'태백산맥' 전 권 세트를 구입해 열심히 3권 째 읽던 중, 대대장은 새롭게 구입된 책을 시찰하겠다며 독서실을 방문했다. 여유 로운 표정으로 잘 정리된 책들을 살펴 보던 대대장은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졌다. 검은 표지에 빨간 색 글자로 멋지게 쓰여 있는 '태백산맥'이란 책을 보자 대대장은 그 책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이 쓴 책이라 여겨 지는 듯 대 분노의 폭발을 보여 줬다. 보안 담당 상사를 불러 '어떤 개념 없는 새끼가 이런 빨갱이 서적을 신청했어!'라고 1차 빨갱이 선언을 해 주셨고 '다 가져다 불 태워 버려'라는 진시황도 울고 갈 분서갱유의 2차 선언을 해 주셨다. 마지막의 화룡정점은 '이 책 신청한 새끼 사상 조사하고 영창 보내 버려!'라는 선언 이었다.  '태백산맥'이 국보법에 걸려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보안 부장에게 불려가 사상 조사를 받아야 했었다. 

사상 조사를 받은 후 소문은 소문을 낳아 26살까지 군대를 들어 오지 않은 것은 '지하 학생 운동권 조직의 괴수 였기 때문'이다. 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에 정통한 공산주의 이론가'이다. 등 마무리는 부모님이 모두 중국분이며 중국 공산당 출신이다라는 출신설까지 나오게 됐다. 

언제 영창을 갈 것인가에 대한 숨 막히는 나날이 계속 되던 중  내 운명을 살려준 일이 발생했다. 불침번을 서던 한 보초병의 실수로 군 부대에 파지를 놓아두던 곳에 불이 난 것이었다. 나는 용산 국방부 소방대 소속으로 국방부 장관을 수호코자 만든 소방대의 소방 상황병이었다. 

불이 난 직후 빠른 손놀림으로 용산 소방서에 지원 요청을 했으나 10평의 파지 창고의 불길은 더욱 커지기는 커녕 출동한 내 후임들의 양동이 물로 꺼지고 말았다. 

나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용산 소방서에 있는 소방차 7대가 출동을 해 버렸고 평온한 일요일 오후는 소방차들의 비상벨 소리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소방차들이 도착한 후는 이미 불은 진압됐고(10평짜리 파지 창고가 불이 나면 얼마나 날 것인가!) 고가 사다리차, 소방 본부차 등 멋들어진 소방차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불이 꺼진 파지 창고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근처 결혼식에 참석한 대대장은 화재 소식에 놀라 부랴부랴 부대로 돌아왔고, 멋진 소방차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 보고 있었다. 

"저렇게 조그만데 불 났는데 소방차 부른 새끼 누구야! 영창 보내버려!" 

졸지에 영창을 두 번 가게 생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때 근엄하게 생기신 용산 소방서 소방서장께서 하시는 말씀 

"아주 훌륭한 소방병을 두셨습니다. 저 파지 창고 옆으로는 국방부 전체에 석유를 넣주는 기름 창고가 있는데 만약 빠르게 조치를 안 했다면 저 기름창고까지 불이 번져 국방부 일대는 난리가 났을 겁니다." 라고 

그 한 마디에 졸지에 영웅이 돼 버린 나는 영창 두 번의 저승사자는 보내 버리고 4박5일이라는 휴가를 받게 되었다. 

'태백산맥'은 아직도 국방부의 도서실에 살아 있을 것이다. 많은 청년 동지들을 깨우치며 말이다. 

원래는 '허수아비춤'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두서 없는 글이 되버리고 말았다. 다시 돌아가면 '허수아비춤'은 상류 사회에 대한 조정래의 날카로운 풍자를 담고 있다. 어찌 보면 디스토피아적인 소설과 같다고 할까. 

너무 사실과 똑같아서 읽기가 싫어지는 그런 류의 소설이다. 읽다 보면 삼성 비자금 사건이라든가 아니면 현대 그룹의 비리라든가 그런 것들의 내막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냥 우리가 무미건조하게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보지만, 그리고 솔직히 삼성 비자금 사태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때 무언가 반드시 밝혀질 것이란 생각을 나름대로 했지만 결과는 어떠했을까? 이 소설의 강기준, 박태하를 비롯한 무리들의 공작처럼 별 일 없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망각하고 또 망각하며 사는 민중을 비웃으며 말이다. 

