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으로 가는 길
정형남 지음 / 애플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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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십 대 중반, 뒤를 돌아보면 내 삶은 거대한 피난의 역사였다. 세상이 불의로 들끓고 부조리한 뉴스가 화면을 채울 때, 나는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직장이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내 밥그릇을 지키는 것이 가장 숭고한 도리라 스스로를 속이면서 말이다. 비겁함을 '성실한 가장의 무게'라는 핑계로 포장해 온 날들. 정형남의 장편소설 <새벽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온 내 안의 비겁함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군사독재와 속세의 부조리가 남긴 역사의 상흔을 품고 외딴섬 암자로 숨어든 지식인 청년 '우인(愚人)'의 고독에서 출발한다. 그가 세상과의 접촉을 끊은 채 자연 속에 스스로를 유배 보낸 모습은, 직장 내의 온갖 부조리와 사내 정치 속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나의 서글픈 자화상 같았다. 철저한 고립 속에서 멈춰 있던 우인의 삶은, 한겨울 눈보라를 뚫고 찾아온 의문의 여인 '신해'를 구해주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타인을 향해 기꺼이 곁을 내어주는 이 만남의 사건은, 침묵이 미덕이라 믿어온 내 완고한 일상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켰다. 상처받기 싫어서 선택했던 도피가 결국 나 자신을 가두는 가장 깊은 감옥이었음을 우인의 변화를 통해 뼈아프게 깨달은 것이다.

우인과 신해의 만남으로 시작된 치유의 흐름은 섬의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나며 더 깊은 연대로 확장된다. 바다를 닮은 침묵으로 삶의 지혜를 건네는 노어부 '도옹'과, 도시에서의 실패를 딛고 묵묵히 흑염소를 치며 살아가는 '유종'의 존재는 이 소설의 핵심 주제인 '비움과 무소유의 미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섬의 계절 순환 속에서 내면의 욕망과 통증을 내려놓는 과정은, 사회적 부조리에 침묵했다는 자책감으로 굳어버린 내 마음에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과거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사람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와 밥을 함께 먹고, 곁을 내어주며, 침묵을 견디는 순간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말처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거창한 망각이 아닌 타인에 대한 따스한 연대와 삶을 지속해 나가는 생명력 그 자체였다.

우인은 신해와 부부의 연을 맺고 정착하며, 삶의 순리를 받아들인 도옹과 함께 섬 정상에 올라 꽃씨를 뿌린다. “가장 깊은 밤을 지나온 자만이 눈부신 새벽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소설의 가장 강력한 한 문장과 “정상은 끝이 아니다”라는 울림은 바로 이 클라이맥스의 순간, 비겁하게 숨어 안위만을 꾀하던 내 가슴에 묵직하고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역사와 사회가 개인에게 남긴 깊은 흉터는 결코 혼자만의 도피로 지워지지 않으며, 부조리와 비극이라는 차가운 밤을 연대를 통해 정면으로 통과해 낼 때 비로소 눈부신 새벽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오십 중반이라는 나이가 삶의 종착지가 아니며 언제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것도 바로 이 새로운 삶의 지평을 마주한 마지막 대목에서였다.

이제 오십 중반의 나이에 세상을 뒤바꿀 거창한 혁명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내일 아침 출근을 걱정하고, 부조리 앞에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우인이 섬 정상에서 뿌린 그 작은 꽃씨와 작가가 전하는 회복의 메시지처럼, 내 마음에도 '외면하지 않을 용기'라는 작은 씨앗이 심어졌다. 늘 어스름한 새벽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오르던 내가 이제는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비겁했던 지난날을 용서하고, 조금 더 정직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한다.

