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답이다
김규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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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0대, 직장 생활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었다. 내 어깨 위에는 초등학교 5학년 막내,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중학교 2학년 둘째, 그리고 인생의 첫 큰 시험을 앞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고등학교 1학년 큰아들이 있다. 삼형제 아빠라는 책임감과 나이를 먹어갈수록 커지는 은퇴 후 직업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늘 무거웠다. 대한민국 50대 가장들은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미 아이들을 다 키우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한창 돈 들어갈 곳 많은 자녀를 둔 이들에게 <월급이 답이다>는 삶의 지향점을 완전히 바꾸게 만드는 책이다.

요즘 세상은 온통 퇴사와 파이어족을 외치며 직장을 당장 탈출해야 할 감옥처럼 묘사하곤 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저자는 “월급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성을 쌓을 수 있는 단단한 터전”이라며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23년간 묵묵히 버텨낸 저자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며, 내가 매달 받아 든 '월급'이 아이들의 학원비와 따뜻한 밥상이 되어준 고마운 '기초 자산'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다. 그동안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동기들을 부러워하며, 적은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듯해 속상했던 마음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아찔한 일이다.

무너지지 않는 삶의 '5대 기둥'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40대에 조경기능사를 시작으로 9년간 100개의 자격증을 따내고, 300권의 책을 읽으며, 매일의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4중 연금 방어선과 투자의 원칙을 세운 저자의 실천력에 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요즘 말로 ‘갓생’이다. 그동안 나이가 많아서, 혹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안주했던 내 모습이 몹시 부끄러워졌다. 비록 저자보다 나이를 15세 정도 더 먹은 상황이라 아무리 노력하고 ‘갓갓생’을 살아도 저자와 똑같은 자리에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내 삶의 성벽을 쌓아 올리겠다는 결심을 이끌어내기엔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늘 "꾸준히 공부해라", "성실해라" 잔소리만 늘어놓았던 아빠로서 깊은 반성도 밀려왔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비바람이 치는 날에도 꾸준히 회사에 출퇴근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버텨낸 것 또한 사실이다. 저자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매일 한 문제를 풀고 책 한 페이지를 읽어 나간 '위대한 평범함'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냈다. 다행히 평소 책 읽는 아빠의 뒷모습은 아이들에게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지만, 무언가에 새로 도전하는 역동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침 지금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 중인 중2 둘째 아이가 있다. 이번 기회에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시험에 도전해 보려 한다. 말로만 하는 훈계보다 아빠가 함께 공부하는 뒷모습이 삼형제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월급이 답이다>는 나 같은 50대 직장인 아빠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고 실천을 이끌어주는 최고의 가이드북이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나의 직장이, 그리고 그곳에서 땀 흘려 일한 보상으로 받는 월급이 우리 삼형제와 가족의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굳건한 기초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각인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늦음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도전하는 아빠로 변신한 나의 모습이, 앞으로 우리 가정의 더 큰 행복과 안정감을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하며 이 시대의 모든 지친 아빠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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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은 언제나 내편
박현옥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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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문득 브레이크를 밟고 싶을 때가 있다. 번 아웃되기 전에 숨돌릴 틈도 필요하다.  가장이라는 무게감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직장과 집만 무한 왕복하다 보니 외로움이라고 말 하긴 좀 약한 거 같은데 뭐라고 딱 꼬집기 어려운 가슴 속 빈 공간 같은 감정이 들 때가 있다. 삼형제가 커가는 동안 아내의 얼굴에는 피로가 쌓여가고 정작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진한 애정 표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산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데 왜 우리 마음은 쓸쓸해질까. 나만 그럴까? 그런 고민에 <오름은 언제나 내 편>을 읽으며 답을 찾은 듯하다. 저자가 제주로 내려와 4년 동안 오름을 오르며 찾아낸 치유와 상생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번 휴가에는 온 가족의 손을 잡고 제주의 오름을 올라 보자고 결심한다.

