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곧 쉬게 될거야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고요한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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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다니엘이 마주 오는 차와 정면으로 부딪쳐 사망한 뒤, 레나는 딸 엠마를 출산했다. 다니엘을 잃은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육아에 매달리게 된 레나는 너무 힘이 들었지만, 가족이 없는 그녀를 도와주는 시어머니 에스더가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육아에 조금 익숙해졌을 때, 에스더는 골프클럽 회원들과 오래전에 약속해놓은 여행이 있었다며 레나가 혼자 힘들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취소하겠다는 말을 했다. 괜히 미안해진 레나는 그동안 고생한 에스더가 기분 전환 삼아 다녀오면 좋을 거라면서 자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대신 에스더는 레나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반려견을 데리고 떠난다.

 

혼자 남은 레나는 엠마를 재워두고 자신도 눈을 붙였다가 일어난 후, 엠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엠마의 침대에는 아이가 자고 있는 걸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며, 안 그럼 엠마는 죽는다는 쪽지가 놓여있었다.

 

 

 

갑자기 죽은 남편과 사라진 갓난쟁이 딸, 그리고 남은 엄마 레나가 딸을 찾기 위한 추적 과정이 담긴 소설이었다.

그런데 처음 읽을 때부터 왠지 헬렌 피츠제럴드의 소설 <더 크라이>가 떠올랐다. 레나와 다니엘의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결혼생활 중에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아내 레베카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줄곧 이혼을 생각 중이었다고 다니엘은 고백했지만, 그건 레나와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였다. 어찌 됐든 불륜으로 시작한 셈이었다. 그리고 다니엘과 레베카 사이에 딸이 있고, 엄마와 살고 있다는 것도 <더 크라이>와 비슷했다. 이후엔 완전히 다르긴 했지만, 소설 초반에 밝혀진 정보로는 왠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불행했던 첫 번째 결혼생활이 끝나고 사랑하는 아내와 곧 세상에 태어날 딸을 두고 다니엘이 사망한 건 레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거기에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사고가 나기 10여 분 전, 레나와 싸우던 다니엘이 화가 나서 레나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며 차에서 내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레나는 자신이 그 차에 타고 있었더라면 다니엘이 과속하지 않았을 테니 사고도 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상대방 운전자인 토마스의 차와 정면으로 부딪쳤다는 점이었다. 그 사건으로 레나는 다니엘의 장례식에 애도를 하기 위해 찾아온 토마스의 동생 니클라스를 만나 이후에 도움을 받게 된다.

 

엠마를 누가 데려갔을지 의심스러운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일단 전처 레베카의 딸 조시는 장례식장에서 만삭인 레나에게 달려들었을 정도로 그녀를 증오하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레나를 만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아직까지 살아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조산사로 일하는 레나가 돌보던 아이가 돌연사해서 부모인 바베테, 제바스티안 부부는 그녀를 증오하고 있었고, 같은 건물에 사는 노부인은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새벽에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레나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같은 건물에 사는 노부인은 딱히 의심스럽진 않았어도 조시나 아기 부모들은 레나가 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 의심스러운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결말을 보니 예상이 반만 들어맞았다.

 

엠마를 찾으려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던 납치범의 행동이나 요구는 점점 도를 넘고 있었다. 다니엘의 전처 레베카가 집 수영장에 빠져 죽었는데, 레나는 살해당했다고 확신했다. 그 이후엔 레베카의 새 남편 마르틴이 죽었고, 시어머니 에스더까지 납치되어 포박된 사진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자정까지 레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요구를 했다.

엠마가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던 레나였지만, 흔적도 찾지 못한 범인이 과연 그 요구를 들어줄지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통해 살아서 엠마를 찾아야만 했다.