나처럼 현실과 타협하며 시대의 부조리를 외면해 온 이 시대의 중장년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지난날의 방관이 남긴 내면의 죄책감을 비워내고,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다시금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참된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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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아파트 4 - 공포의 학교 전설 ㅣ 요괴 아파트 4
도미야스 요코 지음, 야마무라 고지 그림, 고향옥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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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요괴 아파트 4>권이 나왔다! 지난 학기에 3권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읽고 나서, 푸른들 아파트 지하 12층에 사는 머리커와 요괴 가족들이 다음엔 또 어떤 모험을 할지 매일매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평소에도 신비한 생물이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요괴들을 엄청 좋아해서 요괴 책이라면 거의 다 찾아 읽는 편인데, 도미야스 요코 작가님의 요괴 아파트 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는 최고의 책이다. 이번 이야기 역시 나의 큰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고 책을 펼치자마자 나를 환상적인 요괴들의 세계로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번 4권은 푸른들 아파트에 사는 매력 만점 요괴 삼 남매가 이웃 마을의 '폐교'로 공포 체험을 떠나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이야기는 심술꾸러기 둘째 아들 ‘삐딱이’가 첫째 ‘외눈이’와 막내 ‘마음이’를 꼬드겨 한밤중에 몰래 모험을 떠나는 흐름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사람이 무서워하는 폐교에 정작 요괴들이 무서운 소문과 기척을 마주하러 간다는 설정부터가 정말 신선했다. 아무리 신기한 초능력을 가진 요괴라지만, 어두컴컴한 학교 안에서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덜덜 떠는 요괴 삼 남매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 또래 아이들 같아서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건이 깊어질수록 삼 남매가 으스스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다이내믹한 줄거리가 펼쳐진다. 멀리까지 내다보는 외눈이의 천리안 능력, 상대방의 속마음을 단번에 꿰뚫어 보는 마음이의 독심술, 그리고 힘이 장사인 삐딱이가 손발을 맞추어 폐교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무서운 상황 속에서도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며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는 삼 남매의 케미 덕분에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오싹함으로 시작해 유쾌한 모험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이야기의 흐름은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을 한순간도 멈출 수가 없게 만들 만큼 강력한 몰입감을 주었다.

모험의 끝에서 마주한 폐교의 숨겨진 진실은 이 책이 단순히 무섭기만 한 공포 이야기 그 이상임을 보여준다. 재개발 때문에 정든 들판을 떠나 인간들이 사는 대단지 아파트에 섞여 살게 된 요괴들의 안타까운 처지처럼, 폐교 역시 우리가 쉽게 잊고 지냈던 과거의 기억과 버려진 것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작가님은 오싹한 공간마저도 결국 따뜻한 화해의 장소로 바꾸어 놓으시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요괴까지도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간다’는 핵심 문장으로 우리 마음에 큰 울림으로 남는다.

