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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평점 :
대지를 사서 설계를 고민하고 지은 2층 집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주란은 이상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녀는 창문도 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악취가 뒷마당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끼곤 땅을 파보다가 웬 손가락이 파묻혀있는 것을 보게 된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박재호에게 말하자, 그는 주란이 파놓은 땅을 보더니 다시 덮어버리곤 그녀가 조개껍질 같은 것을 잘못 봤다고 말한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전날 밤낚시 약속에 나가지 않았다고, 계속 집에 있었다고 말하지만 주란은 흙이 묻은 남편의 등산화와 차 매트에 떨어진 흙을 보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때 마침 형사들이 집에 찾아온다.
이제 임신 4개월이 된 상은은 남편 김윤범이 너무 밉고 싫다. 폭행을 일삼던 남편은 임신 이후 그녀를 때리진 않지만 말로 상처를 주고 무시를 했다. 이제는 참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된 상은은 밤낚시 약속이 있어 나간다는 남편에게 약속 장소가 친정 근처이니 좀 데려다 달라고 말했고, 짜증을 내는 그의 차를 기어코 타고 가서 죽인 뒤 처리를 한다. 다음 날, 친정에서 자고 일어난 상은은 남편의 시신이 저수지에서 발견됐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상은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 그녀는 부득이하게 수를 써야 했다.
의사 남편, 잘난 아들과 화목했던 삶이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주란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시작은 참을 수 없는 악취였고, 그 냄새의 근원지에서는 보고도 믿기 어려운 사람의 신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상은은 끔찍한 남편에게서 벗어나고자 그를 죽였다는 사실이 소설 초반부에 밝혀지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기대하던 보험금이 자살로 판명될 경우에 지급받을 수 없다는 말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된다. 마침 남편의 차에서 발견한 분홍색 핸드폰이 주란과 엮이게 될 발단이 됐다.
주란과 상은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되는 소설에서 두 여자는 각각 죽음을 목격하고 직접 저지르기도 한다. 상은이 행한 죽음은 확실했으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있던 주란이 목격한 죽음은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지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다는 게 둘의 차이점이었다.
초반엔 김윤범의 확실한 죽음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상은의 온갖 계획들과 혼자만의 수사가 이어졌다. 손수 남편을 죽여놓고 죄를 박재호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상은에게 도무지 마음이 가질 않았다. 처음엔 남편에게 맞고 살았다는 이유 때문에 가여웠으나 그 이후의 행동들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주란은 다른 의미로 좀 가여웠다. 24살의 어린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0살 많은 박재호와 결혼해 10년 넘게 가정주부로 지낸 그녀를 친구들은 은연중에 무시했다. 남편은 다정하긴 했지만 무엇이든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며 주란을 부드럽게 압박했고, 아들 승재는 사춘기가 왔는지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타인들에게 밝힐 수 없던 문제를 각 가정에서 느끼고 있던 두 여자가 만나게 된 후, 분홍색 핸드폰의 주인 15살 소녀 이수민의 행방을 중심으로 상황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가출한 소녀와 두 여자의 남편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조금씩 밝혀지면서 믿음에 대한 갈등을 일으켰다. 박재호와 김윤범 둘 다 그리 신뢰가 가질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아내들 역시 100% 믿기엔 좀 어려웠다. 의심스럽고 믿기 어려운 사람들만 나왔다는 게 좀 특이했다.
두 가정 사이에 가출 소녀가 끼어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다가 갑자기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게 진짜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쐐기를 박는 말이 있긴 했지만 도통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누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다. 그 후에는 상황이 계속 뒤집히면서 결말을 가늠할 수 없게 했다. 의심에 의심을, 그리고 배신을 거듭했던 후반이었다.
남편은 과거의 사건을 핑계로 주란을 정신병 진단을 받게 만들고, 주란은 스스로를 입주 가정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은의 남편은 아내를 물건 취급해 소유하려 들었고, 상은은 그런 남편을 죽여놓고 보험금은 타길 바라며 그마저도 안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중반까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다 읽고서야 박재호와 김윤범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압적이든 부드럽든 결국엔 그게 그거였다.
부부라는 관계로 시작되어 가족이 되긴 했어도 서로의 속내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없고, 또 보여주지도 않기 때문에 서로를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가정이 개개인의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하지 않은 욕망이 있었고, 자식을 지키려는 엄마의 욕망도 있었기에 시작은 달랐지만 끝은 같았다.
행복한 가정도 많겠지만, 스릴러 소설의 소재가 되는 부부 관계는 어김없이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흥미진진하고 스릴 있었다. 주란이 본 게 실제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했고, 상은이 결국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의문의 옆집 여자들은 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건지 궁금하게 했다.
결국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던 여자들이었다. 남의 편인 남편 없는 삶이 이제는 조금 나아졌다고 말해도 될까..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 사람과 살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 P262
by. 주란 남편은 나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하는 생각들을 믿지 말라 당부했다. - P229
by. 상은 귀찮아졌다. 어떻게 표정을 짓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보일까. - P56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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