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 - 나나와 찌돌이의 연애 일기
정오목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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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사랑은 참으로 뜨겁고 부지런했다. 서랍 깊은 곳을 뒤적이다 보면 빛바랜 ‘50일 도전 다이어리 북’이 나온다. 지금의 아내이자, 그때는 내 세상의 전부였던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겠다며 매일 밤 펜을 쥐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는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채워진 페이지마다 풋풋한 진심이 빼곡했다. 퇴근 후 피곤한 눈을 비벼가며 한 칸 한 칸 채워 넣던 그 시절의 나는, 참 지독하게도 낭만적이었다.

어느덧 50대 중반,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르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삶의 무게에 치여 감성은 무뎌졌고, ‘커플 다이어리 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온몸에 닭살이 돋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이가 몇 개인데 이런 간지러운 걸 해?’ <우리 사이 사용 설명서>를 처음 마주했을 때, 솔직히 나도 모르게 지레 어색한 마음의 빗장부터 걸어 잠갔다. 나나와 찌돌이라는 귀여운 캐릭터와 핑크빛 표지는 그저 파릇파릇한 청춘들의 전유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매일 사랑하고 가끔 다투는 보통의 연인들을 위해 쓰였다는 이 책의 장을 한 장씩 넘겨보며, 나는 이 기록이 오래된 부부에게도 꼭 필요한 ‘소통의 처방전’임을 깨달았다. 책은 단순히 달콤한 말만 나누라고 하지 않는다. 우울하거나 힘들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구체적인 방법을 공유하게 하고, 서로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장점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우리는 십 수년을 함께 살며 서로를 다 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상대가 오늘 왜 한숨을 쉬었는지, 어떤 위로를 원하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

익숙함이라는 타성에 젖어 아내의 지친 어깨를 외면하진 않았던가. 이 책은 평소 말로 하기 수줍었던 마음의 진심들을 글과 답안으로 남기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두 사람만의 로맨스 북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젊은 시절처럼 해보고 싶은 데이트 코스를 함께 골라보며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는 칸을 메우다 보면, 무채색 같던 일상 속에서도 다시금 아내와 함께 걸어갈 앞날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문득 이번 주말에는 거실 테이블 위에 이 책을 슬며시 올려두고 싶어진다. 50일 다이어리를 채우던 청춘의 열정은 아닐지라도, 십여년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를 향한 깊은 존중과 사랑을 담아 한 칸씩 채워가고 싶다. ‘여보, 우리 오랜만에 서툴지만 진솔한 대화 한번 나눠볼까?’ 이 책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연인들은 물론, 오랜 익숙함에 가려져 대화가 소원해진 중년 부부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책 속의 진솔한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을 통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두 사람만의 소중한 로맨스를 단단하게 다시 채워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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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 ㅣ 현북스 청소년소설 25
이희준 지음 / 현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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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고등학교 2학년, 우리도 드디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 선배들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푸른 바다 사진을 보며, 친구들과 쉬는 시간마다 숙소 방 배정이나 밤에 몰래 라면을 끓여 먹을 계획 같은 철없는 소리를 나누며 마냥 싱글붕글 웃었다. 캐리어에 새로 산 옷을 채워 넣고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은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제주도의 눈부신 풍경은 열일곱 남학생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묘한 서늘함이 스친 것은 소설 <추모시>를 읽고 난 후였다.

이야기는 우리와 똑같은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 주인공, '박시윤'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시인이 꿈이었던 시윤이는 수학여행 당일 심한 독감에 걸려 홀로 배에 타지 못했고, 그날 밤 친구들이 탄 배가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선박 침몰 참사를 뉴스로 지켜보아야 했다. 교내 2학년 학생 250명이 사망하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시윤이가 느꼈을 절망과 혼자 살아남았다는 지독한 부채감은 가상의 서사를 넘어섰다. 그것은 바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마주했던 우리 사회의 실제 비극과 그대로 겹쳐 흘렀다. 우리와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미래를 꿈꾸던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형과 누나들이 잠긴 내년 봄 제주도의 바다는 더 이상 마냥 푸르고 예쁘게만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깊고 차가운 바다 밑에는 여전히 못다 한 이야기들과 청춘의 비명이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언저리가 먹먹해졌다.