 

소설 초반과 중반 이후 의심스러운 사람이 각각 달랐는데, 그 두 사람이 엠마의 납치 사건에 깊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레나와 다니엘의 비밀도 드러났다. 결국 부부 사이에 솔직하지 못한 탓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지게 됐다. 다니엘은 물론이고 레나 역시 잘한 게 하나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부부인데 왜 그렇게 중요한 걸 말하지 않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모든 게 끝나고 에필로그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음흉한 속셈이 밝혀져 역시 믿을 부부가 하나도 없었다.

 

다 읽고 나니 여러 소설들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비슷한 소재의 스릴러를 많이 읽어서 그런 탓인 것 같다.

그래도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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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겨진 눈 아래에 - 브릿G 단편 프로젝트
정도경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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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및 간략한 내용

 

정도경 × 황금 비파 호수를 건너는 배에 탄 여자는 자신이 가진 비파를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주를 들려준다. 낯선 악기 소리에 사람들은 즐거워했지만,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여자의 연주 탓에 호수의 신이 노했다며 그녀를 배에서 떨어뜨렸다. 물 밑 깊은 곳에 가라앉았으나 놀랍게도 죽지 않은 여자 앞에 검은 뱀들이 나타나 호수의 왕을 알현할 준비를 하라며 황금으로 된 비파를 주고 연주하라고 한다.

김인정 × 망선요(望仙謠) 후배의 부탁으로 저소득층 자녀 공부방 봉사를 다녀온 "나"는 엄마에게 그곳에서 만난 초등학생 여자아이 초희에 대해 말한다. 좁고 냄새나는 반지하 집 화장실에 있던 초희를 보며 스물일곱 살의 엄마와 일곱 살 때의 자신을 떠올린다.

 

이산화 × 아마존 몰리 어느 생명공학자가 길 가던 여자를 폭행하다 시민들에게 제압당한다. 과학 잡지 기자인 "나"는 기사를 보고 남자에게서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까 싶어 인터뷰를 요청한다. 그는 학회에서 알게 된 여자와 2년 동안 만났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임신했다는 문자를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를 찾다가 그가 알아낸 진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양원영 × 폐선로의 명숙 씨 사이가 나빴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뒤, "나"는 혼자 계실 엄마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 부산 집으로 내려왔다. 어느 날 낮잠을 자던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내 이름을 부르기에 깨웠더니 엄마는 기찻길에서 뱀이 쫓아왔다는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서울 말씨로 나를 차갑게 쳐다보며 누구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내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자꾸만 기찻길 악몽을 꿨고, 곧이어 나도 그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이제는 폐선로가 된 그 기찻길에 간다.

 

유월 × 사형 집행인 비르길리아의 하루 여자 망나니 비르길리아는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탑에 갇힌 코헨체른 백작부인을 찾아간다. 오늘이 바로 그녀의 사형 집행일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많이 죽였어도 백작부인의 목을 베는 일은 처음이라 그런지 비르길리아는 남편을 죽인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게 된다. 부인은 밖에서는 선하고 예의 바르고 충신에다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집안에서는 악마였던 남편에 대해 말한다.

김이삭 × 애귀(哀鬼) 혼자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자 탈북한 여자의 일상을 보여주며 중국으로 도망쳤을 때의 과거를 회상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늙은 남자의 대를 이어주기 위해 팔려갔던 중국에서의 삶과 사랑하는 딸을 보며 그곳에 남겨둔 아들이 떠오른다.

 

전혜진 × 감겨진 눈 아래에 가까운 미래. 프랑스 국적을 가진 이민자 2세 세실은 우연히 만난 한국 남자에게서 여자에 대한 괴상한 소리를 듣고 부모가 버린 모국에 대해 궁금해진다. 세실이 인턴으로 있는 앰네스티의 사무국 팀장인 에바는 4년 전에 한국에 다녀온 경험을 말해주며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세실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향한다. 세실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기고 구형 산부인과 의자에 묶여 군인에게 수치스러운 검사를 받는다. 그날 저녁, 감금된 세실에게 병무청 공무원이 나타나 그녀가 한국인이니 병역의 의무를 마치거나 2년 내에 한국 국적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곱 명의 작가가 쓴 앤솔러지를 읽었다. 한 작가가 쓴 단편 모음집은 여러 번 읽어봤으나, 여러 작가가 쓴 단편집은 처음이었다. 차별과 억압을 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현재를 배경으로 한 내용이 있었고, 과거의 이야기와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도 있었다.