이 책은 나처럼 판타지와 모험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중고학년 친구들이 읽으면 단숨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책이다. 흥미진진한 대소동 속에서 생김새나 능력이 달라도 먼저 마음을 열면 누구나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나와 다른 존재를 편견 없이 포용하고 존중하는 열린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 무척 유익했다. 3권에 이어 이번에도 멋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벌써부터 머리커와 요괴 가족들이 다음엔 또 어떤 이웃을 만나 새로운 소동을 벌일지, 벌써부터 5권도 반갑게 마주할 그날을 조용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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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터 - 나는 AI로 인생을 바꿨다
비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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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묻거나, 업무 중 막히는 단어를 검색창에 쳐보는 것이 내가 아는 AI 활용의 전부였다. 50대 중반, 어느덧 직장 생활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나이에 AI는 그저 똑똑한 백과사전이나 편리한 검색도구에 불과했다. 밀려드는 디지털 트렌드 속에서 ‘나도 배워야 하나’ 하는 부채감은 늘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얹혀 있었지만, 정작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술은 젊은이들의 전유물 같았고, 나와 같은 중년에게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읽게된 책 <크라프터: 나는 AI로 인생을 바꿨다>는 나의 이러한 막연한 두려움과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었다. 저자 역시 처음에는 기술과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고백이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의 마음을 툭 건드렸다. 수백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인스타그램 개설 후 1년도 되지 않아 10만 팔로워를 돌파하고, 인생을 바꿨다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은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 나에게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용기를 주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복잡한 코딩이나 어려운 기술 용어를 나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단순히 명령어를 잘 치는 기술을 넘어, AI를 내 삶과 업무의 주도권을 쥐는 도구로 커스텀하는 방법론을 가르쳐준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정립한 프롬프트 공식인 ‘CRAFTER’다. 맥락(Context)을 짚어주고, 역할(Role)을 부여하며, 명확한 지시(Action)와 형식 및 예시(Format & Example), 사고 과정(Thinking)과 근거(Evidence), 그리고 끊임없는 검증과 개선(Refinement)을 이어가는 과정을 책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무엇을 묻고, 어떻게 지시하느냐(입니다)’라는 말은 강렬한 층격을 주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나의 '질문하는 방식'이 본질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후배들이나 협력업체와 업무를 조율할 때 썼던 소통의 방식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일을 잘하는 리더는 부하 직원에게 무작정 ‘이거 해와’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왜 이 일이 필요한지 맥락을 설명하고, 상대의 역할을 명확히 해주며, 원하는 결과물의 형태와 참고할 만한 예시를 친절히 건넨다. 책에서 말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결국 AI라는 아주 유능하지만 눈치 없는 신입사원에게 명확하고 똑똑하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소통의 프로토콜’이자 내 업무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설계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나는 AI에게 그저 단답형 질문만 던져놓고 ‘별것 없네’라며 돌아섰던 심술궂은 상사 처럼 반응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았으니, AI 역시 인터넷에 떠도는 뻔한 검색 결과만 내놓았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당장 컴퓨터를 켜고 챗GPT 창을 열었다. 그리고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치는 대신, 내가 처한 업무적 맥락과 AI에게 바라는 역할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놀랍게도 AI는 이전에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깊이 있고 정교한 내용의 글을 내놓았다. 단순한 검색도구가 아닌, 든든한 업무 파트너로서의 가능성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50대 중반의 직장인에게 세상의 변화는 때로 버겁고 두렵다. 하지만 ‘AI가 내 일을 대신하면 나는 뭘 해야 할까?’라는 세상의 막연한 질문에 대해, 이 책은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방향을 선택하여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답을 건넨다. 우리가 평생 쌓아온 ‘연륜과 소통 능력’이야말로 AI를 가장 잘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 내 손에는 이미 ‘크래프터’라는 AI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활용가능한 소통 프로토콜을 쥐고 있다. 똑똑한 파트너와 함께 나만의 항로를 주도적으로 설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디지털 대전환기 속에서 AI 활용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중장년층 직장인과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훌륭한 필독서가 될 것이다. 단순히 기술을 다루는 법을 넘어, 평생 쌓아온 소통 연륜을 무기 삼아 기술의 주도권을 쥐고 내 삶과 업무의 가치를 한 단계 더 확장하는 실천적 용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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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닮아 예쁜가?
권태현 지음, 이선미 그림 / 북스토리아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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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엄마 안 닮았거든? 그냥 나야, 나!"

요즘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거실 거울을 볼 때마다 엄마는 ‘어머, 우리 막내 코가 엄마랑 똑같네’라거나 ‘덜렁거리는 성격은 엄마 빼닮았다’라며 웃으신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짜증이 확 난다. 나도 이제 초등학교 5학년, 12살이다. 누군가의 복사본이나 종속품이 아니라 그냥 온전한 '나'로 인정받고 싶은데, 자꾸 엄마를 닮았다고 하니 내 개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속상했다. 그러다 읽게 된 그림책 <누굴 닮아 예쁜가?>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주인공 '나우'의 이야기였다.

책 속 나우는 유치원에서 숙제를 받아온다. 손거울을 들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엄마의 동그란 눈, 아빠의 오뚝한 코, 할머니의 보조개 들어가는 입매를 하나씩 관찰하고 닮았다고 인정한다. 처음에는 나우의 이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만약 나에게 그런 숙제가 생겼다면 누군가를 닮았다는 사실이 싫어서 거울을 치워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나우가 시골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어느 날 위험에 빠진 새끼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나우가 함께 나선다. 할아버지가 높은 곳에서 겨우 구한 고양이가 아래로 떨어지자, 나우는 두 팔을 뻗어 고양이를 받아 안는다. 날카로운 발톱에 손등을 할퀴면서도 나우는 고양이를 절대 놓지 않는다. 무사히 어미 곁으로 돌려보낸 뒤 나우는 새끼 고양이에게 가만히 속삭인다. ‘다치면 안 되니까 위험한 데 가지 말고 조심해.’ 그 순간 나우는 번쩍 깨닫는다. 자신이 방금 고양이에게 한 말이, 평소에 할아버지가 늘 나를 걱정하며 입에 달고 살던 다정한 잔소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겉모습이 똑같은 걸 넘어서,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배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닮아있다는 흐름이다.