오름은 ‘사람에게 왜 왔는지, 무엇이 힘든지 묻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내어주며 온전한 내 편이 되어준다’고 말한다. 마음 깊이 파고든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유를 묻고 자격을 요구한다.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늘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나에게 '이유 없이 내 편이 되어준다'는 오름의 존재는 그 자체로 거대한 치유로 다가온다. 늘 학업에 지친 아이들과 가사에 지친 아내에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이런 무조건적인 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그 품이 되어 주지 못한다. 이번 가족 여행에서는 바람이 풀을 스치는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오름이 건네는 침묵의 위로를 가족들과 함께 온몸으로 경험하고 싶다. 조용함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어떤 모습, 어떤 위로를 줄지 기대된다.

오름을 그저 풍경이 예쁜 관광지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곡선 뒤에 숨겨진 제주 오름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평화롭기만 한 그곳에는 제주 4·3 사건의 아픔과 일제강점기 군사기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저자는 ‘오름은 상처받은 영혼을 말없이 품어주며 치유를 선사하는 공간이자, 제주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상생의 현장’이라고 알려준다. 이 여행이 단순한 휴양을 넘어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름의 아픈 역사를 마주하고 아이들이 상처를 포용하고 타인과 공존하는 넓은 마음을 배우기를 바란다. 나도 배우길 바란다.

‘바쁜 현대인에게 느림의 미학을 알려주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 방식을 보여주는 안내서’로 오름을 정의한다. 도시의 빠름을 벗어나 오름을 오르는 순간만큼은 걷기의 속도로 느림과 여유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서로의 얼굴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서로의 마음이 들릴 것 같다. '가고 싶은 제주 오름 베스트 14곳'을 보며 벌써 우리 가족은 함께 걸을 코스를 고르고 상상한다.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제주 바다와 한라산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말로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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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감각 수업
나도움.박길영 지음 / 책스미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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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감각 수업>은 AI를 처음 접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던 나에게 기술 매뉴얼이 아닌, AI 시대를 살아갈 길잡이가 되어준 고마운 책이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요즘,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늘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불안을 기술을 더 빨리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의 인간다운 감각을 깨워야 할 때라는 말을 하고 있다. 책에 실린 8가지 감각에 대한 이야기는 AI 초보자인 나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준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마음속에 다듬어야 할 네 가지 내면 감각을 짚어준다. 첫 번째는 두려움 감각이다. AI라는 낯선 존재 앞에서 느끼는 거부감과 어색함은 부끄러워하거나 회피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감정은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다는 설렘의 증거이자, 인간다운 배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면의 신호였다. 불안을 호기심으로 바꿀 때 비로소 기술과 마주할 용기가 생겨났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대화를 시작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질문 감각이다. 그동안 나는 AI에게 모호하고 추상적인 질문만 던져왔다. 하지만 좋은 답변은 오직 좋은 질문에서만 나온다. 내가 맥락과 의도를 담아 구체적으로 질문할 때, AI는 비로소 나의 한계를 확장해 주는 유능한 파트너가 된다.

하지만 책은 AI의 유능함에 온전히 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세 번째 감각인 의심 감각이 필요한 이유다. AI는 놀라운 속도로 지식을 출력하지만 그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럴듯한 답변 속에 숨은 오류나 할루시네이션(가짜 정보)을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인간의 눈이 없다면, 우리는 기술의 왜곡에 갇히게 된다. 나아가 AI의 초안을 빌려 쓰더라도 최종 결과물을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내보낼 때는 반드시 네 번째인 책임 감각을 가져야 한다. 딸깍 한 번으로 모든 게 완성되는 시대에 편리함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을 최종 검수하고 그 결과에 따른 사회적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의 태도를 바탕으로, 책은 일상에서 기술과 공존하며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네 가지 실천 감각을 이어 제안한다. 먼저 기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경계 감각이 필요하다. AI가 아무리 지능적이어도 인간의 감정과 영혼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음을 선을 그어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기술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몸으로 직접 겪으며 체득하는 아날로그적 삶의 중요성을 뜻하는 경험 감각이 다가왔다. AI는 데이터로 학습하지만 인간은 오감으로 세상을 배운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직접 겪어낸 생생한 경험만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서사가 된다.