조정래는 왜 그런 기업가들의 비리가 드러나지 않는지 그러고 그들이 어떻게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지에 대핸 현대판 빅 브라더를 상세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이 소설에서 쓰고 있다. 그들과 일체가 돼 그들처럼 말하고 그들처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조정래의 힘이 겠지만 말이다. 

도대체 부실 수 없는 이 '빅 브라더'들에 대해 조정래는 시민단체들의 힘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소설이기 보다는 사회 과학 서적처럼 기업가들의 한국 사회 지배력을 깰 무기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힘이라고 하며 해결책 역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약점에 대해 조정래는 또 다시 후반부에 가서 쓰고 있다. 또 그것을 어떻게 파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문학이란 바로 이런 힘이라고 느껴진다. 딱딱하게 쓰자면 '이 현대 사회는 혈연,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는 기업가들의 로비로 인하여 하나의 귀족층이 형성 돼 있다. 그것을 파괴 시키기 위해서는 민중들의 힘을 받는 시민단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민단체 역시 저 소름끼치는 집단과 싸우기 위해서는 더욱 더 양심적 단체가 돼야 한다.'라는 이 내용을 소설로 쓰고 있다. 

마치 조지 오웰의 정치와 문학이 하나가 되게끔 만들고 싶은 것 그것이 조정래의 바램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나는 숨 가쁘게 읽었지만 사색을 잘 하지를 못 했다. 아 어렵다. 소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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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2-0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대대장 님 이야기 정말...압권입니다.

루쉰P 2010-12-06 07:54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원한은 없습니다. 뒤돌아 보면 좋은 추억이 됐다고 할까요? 하지만 전 군인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하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ㅋㅋㅋ 대대장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저러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푸훗

파고세운닥나무 2010-12-1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대를 늦게 갔죠. 25살에 갔으니까요.
밤에는 틈나는 대로 책을 보곤 했는데, 한번은 한길사에서 나온 그레이트북스 가운데 리쩌허우의 <중국근대사상사론>을 봤네요. 당직사관이 책을 한 번 보자고 하더군요. 그 책의 속표지가 '새빨간데' 그 사람이 내용을 알리는 없고, 표지가 빨갛다며 '여하튼 빨간 책은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친분이 있던 분이라 꼭 읽고 싶다고 해서 읽었네요. 물론 내용도 '빨갛긴' 했지만요. 리쩌허우가 많이 빨간 사람은 아니지만요.
일화를 들려주시니 옛 생각이 나네요^^

루쉰P 2010-12-22 14:25   좋아요 0 | URL
세상에 그렇게 늦게 가시다니...저와 같은 동지가 또 있으실 줄은 몰랐네요. 전 요즘 가구 일이 너무 바빠져서 출장에 출장을 거듭하다 보니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왔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반가운 분들의 글이 많이 올라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중국근대사상사론>을 보고 빨간 책이라니 정말 어이 없어요.

다이조부 2010-12-15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재미있는 리뷰이군요 ~ ㅋ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쓰기 입니다 ㅎㅎ

생활과 책이 밀착이 되서 좋네요. 근데 독서병 이라 부럽네요 ㅋ

제가 군생활하던 곳은 북조선이 저 너머에 보이는 곳인데도 부대안에 이름뿐이지만 도서관
이 있었지요, 거기서 책도 읽고, 영어공부 한다고 깝죽대고, 동료들이랑 시덥지 않은
농담하던게 생각나네요 ㅎㅎㅎ 아무튼 반갑습니다 ㅋ

루쉰P 2010-12-22 14:26   좋아요 0 | URL
하하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쓰기라니 감사합니다. 더 좋아하는 글쓰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군 생활은 정말 좋은 추억, 나쁜 추억이 공존하는 이상한 세계죠. 군대에 있을 때는 지옥이고, 나오면 웃으며 추억하는 푸하하