참사 이후 시간이 흘러 학교로 돌아온 시윤이는 교지에 실을 '추모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현실은 잔인했다. 인터넷과 사회 곳곳에는 희생자들을 향한 차가운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너무나 쉽게 소비하고 외면했다. 이 소설은 그 거대한 냉소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말하기 위해, 쓰이지 않는 시를 쓰기 위해 애쓰다 점점 시가 되어 가는 소년"의 소리 없는 고군분투를 담아낸다. 시윤이는 세상의 냉소에 굴하지 않고, 슬픔이 멈춰 선 유족들의 공간을 찾아가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마주하고 친구들의 흔적을 짚어가며 기어이 한 줄의 시를 완성해 나간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처음에는 평범한 산문 형태였던 소설의 문장들이 시윤이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짧아지고 행이 갈라지며 소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추모시'로 완성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문학적 실험은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자, 사회적 혐오에 휩쓸리지 않고 타인의 고통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기억을 통한 연대'의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치열한 애도의 과정을 보며, 고작 즐거운 추억을 쌓겠다고 들떠 있던 내 가벼운 마음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내년의 수학여행'이라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랐으나 결코 닿지 못한, 영원히 멈춰버린 내일이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내년에 갈 수학여행을 슬퍼하며 취소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더욱 치열하게 즐겁고, 안전하게,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그 시간을 만끽하기로 다짐한다. 살아남은 시윤이가 결국 혐오의 언어를 이겨내고 시를 통해 친구들의 존재를 증명해 냈듯,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극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떳떳하게 마주하고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공항에 내려 처음 마주할 그 섬의 바람 속에서, 나는 철없는 남학생의 해맑은 웃음 뒤로 아주 작은 애도의 마음을 담으려 한다. 말할 수 없는 슬픔마저 끝내 붙잡아 보듬는 문학의 힘을 믿으며, 우리가 누리는 이 눈부신 봄날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내게 지나간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나기를 당부하며, 이 눈부신 봄날을 마음껏 누리되 그 이면의 가치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책은 참사의 자극적인 재현에 머무는 대신 남겨진 이들의 주체적인 애도와 성장을 밀도 높게 그려낸 수작이다. 문학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든 청소년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공감과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을 깨닫고, 거대한 슬픔을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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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비하인드 컬렉션 : 종족의 숨겨진 이야기 ㅣ 전사들
에린 헌터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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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멀찍이 돌아가던 평범한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다. 털을 세우고 나를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이 꼭 공격할 것만 같아 무서웠고, 밤마다 들려오는 울음소리도 소름이 끼쳤다. 나에게 고양이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동물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에린 헌터의 <전사들 비하인드 컬렉션: 종족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게 되었고, 책 속 고양이들의 삶과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며 나의 편견은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이야기는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강렬한 사건으로 긴장감 넘치게 시작된다. 천둥족을 배신하고 쫓겨난 악당 고양이 타이거클로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떠돌이 고양이들과 그림자족을 휘어잡아 다시 우두머리가 되려는 집념을 불태운다. 잔인한 인물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고양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무서운 겉모습 뒤에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했던 숨겨진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생존 투쟁의 이면에는 종족의 규율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따뜻한 사연이 흐르고 있다. 천둥족 치료사 리프풀은 규칙을 어기고 낳은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자매의 자식으로 위장해 키우기로 결심하는 슬픈 선택을 내린다. 평온한 겉모습 뒤에 자식을 향한 절박한 사랑과 희생이라는 진심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시던 아빠께서는 "부모가 자식을 지키기 위한 선택에는 언제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거운 책임과 사랑이 따르는 법"이라며 공감하셨다. 그러고는 "우리 아들도 겉만 보고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뒤에 숨겨진 따뜻한 진심을 먼저 알아봐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은 거대한 전쟁이 남긴 상흔을 극복해 나가는 고요한 심리적 흐름으로 이어진다. 대전투의 영웅 도브윙은 전쟁이 끝난 후 종족을 구했던 특별한 초능력을 잃어버린다. 남들은 모두 평화를 누리며 기뻐할 때 홀로 상실감과 슬픔을 겪지만, 이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평범한 전사로서 다시 발을 내딛는다. 그 모습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진짜 단단함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책은 '겉모습 뒤에 감춰진 저마다의 숨겨진 사정과 진심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인물과 사건의 연결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 속 고양이들이 겪는 사건을 모두 따라가고 난 뒤, 학원 가는 길에 주차장 밑에 웅크리고 있는 얼룩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예전 같았으면 도망쳤겠지만 이번에는 가만히 서서 눈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빛 속에 두발 짐승과 함께도 아니고 종족 고양이도 아닌채 노숙과 배고픔을 버텨내야 하는 고단함이 보였다. 타이거클로처럼 강한 척을 하거나, 리프풀과 도브윙처럼 말 못 할 사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무지비한 공격용 무기가 아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사의 무기임을 이해하자 두려움은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이제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겁쟁가 아니다.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속으로 "안녕, 미아오"하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도망친다.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겉모습만으로 대상을 판단하는 또래 친구들에게 권한다. 고양이들의 삶을 통해 나와 다른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배울 수 있고, 주변의 작은 생명들을 편견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포용력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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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자본 - 인공지능 시대 당신을 위한 마지막 신분이동의 사다리
황유선 지음 / 예미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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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나의 쓸모를 고민하며 방황하던 중, 황유선 박사의 <언어자본>을 읽고 한가지 나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는 것으로 AI로 대체되지 않을 거라는 답을 얻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직장인으로 살아왔지만, 최근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의 등장은 나에게 도전자, 경쟁자를 넘어선 존재, 말로 다 못할 거대한 벽으로 다가왔다. 몇 초 만에 완벽한 문장과 리포트를 쏟아내는 기계 앞에서,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경력과 지식의 가치가 한순간에 무력해지는 듯한 서글픔과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에게 커다란 반전과도 같은 위로와 희망을 건넸다. 저자는 ‘AI 시대에 인간의 경쟁력은 AI보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AI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언어’를 갖는 것이다’라며 단호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돌파구를 보여준다. 완벽하지만 기계적인 문장이 판치는 세상일수록, 개인의 독창적인 경험과 깊은 사유가 녹아든 언어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는 논리는 가슴을 깊게 울렸다.