또한 효율성이 필요한 순간에는 AI를 적극적으로 호출하되, 깊은 사색과 창조적 영감이 필요한 순간에는 과감히 AI를 끄고 멈춰 설 줄 아는 타이밍 감각이 중요하다. 이 켜고 끄는 타이밍을 스스로 통제하는 힘이 곧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십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기술의 종착지가 결국 인간을 향해야 한다는 사람 감각이다. AI를 다루는 목적은 결국 사람을 이롭게 하고 공동체를 살리기 위함이다. 차가운 화면 너머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연결되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AI 시대의 최종적인 목표이다.

'속도보다 기준', AI를 얼마나 빨리, 많이 쓰느냐 보다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도구로 AI를 통제하느냐가 핵심이다. 거대한 기술의 파도 속에서도 매몰되지 않고 나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 그것이야 말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만의 진짜 경쟁력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되었다.

AI의 빠른 변화에 불안을 느끼며 도구 사용의 중심과 기준을 잡고 싶은 생성형 AI 초보자와 단순한 기술 사용법을 넘어 인간만의 고유한 주체성과 경쟁력을 지키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권한다. 인간다운 감각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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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불변의 법칙
데이비드 오길비 지음, 최경남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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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예술이 아닌 ‘판매의 과학’으로 정의한 데이비드 오길비의 <광고 불변의 법칙>은 현직 마케터뿐만 아니라, 평소 기발한 광고를 즐겨보고 매력적인 광고 카피에 마음을 빼앗기던 한 명의 평범한 소비자이자 일반인인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과 오랜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그동안 나는 시각적으로 화려하거나 감성을 자극해 눈물을 쏙 빼놓는 광고, 혹은 온 동네 사람들이 흥얼거리는 중독성 있는 유행어를 남긴 광고가 ‘좋은 광고’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축제나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예술적인 영상미를 보며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오길비는 책의 첫 장부터 나의 이러한 고정관념을 아주 명쾌하고 단호하게 부수어 버렸다. “광고의 유일한 목적은 예술이 아니라 실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그의 핵심 메시지는 광고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내가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공전의 히트 광고들이 철저한 데이터와 집요한 리서치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오길비가 남긴 전설적인 롤스로이스 광고 카피,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신형 롤스로이스 안에서 가장 큰 소음은 전자시계 소리입니다’라는 문장은 어느 날 밤 천재적인 영감이 떠올라 번뜩이며 써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제품의 기술력과 기계적 정밀함을 증명하기 위해 무려 3주 동안 관련 자료를 밤새워 공부하고 찾아낸 구체적인 팩트의 힘이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제품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명확한 편익(Benefit)’을 정직하고 신뢰감 있게 전달하는 헤드라인과 카피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렌지 주스 캠페인(썬키스트)의 비화는 카피의 무서운 위력을 다시금 실감케 했다. 1900년대 초, 오렌지 과잉 생산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농가들을 살린 것은 "오렌지를 마셔라(Drink an orange)"라는 단 한 줄의 정직하고 명확한 카피였다. 당시 사람들은 오렌지를 그저 쪼개 먹는 과일로만 생각했지만, 광고는 '즙을 짜서 주스로 마시면 한 번에 오렌지 2~3개를 소비할 수 있다'는 행동 양식의 변화와 명확한 편익을 제안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정직하게 전달할 때 비즈니스의 판도가 뒤흔들린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해서웨이 셔츠’ 광고에서 모델에게 검은 안대를 씌워 소비자로 하여금 서사를 상상하게 만든 ‘스토리 어필’ 기법이나, 비누를 보습 화장품으로 재정의한 ‘도브’의 포지셔닝 전략은 카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짜릿한 지적 희열을 선사했다. 한 줄의 카피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바꾸고 비즈니스의 판도를 뒤흔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광고 기획자들을 위한 전공 서적이 아니다. 세상을 설득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한 최고의 실전 지침서다. 매일 수천 개의 광고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나는 광고를 볼 때 단순히 ‘재밌다’고 넘기지 않는다. ‘이 광고는 어떤 팩트로 나를 설득하고 있는가?’, ‘내 마음을 움직인 저 카피의 핵심 편익은 무엇인가?’를 한 번 더 곱씹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의 힘과 비즈니스의 본질을 동시에 배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고전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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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과 전쟁 - 무기화된 화학 이야기
앨리스 러브조이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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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에게 '코닥(Kodak)'은 단순한 브랜드 그 이상이다. 청춘 시절, 월급을 모아 처음 샀던 손때 묻은 필름 카메라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들을 인화해 준 삶의 동반자였다. 필름 한 롤을 아껴 가며 셔터를 누르던 그때 그 필름 카메라의 향수는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최근 주말이면 노란색 로고의 코닥 의류를 가족들과 패밀리 룩으로 맞춰 입고 외출하곤 하는데, 나의 추억이 요즘 세대에게도 '힙한 문화'로 소비되는 것 같아 묘한 뿌듯함도 느꼈다. 하지만 앨리스 러브조이의 <필름과 전쟁>을 읽고 난 지금, 내가 평생 품어온 그 노란 상자의 낭만 뒤에 얼마나 어두운 그림자가 숨겨져 있었는지 직시하게 되었다. 추억의 대명사가 사실상 국가 권력과 결탁해 전쟁을 지원한 거대 군수, 화학 기업이었다는 사실은 가치관을 흔들 만큼 지독한 배신감을 안겼다.

