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 - 노인정신의학 전문의가 발견한 마음 노화의 비밀
와다 히데키 지음, 김세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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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 하는 동물의 눈빛만 보고도 아픈 곳을 알아챈다고 자부하는 50대 베테랑 수의사지만, 정작 내 할머니의 마음속 붕괴는 알아채지 못했다. 할머니의 급격한 건망증을 목도했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은 잔인하게도 ‘치매’라는 단어였다. 진료실에서 수없이 만났던 인지기능장애를 앓는 노령견들의 초점 없는 눈망울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기에 그저 체념하려던 찰나에 <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을 읽었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노년기 인지 저하가 불치 질환인 치매가 아니라,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 ‘노인성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급감하며, 은퇴와 사별 같은 환경적 변화가 맞물려 뇌의 하드웨어 자체가 우울에 취약해진다고 짚어낸다. 즉, 우울증은 환자의 ‘의지’나 나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기능적 상실이자 신체적 질환이다. 마음을 다잡지 못해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뇌에 고장이 나 의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라는 의학적 본질은 내 기존의 시선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깊은 사색에 잠기게 했다. 저자는 우울증과 치매의 명확한 감별법을 제시한다. 서서히 진행되면 치매지만 급격히 나타나면 우울증이며, 치매 환자가 잠을 많이 자는 반면 우울증 환자는 불면에 시달린다. 특히 “치매 환자는 인지 저하를 숨기려 하지만, 우울증 환자는 이를 자각하고 괴로워하며 자책한다”라는 대목은 단순한 의학적 지식을 넘어 노년의 삶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동물들도 환경이 변하면 인지 기능이 떨어진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하물며 복잡한 감정을 지닌 할머니가 고립 속에서 자책했을 마음의 병을 단순한 치매로 단정 지으려 했다니, 수의사랍시고 증상만 보고 오진을 내릴 뻔한 것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일본과 달리 우울을 "마음이 슬프다"고 하기보다 화병이나 신체 통증으로 표현하곤 한다. 치매 지원 인프라는 훌륭하지만 노인성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한국 현실에서, 자녀들은 부모의 변화를 치매로만 단정 지어 치료 기회를 놓치기 쉽다. 저자는 “우울증 환자에게 건네는 격려는 힘을 낼 수 없는 이들에게 도리어 죄책감을 심어주는 독약이 된다”라며 가족의 태도에 경고를 던진다. 마음의 골절을 입은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채근이 아니라 묵묵한 공감이었다. 지시 대신 선택지를 제안하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라는 조언은 반려동물 돌봄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었다.

여기에 더해 책은 오전 햇볕 쬐기, 하루 3,000보 산책, 균형 잡힌 식단 등 세로토닌을 활성화하는 실천적 예방 습관과 함께, ‘적당히 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유연한 사고 전환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고장 난 뇌의 하드웨어를 약물로 고치고 완벽주의적 강박을 깨부수는 소프트웨어적 훈련을 병행할 때 노년기의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책은 부모의 변화로 혼란을 겪는 자녀들과 보건의료계 종사자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치매와 우울증을 구별하는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환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현명한 돌봄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치매라는 절망에 갇히기 전에, 철저한 감별 진단과 빠른 치료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만이 사랑하는 이의 웃음과 남은 생의 존엄성을 되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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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의 법칙
김주환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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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을 말 못 하는 동물들과 보내왔다. 아픈 곳을 말하지 못하는 짐승들의 눈빛을 읽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내 평생의 업이자 자랑이었다. 직무 적성검사에서 나의 ‘영업 역량’ 점수는 처참하게도 0점에 수렴했다.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권하고, 설득하고, 마침내 지갑을 열게 하는 행위는 나 같은 내성적인 골방의 학자에게는 평생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인생의 50대 중반, 누군가는 은퇴를 고민하고 삶을 정리할 시기라지만 나는 여전히 ‘영업왕’이 되고 싶다. 내가 평생 쌓아온 수의학적 가치와 진심을 세상에 더 널리, 더 당당하게 판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판매의 법칙>은 단순한 영업 지침서가 아닌, 나의 평연한 삶을 통째로 뒤흔든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국 인생도 '설득'의 연속입니다. 내 가치를 인정받는 일, 좋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 내 아이디어를 채택시키는 일까지… 세상 모든 일은 결국 나를 판매하는 세일즈입니다.”라는 말은 내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나는 그동안 진료실 안에서 동물만 치료했을 뿐,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수의학적 진심을 세상에 제대로 세일즈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일즈는 장사꾼의 전유물이 아니라,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인생 그 자체다.