처음엔 그저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하나 둘 읽어갈수록 짧은 이야기 속 강렬한 주제에 확 꽂혀서 푹 빠져서 읽었다.

 

<황금 비파>와 <사형 집행인 비르길리아의 하루>는 특정한 상황에서 여자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부모도 남편도 없이 비파만 들고 떠돌아다니는 여자를 사람들은 깔보고 무시했다. 심지어는 같은 여자조차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왕이라 불리던 역겨운 괴물과의 일이 끝난 뒤, 번쩍이는 황금 비파를 손에 들고 뭍으로 돌아온 여자를 보는 시선들은 더욱 더러워졌다. 하지만 황금 비파의 특별한 재주가 여자를 지켜줬고, 그녀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자들을 거두는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사형 집행인 비르길리아의 하루>는 여자 망나니와 목이 잘리는 선고를 받은 백작부인의 사연을 보여줬다. 특별한 반전 없이 마지막까지 흘렀지만 인상적으로 남았던 건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악마 같은 남편을 죽였으나 그 어떤 변론도 하지 않고 한 번에 죽기를 바랐던 백작부인과 그녀가 오랫동안 고통을 받으며 죽기를 바랐던 백작의 남동생이 굉장히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진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도 참으로 치졸했다.

 

그런가 하면 엄마로 사는 여자들의 삶도 보여줬다. <망선요>와 <폐선로의 명숙 씨>는 읽다가 마지막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대화체로만 이루어진 <망선요>는 공부방 경험에서 허난설헌의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다시 공부방 아이로, 자신의 이야기로 오락가락해서 처음엔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엔 너무 깜짝 놀라서 그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지울 수 없는 기억이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폐선로의 명숙 씨> 역시 후반으로 가면서 비밀이 조금씩 밝혀질 기미가 보이다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뭐라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 등을 느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게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오랜 세월 마음에 쌓아둔 울분이 가끔 기억날 때마다 터졌던 게 이해가 됐다. 근데 그걸 알게 된 딸의 심정도 또 이해가 돼서 너무너무 슬펐다.

 

그리고 표제작인 <감겨진 눈 아래에>는 읽는 내내 역겹고 소름이 돋았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됐듯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비극적이고 끔찍한, 여자들만의 디스토피아라고 느껴졌다.

전체주의 사상에 물들어 여성은 아기를 낳는 도구라고만 여기는 폐쇄적인 국가가 된 미래의 가상 한국을 보여주고 있었다. 몇 년 전 이슈가 됐던 "가임기 여성 지도"에서 더 부정적으로 나아간 소설처럼 보였다. 읽는 동안 너무 말이 안 통해서 화가 났고 같은 여자들도 사상에 물들어버려 당황스러웠는데, 주인공이 과연 이곳을 벗어날 수는 있을까 정말 걱정했다. 그런데 마지막엔 또 "소 귀에 경 읽기"라 욕이 나왔지만, 그나마 사이다를 날려줘서 다행이었다.

 

무심코 읽은 책인데 다양한 장르로 여러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편차가 조금 있긴 했지만, 이 책에 담긴 단편들 모두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인상적으로 읽었다. 전설 같기도 하고, 중세 소설 같은 이야기도 있으며 과학적인 소설과 디스토피아도 있어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안 좋아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 아직도 존재하며 기본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길 바라는 목소리가 담긴 페미니스트 소설이었다. 폭력에 방치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인도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었다.

아직 이르지만 올해의 베스트 책 목록에 올리고 싶을 만큼 정말 좋았던 소설이다.

