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
땃꾸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컴퓨터 모니터의 엑셀 파일과 씨름하다 잠시 안경을 벗고 미간을 누른다. 부장이라는 직함, 어느덧 반백을 넘어선 나이, 그리고 ‘어른스러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오후다. 감정을 절제하고 체면을 차리는 것이 미덕이 된 무채색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나는 우연히 인스타툰 작가 땃꾸의 <사랑은 원래 좀 유치한 거야!>라는 책을 읽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유행인가 싶어 짐짓 무덤덤하게 책장을 넘겼지만, 연인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보며 내 가슴 한구석에서 잊힌 줄 알았던 뜨거운 온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린 얼마나 유치하게 사랑하고 있을까?’라는 작가의 질문 앞에서 나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돌이켜보면 이십 대의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집 앞 가로등 밑에서 밤새워 낯뜨거운 편지를 쓰던 찬란하게 유치하고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다. 

특히 책 속 '첫 만남'의 서툰 어색함과 설렘은 내게 아내를 처음 만났던 그날의 공기를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붉어지던 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날씨 얘기만 늘어놓던 바보 같은 내 모습이 소환되자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겼던 아내가 다시금 소중하고 고맙게 다가온다. 뒤이어 마주한 '이상형'에 대한 작가의 문답은 대단한 조건이 아니라 나의 가장 못나고 유치한 모습까지 온전히 품어주는 사람, 그 사람과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지는 존재가 진짜 이상형임을 일깨워 주었다. 밖에서는 근엄한 부장님 소리를 듣지만, 아내 앞에서 비로소 허술한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지금이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달은 완벽한 이상형의 모습이다. 

서툰 시작 이후의 시간이 숨가쁜 달리기 같았다면, 책 속에 적힌 ‘같이 가’라는 짧은 한마디는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것은 느린 상대를 위해 기꺼이 속도를 줄이고 평범한 일상의 보폭을 맞추는 다정한 신호였다. '장기 연애'의 일상처럼, 부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긴 장기 연애를 이어가는 우리 역시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고, 서로의 새치 잔머리를 놀리는 유치한 장난 속에 견고한 우주를 지켜왔음을 깨닫는다. 이 우주의 흔적들은 '사진'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잘 나온 인생샷보다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장난치며 흔들린 찰나가 진정한 사랑의 기록이라는 작가의 말에 스마트폰을 열었다. 업무용 캡처로 가득한 사진첩을 보며, 서로의 망가진 모습을 찍으며 배를 잡고 웃던 그 얼굴들을 떠올렸다. 정형화된 사진보다 장난 가득한 찰나가 우리를 가장 우리답게 증명해 준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밤새 썼다 지운 문자 한 통에 괜히 마음이 찡해지는 것도, 사랑이 우리를 다시 소년, 소녀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라는 말처럼, 결국 이 책은 ‘조건 없이 순수하게 사랑하고 아낌없이 표현할 때 진정한 행복과 나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우리에게 전달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성숙함을 강요받으며 사랑마저 체면으로 포장하지만, 사랑은 기꺼이 바보가 되는 마법 같은 일이다. 

이 책은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감정이 무뎌진 중장년층 직장인이나 권태로움에 익숙해진 오래된 연인들에게 권한다. 책을 통해 체면 뒤에 숨겨둔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잊고 지냈던 설렘과 든든한 일상의 고마움을 다시금 가슴 깊이 얻게 될 것이다. 가끔은 온 마음을 다해 유치해져도 좋다고,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