저자는 18년간 누적 거래액 2.5조 원을 달성하며 깨달은 비밀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데, 그 과학적 시스템의 핵심은 다름 아닌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읽고 통제하는 것에 있다. 진료실에서 동물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던 내가, 정작 인간 고객의 두려움과 확증편향은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상대의 심리를 해킹해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고, 불리한 조건마저 나에게 유리한 무기로 바꾸는 '프레임 전환'의 기술은 나 같은 초보자에게 인간 내면이라는 복잡한 미로를 헤쳐 나갈 완벽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특히 내 가슴을 친 것은 ‘7대 3의 법칙’이었다. 적성검사 0점인 나는 늘 영업왕들은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를 현혹할 것이라 오해했다. 하지만 책은 70%를 듣고 30%만 말하라고 조언한다.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상대방이 겪고 있는 문제와 두려움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경청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던 나의 ‘경청’ 능력이, 어쩌면 인간 세계의 세일즈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해답을 얻었다. 타인을 설득하는 법칙을 마스터할 때 남의 상품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부와 인생의 가치까지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는 '부의 확장 법칙'은 오랜 타성에 젖어 있던 내 시야를 단숨에 깨우는 일침이었다.

영업 DNA가 전무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세상의 모든 거절을 승낙으로 바꾸는 33가지의 정교한 심리 무기를 쥐여준다. 인생은 설득의 연속이며, 나를 판매하는 세일즈라는 본질을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을 읽고 주도권을 가져오는 법을 배웠으니, 내 진심에 과학을 더할 차례다.

이 책은 세일즈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전문 영업인뿐만 아니라, 나처럼 타고난 재능이 없어 설득 앞에 늘 작아지던 모든 평범한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거절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멘탈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을 배우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가치를 부로 연결하는 실전 무기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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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 - 화성으로 가는 설계도
이선 지음 / 처음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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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순수한 낭만이었다. 50대 중반인 지금도 야근 후 퇴근길에 마주하는 밤하늘은 아름답다. 하지만 내게 우주란 인류의 위대한 꿈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어 그저 멀리서 관조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아폴로 계획은 옛날 뉴스였고, 우주 관광은 사치스러운 유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스페이스X: 화성으로 가는 설계도>를 펼쳤을 때도 흔한 찬가일 것이라 예단했었다. 그러나 저자가 텍사스 스타베이스 현장을 파헤친 기록을 마주했을 때, 안일한 관조는 신선한 충격으로 변했다. 이 책은 장벽 뒤에서 불가능을 숫자로 증명해낸 지독한 혁신의 기록이었다. 

그 아득한 우주 한편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론 머스크의 붉은색 테슬라 로드스터와 마네킹 '스타맨'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대시보드에 적힌 ‘당황하지 마라(Don't Panic!)’라는 문구처럼, 머스크가 우주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쏘아 올린 이 기상천외한 페이로드는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우주 시대의 서막을 상징하는 거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특히 핵심 주역인 '멀린(Merlin)' 엔진의 개발 비화는 내 시선을 붙잡았다. 저자가 '단순함이라는 무기'라고 명명한 이 엔진의 철학은 부품 수와 고장 요인을 과감히 덜어내는 뺄셈의 과정이었다. 물리적 법칙에 따라 무질서로 흐르는 우주의 엔트로피를, 오직 극단적인 단순화로 베어내며 비용과 안정성을 동시에 잡아낸 것이다. 