이 대목을 읽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툭 한마디를 건네셨다. "아들아, 네가 엄마를 닮았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얼굴도, 행동도, 마음도 닮아가고 그렇게 서로 닮은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 되는 거니까. 너도 엄마의 얼굴을 그대로 베낀 게 아니라 엄마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정한 마음을 보물처럼 나누어 가진 거란다."

아빠의 말씀 덕분에 나는 이 책이 주려는 진짜 주제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닮음이란 내 고유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거대한 뿌리에서 뻗어 나온 아름다운 꽃이라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니 내 일상에도 이미 엄마의 조각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길고양이를 보면 발을 동동 구르는 다정한 오지랖,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족들 입에 먼저 넣어주는 살가움은 모두 엄마에게 물려받은 '예쁜 마음'의 증거들이었다. 겉모습이 닮았다는 말에 굳이 속상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가족과 거리감을 두려는 어린이들과, 자녀의 반항에 서운함을 느끼는 부모가 함께 읽기를 권한다. 나우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외모라는 껍질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발견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 가족이란 나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다정한 뿌리임을 깨닫게 해주는 최고의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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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 - 인생의 길목에서 펼쳐보는 43가지 마음 사전
장성숙 지음 / 스틸당(STEALDANG)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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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삶이 아닌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뿐이다."

40년 경력의 노학자가 건네는 이 담담한 문장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머리로는 이미 백 번도 더 명확하게 알고 있는 명제였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타인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나 자신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것, 쉰을 넘기고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든 직장인이라면 이 정도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이미 온몸으로 체득했을 터였다. 하지만 앎과 삶 사이의 거리는 왜 이토록 좁혀지지 않는 것인지. 내일모레면 퇴직을 고민해야 하는 50대 중반의 직장인에게, 매일 아침 눈을 떠 마주하는 일상은 결코 가벼운 '소풍' 같지 않다. 여전히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고, 직장에서는 젊은 후배들과의 보이지 않는 격차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가 책에서 짚어내듯 인생의 사계절 중 가을과 겨울의 길목에 선 이들은 상실감과 쓸쓸함, 그리고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한을 마주하기 쉽다. 거울 속에서 낯설게 늘어가는 주름을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도 그렇게 그저 흘러가는 인생의 순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고달픈 현실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소풍'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풍이란 모름지기 설렘과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달콤한 휴식이 있는 날이 아니던가. 그러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70년의 인생 지혜가 담긴 저자의 마음 사전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가 '소풍'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바꿀 수 없는 삶의 조건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삶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라고 조용히 일러준다.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 아니며,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틀'에 억지로 맞추려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소풍을 간 날에도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릴 수 있고, 아끼던 도시락을 쏟아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소풍을 즐거운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소란 마저도 '잠시 머물다 가는 여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전작인 <그래도 사람이 좋다>의 고백들이 겹쳐 보였다. 일터와 일상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는 인간관계의 갈등은 우리를 가장 깊이 넘어뜨리는 요인이다. 나 역시 완벽주의적인 태도로 부하 직원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내 기준에 맞추려 통제하려다 깊은 갈등과 피로를 겪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상담 현장에서 깨달은 바처럼, 타인을 내 기준에 맞춰 개조하려는 서툰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관계의 얽힌 실타래가 풀린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하면서도 결국은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그 끈끈한 인간애와 수용의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만, 나와 타인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품어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 주변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기보다, '저 사람도 저 사람만의 비를 맞고 있는 중이겠거니' 하며 무심히 흘려 보내는 연습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인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이 책은 나에게 무조건 행복해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순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내면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라고 토닥인다.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뿐이며, 내 마음을 가꾸는 것이 곧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는 디딤돌이 된다는 저자의 다정한 당부가 가슴 깊이 남는다. 오늘도 내 삶은 여전히 소풍 같지 않고, 나는 여전히 삶을 소풍으로 바꾸기 위해 서툰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그 서툰 노력 자체가 내가 인생이라는 소풍지를 정성껏 거닐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인간관계와 일상의 무게에 지쳐가는 50대 직장인과 중장년층에게 깊은 위로와 현실적인 해답을 건낸다. 타인을 바꾸려는 헛된 집착을 내려놓고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지혜를 배운다면, 고단했던 일상을 비로소 다정하고 평온한 나만의 소풍길로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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