바이오 의약품 스타트업에서 평생 물질의 정제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가이드라인에 따른 엄격한 품질관리를 책임져온 나에게, 저자의 시선은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이 책은 코닥 필름을 아름다운 추억의 기록 매체가 아니라, 독가스나 폭약과 완벽히 호환되는 '화학 물질'로 철저히 환원하여 분석한다. 필름의 주원료인 나이트로셀룰로스가 전황에 따라 언제든 살상용 군수물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일 실험실에서 화합물의 독성과 순도를 추적하는 내 직업적 감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기업이 가진 기술과 원재료가 시대의 광기와 결합했을 때, 인류를 향한 칼날로 얼마나 쉽게 돌변할 수 있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약과 독의 차이는 물질의 차이가 아니라 그 양의 차이이다"라는 독성학의 명언처럼, 평화로운 일상의 도구가 순식간에 살상 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중용도성(Dual-Use)'의 위험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특히 코닥이 인류 최악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였다는 대목에서는 온몸에 전기가 감전된 듯한 전율이 일었다. 코닥은 필름 에멀션을 제조하며 쌓아온 독보적인 화합물 분리 및 정제 노하우를 활용해 군사용 우라늄을 추출하는 공정을 도왔다. 그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바이오 업계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순물을 1ppm 단위까지 걸러내던 바로 그 고도의 '정제 기술'이, 인류를 파멸로 이끌 핵연료를 가장 순도 높게 뽑아내는 데 쓰인 것이다. '내가 평생 다루던 정제 기술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잔인한 아이러니였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처럼 차라리 몰랐다면 편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살상 무기로 전환이 가능한 물질과 기술에 대해 국가 간 엄격한 조약을 맺고 철저히 감시,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책임감을 절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물질과 기술의 선함은 결코 자율성에만 맡겨둘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품질관리 책임자로서 가장 크게 분노한 내용은 '노란 상자의 은폐' 사건이다. 1951년 미국 정부의 핵실험 직후 대기 중 방사능 낙진이 쏟아졌을 때, 민감한 감광 재료를 다루던 코닥은 필름의 검은 반점을 통해 오염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챘지만, 그들은 침묵을 택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정부와 결탁하여 치명적인 데이터를 은폐한 것이다. 나아가 1988년 유해 화학 용매를 유출하고도 ‘우리는 화학 기업이 아니라 노란 필름 상자를 만들 뿐’이라던 대변인의 기만은, 감성 브랜딩 뒤에 숨은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코닥이 '노란 상자'라는 감성적인 포장 뒤로 방사능 낙진과 데이터 은폐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숨겼던 과오는, 오늘날 우리 바이오 벤처가 데이터 무결성(Data Integrity)을 잃었을 때 마주할 파멸의 미래를 강력하게 경고한다. 숫자를 조작하고 데이터를 숨기는 순간, 기업은 코닥이 걸었던 위선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필름과 전쟁>은 이윤보다 생명과 정직함을 담보하는 품질관리가 왜 기업의 가장 강력한 브레이크이자 존재 이유여야 하는지, 나에게 가장 무겁고도 엄중한 숙제를 남겼다. 기술은 투명해야 하고, 데이터는 결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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