나아가 책은 천문학적인 개발비로 파산 직전의 적자 늪에 허덕이던 무모한 스타트업이 거대한 '현금 기계'로 진화한 비밀을 해부한다. 저궤도 우주 셔틀 시스템을 독점하고 위성 통신망 '스타링크'를 강력한 수익 모델로 전환해 내는 영리한 반전은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자본의 지혜를 증명해 준다. 

무엇보다 ‘다음 전쟁은 휴대폰이다’라는 문장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인공위성과 스마트폰을 직접 연결하는 'Direct to Cell' 기술로 기존 이동통신 시장의 국경을 파괴하고, 우주적 독점 전략을 펼치는 모습은 소름 돋도록 현실적이다. 여기에 머스크가 진단한 '인류 문명의 등급 척도'는 왜 그가 화성에 집착하는지 알려준다. 지구에만 머무는 0.7형 문명을 넘어, 태양 에너지를 100% 활용하는 초고등 문명으로 도약해 멸종 위기를 영구히 극복하겠다는 야망은 내 시야를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해 주었다.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오차 없는 품질관리(QC)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나에게 스페이스X가 고집하는 ‘요구사항을 덜 멍청하게 만들어라’, ‘부품과 프로세스를 과감히 제거하라’는 명제는 안전하다 여겼던 절차의 틀을 깨부수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일단 로켓을 쏘아 올리고 폭발시키며 데이터를 줍는 모습은 가장 과학적인 속도전이었고, 리스크 회피에만 급급했던 내 방어적인 직무 관성에 매서운 회초리를 드는 듯했다. 

관성에 젖은 프로세스를 혁신하려는 비즈니스 리더와 실무자, 투자 기회를 찾는 이들에게 권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배우고 우주 경제의 거대한 흐름을 통찰할 안목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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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예언의 시작 편 1 : 야생으로 (디럭스 에디션) ㅣ 전사들
에린 헌터 지음, 서나연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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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날카로운 눈동자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린 헌터의 소설 <전사들: 야생으로>를 읽으면서 나의 이런 편견은 완전히 깨졌다. 이 책은 고양이라는 동물을 다시 보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본질과 진짜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는 집고양이 ‘러스티’가 안락한 집을 떠나 진짜 숲으로 발을 들이며 시작된다. 그곳에서 야생 고양이 ‘그레이포’를 만나 격렬한 싸움을 벌인 러스티는, 천둥족 지도자 블루스타의 제안으로 훈련병 ‘파이어포’가 된다. 소설 속 야생 고양이들은 인간을 ‘두발쟁이’라고 부르며, 애완 고양이를 철저히 경멸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인간을 자유를 구속하는 이상한 존재로 바라보는 고양이들의 시선은 무척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천둥족의 일원이 된 파이어포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집고양이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족 고양이들에게 심한 차별과 무시를 당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야생 고양이들의 세계가 인간 사회와 소름 돋게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파이어포는 부종족장 ‘타이거클로’가 권력을 잡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살해했다는 비밀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목격한 친구 레이븐포가 위험에 처하자 목숨을 걸고 농장으로 탈출시키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인간 세상만큼이나 야생도 음모와 의리가 공존하는 복잡한 곳이었다. 

결정적으로 파이어포는 이웃 부족인 그림자족의 잔인한 지도자 ‘브로큰스타’가 천둥족의 새끼 고양이들을 납치해 가자, 쫓겨난 고양이들과 힘을 합쳐 그를 물리치는 대활약을 펼친다. 이 전투를 통해 파이어포는 마침내 정식 전사인 ‘파이어하트’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는다. 편안하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료를 뒤로하고 배고픔과 종족 간의 전쟁이 도사리는 야생을 선택한 파이어포의 용기는 정말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진짜 전사들의 모습 같아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오직 불만이 우리 종족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예언 문장에서, '불'은 파이어포를 뜻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녹이는 '정의로운 용기'의 의미라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애완 고양이들의 모습을 통해 ‘야생의 삶은 늘 변하고 위험하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거친 대자연에서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공동체는, 오히려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 사회보다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고 똘똘 뭉치는 진짜 의리가 가득했다.

