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한 마리에 강아지는 아직 없어요 - 신동신의 두 번째 시집
신동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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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진료실은 늘 수많은 생명의 소리와 온기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진료를 모두 마치고 홀로 남은 밤이 되면, 문득 기묘한 적막감이 찾아오곤 한다. 수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매일 수많은 개와 고양이를 마주하지만, 정작 퇴근 후 나의 사적인 공간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온몸으로 격렬하게 반가움을 표현해 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오랜 갈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신동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고양이 한 마리에 강아지는 아직 없어요>는 나의 진료실 책상 위에서 묘한 공명을 일으켰다.

 

시인이 현대인의 고독과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 하필 고양이와 강아지를 무대에 올린 이유는 명확하다. 두 동물은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외로움을 다루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을 완벽하게 대변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홀로 보내는 시간의 미학을 아는 동물이다. 문을 닫고 들어가도 굳이 열어달라 조르지 않고, 저만의 자리에서 묵묵히 고독을 응시한다. 반면 강아지는 부재를 견디지 못하는 열렬한 사랑의 상징이다. 문밖의 작은 발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삶을 다해 소통과 연결을 갈망한다. 시인은 이 상반된 두 존재를 통해 우리 내면에 공존하는 '혼자이고 싶은 마음'과 '함께이고 싶은 마음'을 영리하게 짚어낸다.

 

시집 속에서 이미 존재하는 '고양이 한 마리'는 고독하지만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는 지금의 일상을 의미하고, 거실 한편에 자리가 비어 있는 '아직 없는 강아지'는 앞으로 도착할 새로운 인연과 소망을 뜻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이 부재를 결핍이 아닌, 다가올 온기를 향한 가능성의 시간으로 재해석하는 태도이다. 시인은 강아지가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제목 속의 ‘아직’이라는 단어는 무언가 비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따스한 기대를 품게 만든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있음은 / 없음을 지운다는 사실’이라는 시구처럼, 시인은 부재를 멈추어 있는 낙담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기꺼이 움직이게 만드는 다이내믹한 동력으로 바라본다.

 

수의사인 나에게 이 시집이 준 감각은 말수가 적은 고양이의 식은 발바닥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듯한 담백한 위로였다. 평소 병원을 찾는 고양이들을 보며 그들의 도도하고 독립적인 태도에 서서히 정이 들어가던 참이었다. 고양이의 그 조용한 거리감이 실은 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내 고독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다정한 배려였음을 시집을 읽으며 깨닫는다. 내 곁에서 무심히 식빵을 굽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주는 고요한 안정감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언젠가 마당이나 거실을 와다다 뛰어다니며 꼬리를 흔들어줄 강아지를 상징하는 '아직'의 부재가 서글프기보다 오히려 설레는 기다림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외로움을 지우려 하지 않고, 해질녘 방 안의 적막을 그대로 응시하면서도 끝내 희망의 창문을 열어두는 시선의 온도가 참 좋았다.

 

동물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사람 마음의 빈자리를 치료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다정한 문장들일지도 모른다. 고양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이들, 혹은 마음속에 자신만의 '강아지'를 기다리며 고독을 견디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집을 펼쳐보길 권한다. 지금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고양이 한 마리가 주는 담담한 위로를 누리다 보면, 언젠가 강아지 같은 눈부신 온기가 우리의 삶을 마주하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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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못버는 걸까 안버는 걸까
아이언 원 지음 / 글로세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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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직장인이라는 안전망 속에서 살아왔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안주하며 ‘이 나이에 내가 뭘 새로 시작하겠어’, ‘자본과 스펙이 부족한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이 푸념들은 실행을 미루기 위한 비겁한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스스로를 철저히 ‘돈을 못 버는 환경에 처한 사람’이라 정의하며 위안을 삼아왔다.

그러다 마주한 책의 한 구절은 내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깨부수었다. ‘돈을 못 버는 사람은 없다. 환경과 조건을 핑계 대며 기회 앞에서 행동하지 않는, '안 버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50년을 살아오며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가난의 정당성이 무참히 깨져 나갔다. 저자는 초등학교 졸업과 고아원 출신이라는 극심한 역경 속에서도 결핍을 성장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아 자수성가했다. 그런 삶 앞에서 내 환경을 탓했던 지난날은 그저 생각의 전환을 거부한 패배주의의 산물이었다. 결국 돈을 못 버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아 안 버는 것이었다.

내 삶에도 기회는 여러 번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완벽한 준비'를 핑계로 뒷걸음질 쳤다. 저자는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사람은 평생 시작할 수 없다’고 매섭게 꼬집는다. 조건이 갖춰 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행동하면서 조건을 만들어가야 했다.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개선하는 'PDCA(Plan-Do-Check-Action)'의 순환처럼 말이다. 부자는 기회를 보고 즉시 움직이지만, 가난한 자는 핑계를 찾고 멈춘다. 나 역시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돈을 '안' 버는 삶을 선택해 왔던 셈이다. ‘환경을 탓하는 순간, 당신의 성장은 거기서 멈춘다’는 경고처럼, 나는 내 손으로 성장과 성공의 기회를 버리고 있었다.