 

"엄만 어렸어. 힘들어서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었어. 어린 너한테 떠들고 울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엄마 말, 듣고 있니? 그땐 다 그랬어. 지금처럼 애들 정서가 어쩌고 하는 걸 몰라서 다들 애 보는 데서 죽네 사네 머리채를 잡고 욕을 하고 그랬어. 엄마도……." 김인정 <망선요> - P65

엄마, 기억하지 마라. 기억 안 해도 된다. 제발 하지 마라.
당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건, 당신이 설령 이 길 위에서 잃어버린 과거와 세월을 헤아려 나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 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양원영 <폐선로의 명숙 씨> - P140

나는, 한 성별을 향해 저지르는 이 끔찍한 범죄에 대해, 증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든 미치지 않고 살아남아서, 이 현실을 증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략)
사람의 기억은, 때로는 그 자체로 증거가 될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이 그러했고,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갔던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전혜진 <감겨진 눈 아래에> - P293

괴물을 죽인 남자는 영웅으로 대접받지만 괴물을 죽인 여자는 괴물로 취급받는다. 정도경 <황금 비파>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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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남자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하윤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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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5년. 밀턴 페리스 교수의 신경심리학 실험실에 최연소 연구원으로 들어가게 된 24살의 마고 샤프는 기억상실증 환자 엘리후 후프스를 만난다. 필라델피아의 유서 깊은 가문의 후손인 엘리는 15개월 전, 섬에서 혼자 캠핑을 하다가 바이러스 뇌염에 감염됐다. 입술에 발진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반적인 증상과는 다르게 엘리의 경우에는 바이러스 감염이 시신경을 거쳐 뇌까지 퍼졌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병원에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그래서 엘리는 새로운 정보를 70초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영원히 서른일곱 살 현재를 살아가게 된 것이었다.

 

엘리는 마고가 연구실에 처음 왔을 때부터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마거릿으로 착각한다. 마고가 아니라고 정정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매번 소개를 해줬지만,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엘리가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마고는 엘리가 자신이 누군지는 잊어버렸어도 기억한다고 확신하며 70초의 기억력을 가진 엘리를 사랑하게 된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지만 단 한 권밖에 안 읽어본 조이스 캐럴 오츠의 이 책을 읽게 된 건 고요해 보이는 분위기의 책표지와는 다르게 뭔가 스릴러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책 뒤편의 소개 글 때문이었다. 70초의 기억력을 가진 남자와 그 남자를 연구하면서 사랑하게 된 여자, 그리고 남자가 아주 어릴 때 죽은 여자 사촌에 관한 기억이 흥미를 끌었다.

 

실제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지만 사고를 당한 이후 기억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해 서른일곱 살로 살아가는 남자 엘리와 이제 막 스물네 살이 된 마고가 만나게 되면서 30년 넘게 이어질 그들의 관계가 시작됐다.

