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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시옷북스 / 2023년 7월
평점 :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있던 새벽.
젠은 호박을 파내는 중이었고 남편 켈리는 아들 토드의 행방을 물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제 막 18살 성인이 된 토드의 통금 시간이 새벽 1시였기에 곧 들어올 거라 여기고 부부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 창밖으로 토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토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를 보며 발걸음을 멈추고 그와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젠과 켈리는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토드는 품에서 칼을 꺼내 그 남자를 찔렀다. 켈리가 토드를 진정시키는 사이에 젠은 의문의 남자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막아보려 했지만 가망이 없어 보였다.
이내 출동한 경찰에게 토드는 순순히 자백을 했고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젠은 이혼 전문이긴 하나 그래도 변호사이기에 어떻게든 방법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토드는 변호사가 필요 없다고 했다는 말을 출동했던 경찰이 전해주었다. 늘 온화하던 켈리는 불같이 화를 내며 욕설까지 내뱉었다.
부부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토드가 없는 집에서 아들 걱정을 하며 젠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깨어난 젠은 켈리와 상의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토드의 목소리가 방에서 들려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엄마를 마주하고 있는 토드에게 왜 여기에 있냐며, 경찰서 이야기를 꺼내지만 아이는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믿을 수 없게도 젠은 토드의 사건이 있기 이틀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젠은 자신이 아들의 살인을 막아야 한다 생각하고 무언가를 알아내고 해내려고 한다. 하지만 자고 일어날 때마다 시간은 자꾸만 거꾸로 흘러 과거로 향해 간다. 그날 하루만 살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젠은 무언가를 알아내고자 한다.
아들이 눈앞에서 사람을 죽였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엄마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난생처음 보는 그 남자와 아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토드는 입을 다물며 변호사조차 필요 없다고 했단다. 엄마가 변호사인데 변호사가 필요 없다니 사람을 죽인 죄를 그냥 받겠다는 건데, 영문을 모르니 젠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화도 났을 터였다.
경찰서에 구금된 토드를 위해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라 켈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젠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고 이튿날 일어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틀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타임슬립이 젠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하루 동안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내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러고선 잠이 들었을 때 다시 같은 날을 살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젠이 깨어난 건 3일 전이었고, 4일 전, 8일 전을 거슬러 올라가 점점 과거로만 향해갔다.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슬립물이 익숙한데, 이 소설처럼 과거로만 향해 가는 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하루나 이틀, 일주일 등 가까운 과거라면 기억이 날 테지만, 점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나중에는 몇 년 단위로 뛰어넘는 걸 보며 대체 어디까지 향해 가는 건지 두려울 정도였다. 여기에 젠은 깨어난 단 하루만 살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기에 토드의 살인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찾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살인을 저지른 18살의 토드를 막기 위해 13살 토드, 3살 토드에게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젠이 과거로만 향해 가고 있을 때 일단은 관련이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중요한 연관성이 밝혀질 캐릭터 라이언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었다. 라이언은 이제 막 경찰이 된 신입이었는데, 자잘한 업무를 수행하다 리오라는 상관에게 발탁되어 마약 거래와 차량 절도를 일삼는 거대한 조직을 수사하게 된다.
과거로만 향해 가며 눈을 뜬 그날 딱 하루만 살 수 있었던 젠은 이 상황이 어느새 익숙해졌고, 꽤나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정보를 토드의 살인사건과 관련짓는 건 쉽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메워지지 않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알아내기까지는 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으나 젠은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젠의 인생 절반이 크나큰 거짓말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젠이 알아낸 사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지만, 당사자인 그녀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터였다. 젠이 느낄 감정이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소설은 계속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마침내 실마리를 모두 풀고 산뜻한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5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의 소설은 읽는 동안 뭐가 계속 밝혀져서 몇 번이고 놀랐다. 최소 5번 정도 감탄사(어? 헉! 헐! 엥? 등)를 내뱉게 했을 정도로 뒤통수를 계속해서 쳐댔다. 어느 정도 알아챈 반전도 있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밀이 밝혀지기도 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여러 번의 반전과 비밀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시킨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을 준 책이었다.
"이건 시간여행도 아니고 과학도 수학도 아니에요. 당신에게는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지식과 사랑이 있어요. 그거면 되지 않을까요?" - P139
"만약 타임슬립에 갇히면 어떻게 할 거야?" 젠이 묻자 토드가 무심히 말했다. "음, 그런 경우 대부분 사소한 게 중요하더라고요." "무슨 뜻이야?" "나비효과 있잖아요. 아주 작은 것이 미래를 바꾸는 거죠." - P76
우리가 어떻게 혹은 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까? 어둡거나 조심스럽거나 웃기거나, 뭐가 됐든 오직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 - P491
우리는 운 좋게 우리를 스쳐 지나간 일보다는 운이 나쁘게 닥쳐온 일들만 생각한다. (……중략) 앤디가 말했듯이 모든 것 아래에는 깊은 지식이 있다. 그녀는 인생을 한 번 살았고 모든 걸 놓쳤지만 그녀의 현명한 마음과 잠재의식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준비가 됐다. -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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