‘과거의 부가 정보와 자원, 기회를 선점함으로써 결정됐다면, 앞으로의 부는 고유한 인간의 가치를 소유한 사람에게 모일 것이다’라는 말은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관통한다. 새로운 시대의 권력이자 자산이 바로 '언어자본'인 것이다. 단순히 세련된 말솜씨를 뽐내는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성찰과 고유한 서사를 상대방에게 온전히 전달하여 신뢰와 관여를 이끌어내는 힘, 그것이 바로 진짜 언어의 가치였다.

‘말을 잘하는 것과 언어가 힘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우리에게도 알려준다. 이 본질적인 지적은 책에 수록된 LCI(언어자본지수) 자가진단을 거치며 더욱 뚜렷해졌다. '내공형(Inward)'과 '발현형(Outward)' 등 8가지 유형과 '샘-시내-여울-강-바다'로 이어지는 5단계의 축적 과정을 들여다보며, 내 말이 자산으로 쌓이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소모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짚어보게 되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5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단순히 은퇴를 앞둔 시점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성공, 사람과의 부딪침 속에서 나만의 이야기와 서사를 축적해 온 귀한 시간의 증거였다. 기계가 학습한 데이터에는 결코 담길 수 없는, 내가 현장에서 땀 흘리며 체득한 지혜와 동료들과 나누었던 감정들이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조직 안에서 신뢰받는 자산으로 길어 올리는 방법을 몰라 못했을 뿐이었다.

남의 말을 흉내 내거나 규격화된 정답만을 말하는 직장인의 소모적인 언어는 지양할 것이다. 대신 내 삶이 묻어나는 프리미엄 언어를 구사하며, 나만의 언어를 '바다'와 같은 깊이로 채워가는 진짜 ‘언어자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진짜 경쟁 상대는 AI가 아니라, AI를 도구로 삼아 자신의 언어자본을 극대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언어를 갖겠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화려하게 잘하겠다는 기술적 선언이 아니다. 내 삶의 주권을 온전히 쥐고,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 나가겠다는 깊은 다짐이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기둥을 세운 기분이다. 내 안의 진정한 자본인 '나만의 언어'를 차분히, 그러나 단단하게 다듬어 나가려 한다.