마고가 처음부터 엘리를 사랑한 건 당연히 아니었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연구에 참여하게 된 마고는 책임 교수인 페리스와 먼저 불륜 관계가 시작됐다. 1960년대에 남자들이 월등히 많았던 학계라는 배경과 가족에게서 일부러 떨어져 나와 먼 곳에서 생활하는 마고의 개인적인 사정이 겹치면서 그녀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페리스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며 그를 거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을 총애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애정을 만끽했다. 자신의 운명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자의 개인적 욕망에 희생되면서도 그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못하며 지배당한 젊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의 연구 결과나 논문 등에 참여하지도 않은 페리스 교수가 숟가락을 얹었다는 사실이 고발됐는데도 부정할 정도로 마고는 페리스를 사랑하고 맹신했다. 이런 답답한 마고의 모습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다른 젊은 여자 연구원이 들어오게 되면 변하는 게 당연한 전개였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페리스 교수에게 내쳐진 마고가 그에 대한 사랑에 힘들어하면서 항상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는 기억력으로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엘리에게 서서히 빠지게 되어 그를 통제하는 모습이 조금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노벨상을 탈 정도로 학계의 인정을 받은 늙은 교수와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자 교수라는 위치에 선 마고의 관계가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엘리를 통제하는 마고의 관계와 비슷해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엔 힘들어하는 마고를 위로해주는 엘리에게 호감의 감정이 싹트면서 그를 사랑하게 됐고, 이후엔 엘리에게 자신을 약혼녀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아내라고까지 하면서 반지를 나눠끼고 짙은 스킨십까지 하게 된 상태에 이르자 자신이 만들어낸 그 모든 게 진짜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페리스 교수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가스라이팅을 마고가 엘리에게 행사하며 그녀 역시 서서히 정상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환자와 교수라는 관계에 지배력을 행사하며 현실과 만들어낸 거짓을 스스로도 혼동하는 마고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든 관계를 벗어나 사랑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70초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의 기억을 오랫동안 조작하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났다. 그래서인지 중반 이후를 넘어가면서 화자인 마고보다 엘리의 감정에 이입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엔 엘리와 마고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60대가 되었어도 자신을 여전히 37살로 알고 있는 가여운 엘리의 곁에 남은 사람은 마고뿐이었기 때문이다.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을 때부터 형제,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어져 외로운 줄도 모르고 살아온 엘리를 마고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고의 마음을 당연히 모르는 엘리는 처음 본 사람처럼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너무 한결같아서 마고가 조금 안타까웠다.

 

여자 사촌이 사망한 모습을 몇 번이고 그림으로 그릴 정도로 과거의 일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사고 이후로는 타인에게 의존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의 70초 동안 유지되는 애틋한 사랑이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엘리에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마고에게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랑일지라도 서로에게 남은 사람은 둘뿐이라 가련한 사랑이기도 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요? 기억이 없는 건 그림자가 없는 것과 같아요."
"아마도 내가 그런 사람일 거예요." - P384

엘리후 후프스의 삶에는 과거가 없고 오로지 현재만 있다.
그는 영원토록 서른일곱 살에 머물 것이다. 영원토록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 P54

엘리후 후프스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가 아프기 전에 만났어야 한다. 그날 이후 기억상실로 고통받는 이에게 사랑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 P165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기억상실증 환자는 신경심리학자인 그녀를 길들여, 그녀를 향한 그의 감정에 반응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마고가 이에 반응할수록 그 역시 그녀에게 점점 더 길들어간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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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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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사서 설계를 고민하고 지은 2층 집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주란은 이상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녀는 창문도 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악취가 뒷마당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끼곤 땅을 파보다가 웬 손가락이 파묻혀있는 것을 보게 된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박재호에게 말하자, 그는 주란이 파놓은 땅을 보더니 다시 덮어버리곤 그녀가 조개껍질 같은 것을 잘못 봤다고 말한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전날 밤낚시 약속에 나가지 않았다고, 계속 집에 있었다고 말하지만 주란은 흙이 묻은 남편의 등산화와 차 매트에 떨어진 흙을 보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때 마침 형사들이 집에 찾아온다.

 

이제 임신 4개월이 된 상은은 남편 김윤범이 너무 밉고 싫다. 폭행을 일삼던 남편은 임신 이후 그녀를 때리진 않지만 말로 상처를 주고 무시를 했다. 이제는 참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된 상은은 밤낚시 약속이 있어 나간다는 남편에게 약속 장소가 친정 근처이니 좀 데려다 달라고 말했고, 짜증을 내는 그의 차를 기어코 타고 가서 죽인 뒤 처리를 한다. 다음 날, 친정에서 자고 일어난 상은은 남편의 시신이 저수지에서 발견됐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상은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 그녀는 부득이하게 수를 써야 했다.