50대라는 나이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변명하기에 가장 좋은 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오늘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빠른 날이다. 나는 오랫동안 대오던 ‘핑계’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완벽한 타이밍이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게으름을 버릴 것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에, 핑계를 차단하는 실행력을 내 삶을 이끄는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을 것이다. 이제는 나이와 환경을 변명 삼아 기회를 외면하지 않겠다. 생각의 전환을 통해 주도적으로 기회를 잡고, 행동하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진짜 '돈을 버는 삶'을 향해 오늘 첫발을 내딛는다.

나이와 환경, 스펙을 변명 삼아 핑계의 안락의자에 주저앉아 있는 모든 직장인에게 이 책을 필독서로 추천하며, 완벽한 타이밍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행동이 곧 부를 거부하는 ‘안 버는 선택’임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결국 결핍을 성장의 무기로 삼는 마인드셋의 전환을 통해 주도적으로 기회를 포착하고 즉시 움직이는 강력한 실행력을 장착한다면, 우리도 마침내 '돈을 버는 삶'으로 완전히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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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AI 전환
오형섭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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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직은 AI와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동물용 의약품을 개발하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책임자(QC)로서 나의 하루는 데이터와의 전쟁이다. 엄격한 가이드라인 속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해야 하기에, 경영진이 던진 AI 도입은 기회보다 리스크로 다가왔다. 생명과학 무대에서 AI의 환각 현상이나 보안 사고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 '한 권으로 끝내는 AI 전환>은 기술 예찬론의 뻔한 내용이 아닌 조직 운영 체계의 재설계라는 목표를 제안하고 도달 과정을 안내하는 현실적인 지침서다.

AI 전환(AX)의 본질이 기술 선택이 아닌, 조직과 사람의 변화관리에 있다고 말한다. ‘AI의 성공 여부는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조직의 준비 수준과 실행 역량에 달려 있다’라는 주요 문장은 QC 책임자로서 내가 가졌던 고민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냈다. 많은 조직이 기술만 도입한 채 기존 프로세스를 고수하느라 실패하지만, 진정한 전환은 AI를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정의하고 기존 운영 체계와의 융합을 이루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바이오 스타트업 시선에서 가장 와닿은 부분은 핵심 기술 요소인 RAG(검색 증강 생성)와 AI 에이전트의 결합이었다. 바이오 기업의 표준작업지침서(SOP)와 실험 데이터는 고유의 맥락을 가진 자산이다. 저자의 ‘아무리 뛰어난 거대언어모델(LLM)이라도 조직 고유의 맥락과 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문장은 나와 우리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흩어진 미정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가공하는 데이터 구조화 역량이야 말로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오차를 잡아내는 에이전트로 작동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인 것이다.

또한, 속도보다 보안 사고와 편향성을 통제할 수 있는 AI 거버넌스의 조기 구축이라는 지적은 규제가 까다로운 품질관리 프로세스에 실질적인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안전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AI 전후의 가치를 평가하는 성과 측정 전략이 선행되어야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책에 수록된 진단표와 유스케이스 발굴 캔버스는 내게 규제와 혁신의 접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실무적 확신을 주었다.

'한 권으로 끝내는 AI 전환'은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넘어, 어떤 조직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술의 변화보다 그 기술이 조직의 업무, 의사결정, 책임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집중하라는 조언은 혁신을 고민하는 모든 관리자에게 필수적이다. 책에 담긴 통찰과 설계 양식을 나침반 삼아, 우리 조직만의 안전하고 단단한 AX 로드맵을 그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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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누구의 것인가 - 인구 감소 시대의 토지 문제와 활용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가라시 다카요시 지음, 윤재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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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게 땅과 집은 인생의 가장 확실한 징검다리였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고, 대출을 얹어 서울 변두리라도 내 집 한 칸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나와 가족을 지키는 유일한 생존 공식이라 믿어왔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배신하지 않는 자산이었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자석은 전국의 사람과 돈을 빨아들이며 끊임없이 팽창했다. 그러나 50대에 접어들어 마주한 오늘의 국토는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나 있다. 서울은 밀려드는 인구와 인프라로 비대해져 숨이 막힐 지경인데, 한 걸음만 지방으로 물러서면 쓸쓸한 적막감과 함께 지방 소멸의 징후가 도처에 가득하다. 이 기묘한 불균형 속에서 이가라시 다카요시가 던진 <토지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책 제목을 넘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향한 무거운 경고로 다가온다.