대지의 마음 2010-12-1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루쉰님의 글은 가독성이 있다니까요. 많이 웃었네요. 루쉰님은 역시 소설 쓰셔야 해요. 그 많은 독서편력과 삶에 대한 진솔함을 버리지 마시고, 뭐 꾸준히 연마를 해보심이 어떨지. 어쨌든, 조정래의 대하소설은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다 보았네요. 제 소설의 스승님격이랄까요. 하지만 어쨋든 마디 굵은 서사에는 미시사에 대한 간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 시민단체 정부에서 돈끊겨서 많이 힘들답니다. 인천연대나 참여연대, 환경연합, 서울에서는 성미산 공동체와 같은 많은 시민단체들이 있습니다. 루쉰님께서도 한군데 발을 담아 보신다면 맘 맞는 분들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고, .... 뭐 이미 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글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루쉰P 2010-12-22 14:29   좋아요 0 | URL
항상 사자님은 너무 칭찬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자님이 재미있게 읽어 주셨다니 그걸로 대 만족이죠. ^^ 저는 시민단체는 별로 알지를 못합니다. 후원금만 조금 내고 있는 실정입니다.여전히 행동이 부족한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 사자님의 댓글을 보며 항상 힘을 냅니다. 너무 감사해요.

쉽싸리 2011-04-21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정래 선생의 허수아비춤이 그런 내용이군요,
선생의 책은 3부작 이후 <인간연습>이 마지막 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한강>에서 선생의 포항제철(박태준)에 대한 언급이 신선했습니다.
시민의 힘, 모으는 방식, 추진하는 방식등, 과제라고 봅니다.

루쉰P 2011-04-21 22:01   좋아요 0 | URL
^^ 책에 대한 정확한 리뷰는 되지 못하고 개인 잡담을 늘어 놓는 리뷰라 도움이 별로 안 되셨을 같아요. 반갑습니다. 쉽싸리님, 노이에자이트님 서재에 <대망> 관련해서 댓글을 다신 것을 봤습니다. 사실 저는 '태백산맥' '허수아비' '인간연습' '황홀한 글쓰기' 빼고는 조정래 선생의 다른 역작인 '한강'이나 '아리랑'은 읽지를 못 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워요.
저도 쉽싸리님 서재에 자주 놀러 갈께요. 못난 리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쉽싸리 2011-04-21 22:18   좋아요 0 | URL
부끄럽다니요?
그리 말씀하시면 저야말로 노신,위고,도스트예프스키를 거진 읽지 못했고, 특히 일본작가들은 전혀 읽지 못했어요.
그래요, 우린 그 무수한 책들에 비하면 참으로 부끄럽지요? ^^

루쉰P 2011-04-23 00:41   좋아요 0 | URL
하하 ^^ 맞아요. 무수한 책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오늘도 달려 볼려구요. ㅋㅋ 끝까지 다 읽어버리겠어요. 그 책들이요!

프레이야 2013-11-2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님, 얼마전 벌교,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 가보았던 느낌이 아직 살아있어서
조정래 아저씨,라는 재미난 카테고리 이름을 보고 방문했어요.
소화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들어볼 수 있는 음향시설을 해뒀던데
찰진 전라도 말이 생생하더군요.ㅎㅎ
첫 인사네요. 종종 들려 좋은 글 읽을게요^^

루쉰P 2013-11-28 10:47   좋아요 0 | URL
와우...정말 전 거기 가고 싶은 데..
이 페이지는 써 논 지 오래여서..이렇게 오시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ㅋ
읽어 주심 감사하고 저도 좀 쓰겠습니다.
소화..아 그 이름...
망할 대대장이 생각나네요 ㅎㅎㅎ;;;;

루카스 2014-10-0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는 비논리가 판을 치는 세상 맞는 것 같습니다.

제 남편도 스물여섯 살에 군대갔다는 공통점을 말씀드릴게요. 전 남편 없는 시댁에 들어가서 백일된 아기를 키웠지요.(눈물 없인 얘기할 수 없는 시절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눈물 없이 말씀드려요.ㅋ)

루쉰P 2014-10-07 13:32   좋아요 0 | URL
군대 있을 때는 이 곳 만큼 부조리한 곳이 없다 생각했는 데 제대해서 사회에서 살아가며 세월호 사건을 거치며 느끼는 것은 사회 자체가 커다란 군대와 같고 부조리와 비논리의 공기로 가득차 있다고 많이 느껴요.

세상에...남편 없이 100일 된 아이를 키우셨다니 대단하십니다. ㅎㅎㅎ 근데 인간은 참 웃겨서 그 때는 죽을 듯이 괴로워도 나중에 가면 슬퍼도 눈물이 안 나요. ㅎ
하지만 아직도 남편 분은 그 때 일을 떠 올리시면 울 것 같을 것 같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