 

 

 

의사 남편, 잘난 아들과 화목했던 삶이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주란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시작은 참을 수 없는 악취였고, 그 냄새의 근원지에서는 보고도 믿기 어려운 사람의 신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상은은 끔찍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자 그를 죽였다는 사실이 소설 초반부에 밝혀지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기대하던 보험금이 자살로 판명될 경우에 지급받을 수 없다는 말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된다. 마침 남편의 차에서 발견한 분홍색 핸드폰이 주란과 엮이게 될 발단이 됐다.

 

주란과 상은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되는 소설에서 두 여자는 각각 죽음을 목격하고 직접 저지르기도 한다. 상은이 행한 죽음은 확실했으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있던 주란이 목격한 죽음은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지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다는 게 둘의 차이점이었다.

초반엔 김윤범의 확실한 죽음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상은의 온갖 계획들과 혼자만의 수사가 이어졌다. 손수 남편을 죽여놓고 죄를 박재호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상은에게 도무지 마음이 가질 않았다. 처음엔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는 이유 때문에 가여웠으나 그 이후의 행동들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주란은 다른 의미로 좀 가여웠다. 24살의 어린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0살 많은 박재호와 결혼해 10년 넘게 가정주부로 지낸 그녀를 친구들은 은연중에 무시했다. 남편은 다정하긴 했지만 무엇이든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며 주란을 부드럽게 압박했고, 아들 승재는 사춘기가 왔는지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타인들에게 밝힐 수 없던 문제를 각 가정에서 느끼고 있던 두 여자가 만나게 된 후, 분홍색 핸드폰의 주인 15살 소녀 이수민의 행방을 중심으로 상황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가출한 소녀와 두 여자의 남편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조금씩 밝혀지면서 믿음에 대한 갈등을 일으켰다. 박재호와 김윤범 둘 다 그리 신뢰가 가질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아내들 역시 100% 믿기엔 좀 어려웠다. 의심스럽고 믿기 어려운 사람들만 나왔다는 게 좀 특이했다.

두 가정 사이에 가출 소녀가 끼어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다가 갑자기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게 진짜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쐐기를 박는 말이 있긴 했지만 도통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누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다. 그 후에는 상황이 계속 뒤집히면서 결말을 가늠할 수 없게 했다. 의심에 의심을, 그리고 배신을 거듭했던 후반이었다.

 

남편은 과거의 사건을 핑계로 주란을 정신병 진단을 받게 만들고, 주란은 스스로를 입주 가정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은의 남편은 아내를 물건 취급해 소유하려 들었고, 상은은 그런 남편을 죽여놓고 보험금은 타길 바라며 그마저도 안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중반까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다 읽고서야 박재호와 김윤범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압적이든 부드럽든 결국엔 그게 그거였다.

부부라는 관계로 시작되어 가족이 되긴 했어도 서로의 속내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고, 또 보여주지도 않기 때문에 서로를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가정이 개개인의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하지 않은 욕망이 있었고, 자식을 지키려는 엄마의 욕망도 있었기에 시작은 달랐지만 끝은 같았다.

 

행복한 가정도 많겠지만, 스릴러 소설의 소재가 되는 부부 관계는 어김없이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흥미진진하고 스릴 있었다. 주란이 본 게 실제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했고, 상은이 결국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의문의 옆집 여자들은 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건지 궁금하게 했다.

결국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던 여자들이었다. 남의 편인 남편 없는 삶이 이제는 조금 나아졌다고 말해도 될까..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 사람과 살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 P262

by. 주란
남편은 나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하는 생각들을 믿지 말라 당부했다. - P229

by. 상은
귀찮아졌다. 어떻게 표정을 짓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보일까. - P56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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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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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공포증이 있는 애나는 거의 1년 가까이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필요한 음식과 약 등은 인터넷으로 구매가 가능했고, 담당 의사 필딩 박사와 물리치료사 비나는 정해진 요일에 애나의 집을 찾아온다. 쓰레기를 버릴 때나 집 수리가 필요할 때, 혹은 부득이하게 밖을 나가야 할 때는 지하층 세입자인 데이비드가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있다.