저자는 인구 감소 시대를 맞이한 사회에서 기존의 근대 사유권의 한계를 정면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소유권자가 행방불명되거나 상속인이 권리를 포기하여 관리되지 않는 토지가 급증하는 현실은, 개인이 권리만을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근대적 사유권 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는 저자의 일침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소유주가 방치해 동네의 흉물이 된 농어촌의 빈집, 상속인이 누군지 몰라 세금만 밀린 채 묶여 있는 도심의 소유 불명 토지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땅을 사두기만 하고 돌보지 않아도 개인의 절대적 재산권이라는 이유로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손대지 못하는 현 사법 체계는, 사람이 줄어드는 시대에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소유권은 결국 이웃과 공동체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폭력이 될 뿐이다.

제시하는 해법의 핵심은 현대 총유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저자는 ‘인구 감소 시대의 토지는 개인이 독점하는 자산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으로 관리하고 이용하는 현대 총유의 자산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처음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급진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었지만,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유재산권의 본질은 존중하되, 소유자가 내팽개친 땅과 공간을 지역 공동체가 협동조합이나 자치회를 통해 마을 주차장, 쌈지공원, 공동 텃밭으로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연어주자는 제안이다. 땅의 가치를 소유가 아닌 활용에서 찾자는 이 발상의 전환이 우리가 대면한 공간의 위기를 극복할 열쇠다.

현재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가장 큰 병폐는 서울의 일극 집중과 그로 인한 지방의 붕괴다. 지방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가고, 남겨진 지방의 토지와 주택은 공동화되어 자산 가치를 잃어간다. 반면 서울은 과밀화로 인한 극심한 경쟁과 주거비 상승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라는 재앙을 맞이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저자가 제안한 성장관리정책이 우리 국토 계획의 중심에 서야 한다. 지자체마다 무의미한 신도시 개발이나 산업단지 유치 경쟁을 벌일 게 아니라, 거주 구역을 중심부로 모으는 계획적 축소(Compact City)를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인프라 유지 비용을 줄이고 외곽 토지를 자연의 영역으로 보존해야만 비로소 건강한 지방 균형 발전의 기틀이 마련된다.

국토라는 한정된 자원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방치된 사유지를 지역사회가 상생하는 공간으로 되돌려놓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우리는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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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
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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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위인들의 결단이나 찬란한 사상의 발전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는 소금 한 줌, 요리에 풍미를 더하는 후추 몇 알, 그리고 매일 아침 출근길 도로를 메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검은 액체, 즉 물질의 통제권을 쥐기 위한 처절한 경제적 욕망이 인류 문명의 진짜 동력원이었다.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는 물질이 가져온 문명의 변화를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낸다. 저자는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라는 다섯 가지 일상적인 물질을 실마리로 삼아, '물건은 어떻게 돈이 되고, 돈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를 둘러싼 일상이 단순한 물질의 소비가 아니라, 거대한 글로벌 패권 경쟁의 결과물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된다.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꾼 동력은 모두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특정 물질의 통제권을 쥐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세계화와 무역, 그리고 지정학적 전쟁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핵심으로 다룬다. 역사와 문명 속에 숨어 있던 수많은 이야기가 이 문장 하나로 관통된다. 고대 로마 군인들의 급여가 되었던 소금의 권력, 중세 유럽에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 맞먹으며 대항해시대라는 피비린내 나는 세계화를 촉발한 향신료의 경제학은 물질이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추위를 이기기 위한 생존 도구였던 모피가 신분과 부의 상징으로 변모하며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을 이끌었다는 비화 역시, 물질의 탐닉이 국경의 지도를 어떻게 다시 써 내려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현대 자본주의의 혈액인 석유를 다룰 때 극에 달한다. 저자는 석유가 단순한 에너지 자원을 넘어, 미국의 달러 패권 체제를 유지하는 거대한 정치 경제적 무기임을 폭로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지정학의 중심축은 언제나 석유의 흐름과 일치했다. 특히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국과 이란의 끝없는 갈등과 전쟁의 위기는 이 자본주의적 물질의 독점권이 낳은 가장 비극적인 단면이다. 1950년대 이란의 석유 국유화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서구 열강의 개입, 이후 발생한 이란 혁명과 이어진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는 석유라는 물질을 지배하는 자가 곧 세계를 지배한다는 냉혹한 국제 정치의 룰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이란 전쟁의 위기 이면에는 종교나 이념의 대립보다, 석유 결제 대금으로서의 '페트로달러' 체제를 수호하려는 미국의 생존 전략과 이에 저항하는 자원 민족주의의 처절한 혈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의 이면에는 통념을 깨는 경제적 교환과 자본의 탐욕이 숨어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박물관의 유물이나 뉴스 속의 딱딱한 국제 분쟁이 실은 내 방 침대 머리맡, 내 식탁 위 물질들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인류의 문명은 이념의 장막을 넘어 물질을 차지하고 부와 권력을 쥐려는 치열한 경쟁과 전쟁에 의해 크게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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