이제 나는 길고양이를 보고 무서워하지 않는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빛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야생을 견뎌내기 위한 전사의 기백이었다. 파이어포처럼 나 또한 안락한 울타리에만 안주하지 않고, 시련을 용기 있게 마주하는 단단한 전사가 되고 싶다.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거나 겉모습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은 또래 초등학생 친구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이 짜릿한 모험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당당한 태도와 공동체를 지키는 책임감의 가치를 깊이 배울 수 있었다. 

 

“고양이 세계에 투영된 인간 세상을 보며 깊이 성장한 아들아, 너도 러스티에서 파이어포로, 다시 파이어하트로 당당하게 성장해 나가길 아빠가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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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
땃꾸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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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모니터의 엑셀 파일과 씨름하다 잠시 안경을 벗고 미간을 누른다. 부장이라는 직함, 어느덧 반백을 넘어선 나이, 그리고 ‘어른스러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오후다. 감정을 절제하고 체면을 차리는 것이 미덕이 된 무채색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나는 우연히 인스타툰 작가 땃꾸의 <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라는 책을 읽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유행인가 싶어 짐짓 무덤덤하게 책장을 넘겼지만, 연인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보며 내 가슴 한구석에서 잊힌 줄 알았던 뜨거운 온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린 얼마나 유치하게 사랑하고 있을까?’라는 작가의 질문 앞에서 나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돌이켜보면 이십 대의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 가로등 밑에서 밤새워 낯뜨거운 편지를 쓰던 찬란하게 유치하고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다. 

특히 책 속 '첫 만남'의 서툰 어색함과 설렘은 내게 아내를 처음 만났던 그날의 공기를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붉어지던 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날씨 얘기만 늘어놓던 바보 같은 내 모습이 소환되자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겼던 아내가 다시금 소중하고 고맙게 다가온다. 뒤이어 마주한 '이상형'에 대한 작가의 문답은 대단한 조건이 아니라 나의 가장 못나고 유치한 모습까지 온전히 품어주는 사람, 그 사람과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지는 존재가 진짜 이상형임을 일깨워 주었다. 밖에서는 근엄한 부장님 소리를 듣지만, 아내 앞에서 비로소 허술한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지금이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달은 완벽한 이상형의 모습이다. 

서툰 시작 이후의 시간이 숨가쁜 달리기 같았다면, 책 속에 적힌 ‘같이 가’라는 짧은 한마디는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것은 느린 상대를 위해 기꺼이 속도를 줄이고 평범한 일상의 보폭을 맞추는 다정한 신호였다. '장기 연애'의 일상처럼, 부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긴 장기 연애를 이어가는 우리 역시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고, 서로의 새치 잔머리를 놀리는 유치한 장난 속에 견고한 우주를 지켜왔음을 깨닫는다. 이 우주의 흔적들은 '사진'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잘 나온 인생샷보다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장난치며 흔들린 찰나가 진정한 사랑의 기록이라는 작가의 말에 스마트폰을 열었다. 업무용 캡처로 가득한 사진첩을 보며, 서로의 망가진 모습을 찍으며 배를 잡고 웃던 그 얼굴들을 떠올렸다. 정형화된 사진보다 장난 가득한 찰나가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증명해 준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밤새 썼다 지운 문자 한 통에 괜히 마음이 찡해지는 것도, 사랑이 우리를 다시 소년, 소녀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라는 말처럼, 결국 이 책은 ‘조건 없이 순수하게 사랑하고 아낌없이 표현할 때 진정한 행복과 나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우리에게 전달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성숙함을 강요받으며 사랑마저 체면으로 포장하지만, 사랑은 기꺼이 바보가 되는 마법 같은 일이다. 

이 책은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감정이 무뎌진 중장년층 직장인이나 권태로움에 익숙해진 오래된 연인들에게 권한다. 책을 통해 체면 뒤에 숨겨둔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잊고 지냈던 설렘과 든든한 일상의 고마움을 다시금 가슴 깊이 얻게 될 것이다. 가끔은 온 마음을 다해 유치해져도 좋다고,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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