애나가 아쉬운 건 별거 중인 남편 에드와 딸 올리비아를 자주 못 보는 것뿐이다.

 

애나의 하루 일과는 고전 스릴러 흑백영화 감상,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온라인으로 상담해주기, 체스 두기, 그리고 이웃들의 삶을 카메라로 훔쳐보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 상당히 많은 양의 와인을 마시는 것도 일과에 포함될 정도로 그녀의 일상을 채우고 있다.

 

언제나처럼 이웃들을 훔쳐보던 그녀는 건너편 집에 새로 이사 온 세 가족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며칠 뒤, 그 집 아들 이선이 엄마의 심부름으로 선물을 들고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 가까워지고, 다음 날에는 현관 밖으로 나왔다가 쓰러진 애나를 이선의 엄마 제인이 도와준다. 제인과 함께 와인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얼마 후, 애나는 비명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건너편 집에서 제인이 가슴에 칼을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트라우마로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애나의 시점으로 진행된 소설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는 중반 이후에 밝혀진다.

우선 중요했던 건 새로 이사 온 이웃 여자 제인이 살해당한 것이었는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나는 나름의 보호막이 되어주는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지만 쓰러져 버리고 만다. 다행히 집을 나가기 전 신고한 덕분에 911 대원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어 다음날 깨어나지만, 애나가 목격한 사건을 경찰은 믿지 않았다. 확인을 해보면 된다는 말에 애나의 집에 맞은편 집 남편 알리스타 러셀과 제인을 데려오지만, 데려온 제인은 애나가 함께 술을 마시고 대화했던 "그" 제인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애나가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실재인지 환각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애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심지어는 정신질환에 관한 약을 술과 복용했다. 필딩 박사가 절대로 술과 함께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애나는 그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데다가 권장 복용량을 넘기기까지 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믿을 수 없는 화자였다.

작년부터 이런 스타일의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진실은 따로 있다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무리 믿어주지 않아도 애나가 보고 경험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1차 반전이 드러나서 책을 읽다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뭔가 기미가 있긴 했지만 초점이 제인 사건에 맞춰져 있어서 그쪽(?)은 좀처럼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 후에 애나가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이렇게 끝나려나 싶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든 2차 반전이 밝혀졌다. 정말이지 예상을 못 한 부분이라 또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흩뿌려놓은 몇몇 단서로 범인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예상하긴 했지만, 추리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작 진실은 못 맞혔다. 추리력을 좀 더 사용했더라면 맞힐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읽는 동안 애나를 온전히 믿지 못했지만,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들과는 다르게 그녀가 그리 짜증 나는 타입은 아니었다. 어떤 트라우마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비슷한 소설의 주인공들은 가끔 왜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애나는 술과 약을 함께 먹어도 뭔가 안쓰러움을 느낀 게 좀 특이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애나를 믿었었나 보다.

 

워낙 인기가 많은 책이라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도 흥미진진하고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가서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궁금해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영화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소설이고 예고편을 먼저 본 탓인지 자연스레 출연하는 배우들을 떠올리며 읽게 됐다. 캐스팅이 어마어마한 영화이고,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 연기를 잘해서 영화가 궁금하다.

이웃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상해 보이겠지. 형사들은 농담하는 줄 안다. 의사는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물리치료사는 나를 그저 가여운 사람으로 여긴다. 갇혀 있는 여자. 영웅도, 탐정도 아니다.
나는 갇혀 있다. 세상 밖에. - P338

"이 모든 게, 저 사람 부인, 저 아이의 엄마가 칼에 찔리는 걸 본 순간 시작됐다고. 그게 바로 당신들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야. 그게 바로 당신들이 묻고 있어야 할 질문이라고. 나한테 내가 보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 내가 본 게 무엇인지는 내가 아니까."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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