AI의 도래로 커리어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동시대의 직장인들과 리더들에게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증명할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자신의 언어 습관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삶의 경험을 강력한 신뢰와 영향력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실천적 전략을 명확히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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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
앤드루 리 지음, 김광수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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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출근길, 회사 로비에 걸린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날 선 문구를 마주한다.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며 이와 유사한 구호를 수없이 보아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뒤따른 것은 이름만 바뀐 보고서 양식과 피로감을 유발하는 일회성 이벤트뿐이었다. 진정 우리가 외치는 이것이 진짜 혁신일까? 50대에 접어든 직장인의 마음속엔 늘 채워지지 않는 의문과 회의감이 가득했다.

앤드루 리의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갈증 속에서 만난 단비 같은 책이다. 저자는 석기시대의 손도끼와 바퀴의 발명부터 현대의 인공지능(AI)과 CRISPR 유전자 가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운명을 바꾼 거대한 혁신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책에 뻐져들 수록, 직장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혁신 강박증’의 실체가 명확해진다.

우리는 흔히 혁신이라고 하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천재 한 명의 번뜩이는 영감, 혹은 세상을 뒤흔들 거대한 도약을 떠올린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혁신도 늘 그런 식이다. 단번에 매출을 몇 배로 불릴 기적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라는 압박. 그러나 저자는 ‘혁신은 고립된 천재의 영감이 아니라, 무수한 이들의 작은 개선이 쌓여 이루어진 협력의 결과물이다’라는 핵심 문장을 통해 인류의 진짜 혁신이 결코 단절된 도약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단언한다. 혁신의 진짜 동력은 천재성이 아닌, 끊임없는 ‘시행착오(Tinkering)’, 협력하는 ‘팀(Teams)’, 그리고 경계를 넘나드는 ‘교류(Trade)’라는 세 가지 축의 결합이다.

인류를 구한 수많은 발명품은 수천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누적의 결과물이다. 증기기관의 발전이나 복제 천연두 백신의 탄생도 홀로 빛난 천재성이 아니라 무수한 시행착오를 견뎌내고 이전의 기술을 점진적으로 개선한 산물이다. ‘위대한 도약은 언제나 작은 실패들의 축적 끝에 찾아온다’는 말은 우리 조직의 모습을 깊이 되돌아보게 만든다. 규칙과 규율을 강조하며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단 한 번의 실수에도 책임을 묻는 경직된 조직에서 어떻게 진짜 혁신이 피어날 수 있겠는가. 실패가 자산이 되지 못하고 기피 대상이 되는 순간, 혁신은 그저 말뿐인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

혼자가 아닌 ‘팀’과 오픈 이노베이션 같은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식은 나눌수록 커지며,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는 접점에서 진정한 진보가 일어난다’는 말처럼, 오늘날의 복잡한 세상에서 혁신은 고립된 개인의 연구실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부딪히고 소통하는 광장에서 태어난다. 50대인 내가 가진 오랜 현장 경험과 실무적 데이터, 그리고 후배 세대의 신선한 감각이 수평적으로 교류할 때 비로소 진짜 혁신의 싹이 트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여전히 수직적인 지시와 통제 속에서 혁신마저 ‘상명하복’식으로 지시하곤 한다.

진짜 혁신이 거창한 구호나 탑다운식 압박 속에 있는 것이 아님을 명쾌하게 증명한다. 혁신은 매일의 업무 속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작은 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보태는 건강한 팀워크, 그리고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의 교류 속에 피어난다.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 어울려 공생할 때 비로소 혁신의 생태계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핵심 문장들은 이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이제 회사의 공허한 혁신 구호에 더 이상 흔들리거나 자책하지 않고, 대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교류와 시도에 집중할 것이다. 후배들의 거친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수십 년간 쌓아온 품질과 프로세스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작은 실패쯤은 자산으로 삼도록 격려하는 것. 50대 직장인이 조직에 불어넣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진짜배기인 '혁신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조직의 성장을 이끄는 리더와 변화의 실마리를 찾는 직장인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통해 증명된 혁신의 본질을 명확히 제시한다. 거창한 구호에 현혹되지 않고, 일상의 작은 실패와 협력을 진정한 진보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실천적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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